교육비에 치솟는 집값까지, 노후 대비는…

[뉴시스]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4050세대의 허리가 휘청거리고 있다. 2030대에 비해 소득이 많은만큼 본격적으로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지만 자녀 교육비와 집 대출금, 부모 부양 등으로 나가는 돈은 오히려 더 많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인터넷에선 노후대비 및 재테크와 관련된 글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노후를 대비할 만큼 여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지난해 한 단체가 서울지역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노후대책에 관한 실태조사에서 44.9%가 노후자금을 마련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대학까지 4억 들어…투잡 뛰어도 힘들어
대출금에 부모 부양 “노후 준비는 언제…” 

[#1] 경기도 일대의 부동산이 호황일 때 한 아파트를 무리해서 장만했다는 회사원 A씨(44)는 "한달 이자만도 수십만원씩 빠져나가는 데다 자식들의 사교육비를 대느라 돈을 전혀 모으지 못하는 형편"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퇴직할 즈음이면 자식들이 대학에 다니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이 드는데 연금으로 감당하기 힘들다"며 "재테크에 특별한 재주도 없어 머리가 아플 지경"이라고 말했다.

[#2] 회사원 B씨(51)는  "노후에 대비해 돈을 모아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체감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으면서 장사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는 게 그의 또다른 고민이다 .

100세 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노후 준비가 ‘4050’ 세대의 최대 고민이 됐다. 하지만 대부분의 ‘4050세대’는 자녀 교육과 부모 부양에 치여 제대로 된 노후 대비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노후 준비를 위해 당장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막막할 뿐이다.

4050세대의 지출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자녀의 ‘교육비’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7’ 에 따르면 40대는 지출 항목 중 교육비 비중이 18.7%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자녀 교육비가 부담되지만 이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자녀에게 ‘자신보다 좋은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큰 재산을 물려주기 어렵다면 적어도 교육을 통해 성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는 게 부모의 도리라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문제는 자녀 교육비 문제는 자녀가 대학을 졸업하는 50대까지 지속되지만 소득 증가율은 제자리 걸음이라는 점이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지난해 자녀 1명이 태어나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22년간 들어간 양육비를 추산한 결과 3억9670만원에 달했다.

2012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 3억896만원이었던 것보다 28.4%나 증가한 수치다. 반면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40대 가구주(2인 이상)의 ‘처분가능소득’은 393만4000원으로 2015년(392만4000원)에 비해 0.27% 늘어나는 데 그쳤다. 세금ㆍ공적연금ㆍ사회보험 등 불가피한 지출을 빼고 가계가 소비에 쓸 수 있는 실질적인 소득이 4년간 ‘제자리걸음’이었다는 의미다.

사실 우리나라 40대의 과다한 자녀 교육비는 2014년 매경이코노미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난 문제다. 당시 설문조사에선 40대의 절반 가까이(47%)가 월급의 20% 이상을 자녀에게 투자한다고 답했다. 월급의 40% 이상을 쓴다는 응답자도 9.4%나 됐다. 자신의 노후 준비를 포기할지언정 자녀 교육에 대한 투자는 줄이지 않는 우리나라 부모 세대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아차하면 '잿빛 노후'

4050세대의 노후 준비는 그림의떡이다.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가 통합은퇴준비지수(MIRRI)를 개발해 우리나라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준비 정도를 평가한 결과 100점 만점에 62.22점에 그쳤다. 특히 재정부문은 52.6점으로 ‘낙제’ 수준이었다.

지난해 12월 21일 신한은행이 발간한 '2019년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50대 이상 경제활동자 중 13%는 3년 내 은퇴를 예상했다. 

문제는 2명 중 1명(51%)이 은퇴 대비를 하지 못한 점이다. 50대의 월 지출액은 평균 282만원인데 은퇴 후에는 242만원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교육비(11만원) 감소액이 가장 컸고 식비(8만원)와 교통비(8만원)도 대폭 줄었다. 하지만 의료비(12만원)나 여가활동(9만원), 가사서비스(1만원)는 늘어날 것으로 봤다.

은퇴 후 월 소득은 평균 147만원(연금소득 113만원·재산소득 25만원·가족 지원 9만원)으로 은퇴 후 예상 지출(242만원)의 61% 수준에 불과해 노후자금 확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테크 전문가들은 40대와 50대의 재테크 전략이 달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선 40대는 자산의 덩치를 키우는 데 힘쓰는 한편 과도한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40대는 은퇴 자금 확보를 위한 투자의 반환점이기도 하다.

지난 기간 동안 저축액이 부족하고 목돈이 모인 상태라면 이를 본격적으로 굴리기 시작해야 하는 시기다. 목돈을 모으는 데 실패했다면, 다소 공격적인 투자로 이를 만회해야 하며 어느 정도 목돈이 모인 상태라면 이를 본격적으로 굴리기 시작해야 한다.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50대의 경우는 다르다. 공격적인 투자는 지양하고 안전 자산의 비중을 높여나가야 한다. 또한 유동성이 작은 부동산의 비중을 낮추고 현금화가 용이한 금융 자산의 비중을 차츰 늘려가도록 하며, 자신이 가입한 국민연금이나 퇴직연금, 개인연금의 지급 수준을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퇴직금이 없는 자영업자의 경우엔 '노란우산공제'같은 대체상품으로 준비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한 투자전문가는 "50대 이후에는 자산을 지키는 전략을 수행해야 한다"며 "그동안 꾸준히 모아온 재산을 안정적으로 증식시키면서 재산을 보존하는 것이 핵심 과제로, 이 시기엔 자산을 굴린다기보다는 지키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후 질환과 연계된 보험상품을 가입하거나 종신형 연금보험상품을 준비해 예상치 못한 사태에도 대비할 수 있도록 안정적으로 노후를 설계하는 것도 중요하다.

 투잡 뛰는 경우도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득을 늘리기 위해 직장을 다니면서 투잡을 뛰거나, 전업주부들도 아르바이트에 나서는 경우도 늘었다.

서울 중랑구에서 중학생, 고등학생 자녀를 키우고 있는 C씨는 최근 부업을 시작했다. 결혼 후 직장을 그만 둔 상태에서 새로운 직장을 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자녀의 학원비를 보태려고 다시 일자리를 알아보게 됐다.

C씨는 "남편 월급만 믿기에는 지출이 너무 많아 집에만 있을 수 없었다"고 했다.

한편 재테크 전문가들은 노후준비가 전혀 되지 않아 불안하다면 “수치화하라”고 입을 모은다.
한 전문가는 “퇴직 후 국민연금으로 매달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은퇴 후 필요한 생활비는 어느 정도며 언제부터 모자라는지, 가입해둔 퇴직연금은 몇 %의 수익률을 내고 있는지 등을 수치로 써놓은 뒤 자금 계획을 세우면 불안감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