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처럼 보였던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전 국무총리)과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의 갈등이 진정국면에 접어들면서 이들 관계도 '봉합'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지난 주말 정 위원장이 자신의 거취를 거론하며 사퇴할 뜻을 밝힌 뒤 청와대가 부랴부랴 대통령의 의중을 내세워 진화에 나섰고, 이어 정부에서도 갈등의 당사자인 최중경 장관이 사실상 한 발 물러나면서 요란한 갈등은 일단락될 분위기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연일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한 강경 발언으로 정운찬 위원장을 사면초가에 몰았던 최중경 장관은 21일 중소기업계 대표들과의 간담회를 찾은 자리에선 180도 다른 모습으로 고집을 스스로 꺾었다.

최 장관은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의 사퇴와 관련, "정운찬 전 총리께서 동반성장위원회의 성격상 계속 (위원장을)맡아야 한다"며 무한한 신뢰감을 보냈다.

이어 최 장관은 "동반성장위원회의 예산과 인원을 직접 들여다보겠다. 부족한게 있는지 살펴보겠다"며 정 위원장의 사퇴를 만류하는 듯한 늬앙스를 풍긴 뒤 곧바로 동반성장위에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최 장관은 "원래 민간쪽에서 20억원, 중소기업청 7억원, 중기협회 7억원 등 모두 36억원을 지원할 예정이었다. 동반성장위 인원도 직원공모제를 통해 선발해 2배로 늘리겠다"며 전폭적인 지원의사를 밝혔다.

장관이 직접 나서 동반성장위의 애로나 고충을 해소해 위원회에 힘을 실어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를 두고 관가에서는 최 장관이 이처럼 불과 며칠 만에 저자세로 돌아선 배경에는 청와대로부터의 '행동 지침'이 상당부분 영향을 미친게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두 사람은 학자로서, 관료로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경제'라는 공통분모를 두고 서로 다른 뚜렷한 가치관을 갖고 있어 입장차를 보였다.

정 위원장이 초과이익공유제의 취지를 설명한 점이나, 이를 최 장관이 초과이익공유제의 개념이나 정형화 문제를 지적하며 실현 불가능한 제도로 문제 삼은 것도 모두 설득력 있는 합리적인 주장이었다. 이 때문에 정운찬 대 최중경 갈등은 경제논리 대 경제논리의 싸움이었다.

그러나 최 장관이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이자 정 위원장은 이런 최 장관의 태도에 노골적인 불만을 품고 '둘 중 하나는 그만 둬야한다'며 강경한 자세로 나와, 청와대와 여권 일각에서 부랴부랴 '정운찬 달래기'에 나서 최 장관도 이를 거절할 수 없는 처지에서 한 발 물러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에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도 강경한 입장을 다소 누그러뜨린 채 주변에 귀를 기울이며 의견을 수렴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주변 만류에 못 이겨 본인의 사퇴 의지를 접는 수순으로 읽힌다.

정 위원장은 이날 동반성장위 정례 실무자회의에 참석하기에 앞서 일부 기자들과 만나 "지금은 내가 사퇴하는 것보다 동반성장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곧 본연의 역할에 다시 충실히 임한다는 맥락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정 위원장의 심경 변화는 "이명박 대통령은 정 위원장이 책임지고 동반성장을 잘 이끌어 줬으면 하는 뜻을 갖고 있다"는 청와대 핵심관계자 발언 직후 나온 것이어서 대통령의 사퇴 만류를 사실상 정 위원장이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위원장은 최 장관의 발언에 대해선 공식적인 입장은 밝히지 않았지만 중소기업계를 대표한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과의 면담에서도 사퇴만류를 요청받자 "잘 알았다"며 긍정적으로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따라 정운찬 위원장과 최중경 장관 사이에 한 달여간 계속된 지루한 공방은 조만간 마무리 수순에 들어갈 전망이다.

최 장관은 정 위원장을 만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웃으면서)일하다 보면 같이 만날 일이 많지 않겠느냐"며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는 의향을 내비쳤다. 정 위원장과의 오해를 풀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오해는 언론에서 만든 것이다"며 정 위원장에 대한 별다른 감정은 없음을 강조했다.

다만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선 최 장관이 아직 명확한 입장을 드러내진 않아 이 문제를 최 장관이 어떻게 풀고 나갈지도 변수이다.

최 장관은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초과이익공유제는 그만 질문하라. 언론에서 각을 세우지 말라"며 즉답을 피해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한 소신은 완전히 굽히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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