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이 써 내려간 근대역사
보통사람이 써 내려간 근대역사
  • 김정아 기자
  • 입력 2019-02-11 15:38
  • 승인 2019.02.11 15:39
  • 호수 1293
  • 5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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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의 역사] 저자 전우용 / 출판사 푸른역사

[일요서울 | 김정아 기자] 우리 곁의 모든 것에는 뿌리가 있고, 우리가 겪는 모든 현상에는 까닭이 존재한다.

 

그런 인과관계가 만든 결과물이 인류진화의 결과물이라면 보통사람의 일상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보통사람에게 보통사람의 역사가 절실하며 이를 통해 욕망하고 판단하며 실천하는 모든것의 기원과 변화 방향을 예측해 볼 수 있다.

케케묵은 사료 더미나 들추는 책상물림 역사 학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저자 전우용의 신간 ‘내안의 역사’는 현대인의 몸과 마음의 근간이 되는 근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책에서 저자는 인류 역사의 본류는 사람의 시선을 끌지 않는 평범성에서 기인한다고 밝히면서 보통사람의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수만 년에 걸친 인류 진화의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그간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났던 보통사람, 서민이 역사가 되는 순간이 왔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근대 한국인의 언어는 물론 개인, 가족과 의식주, 직업과 경제 생활, 공간과 정치, 가치관과 문화 등과 같은 대주제를 다루기도 했다. 현모양처를 강조하는 시어머니 탓에 괴로워한 며느리들이 있다면 오해를 풀 만한 이론을 논리적으로 제시해 주기도 한다. 중세 유교의 덕목쯤으로 여겨지며 많은 여성을 옥죈 현모양처론은 사실 알고보면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창안된 천황제 국민국가의 여성관이었다. 남성이 나라에만 충성할 수 있도록 뒤에서 가정을 맡아 꾸리며 자식을 충성스러운 신민으로 키우는 것. 그것이 현모양처론의 실체였던것이다.

일화를 담은 부분중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었던 상식을 뒤엎는 부분이다.

1990년대만 해도 남자가 시장에서 콩나물 값을 흥정하면 ‘체면 구긴다'고 흉본 이들이 많았을 테다. 하지만 조선시대 장은 ‘남성들의 공간'이었다고 한다. 여성들이 모르는 남정네들과 말을 섞는 것이 남 입에 오르내릴 만큼 수치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장보기의 주도자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넘어가게 된 계기는 개항이다. 개항 이후 전차, 기차, 극장 등의 등장으로 ‘남녀칠세부동석'을 지키기 어렵게 되자 장이 오히려 여성들만의 공간으로 바뀌어갔다. 시장에서 생선이나 콩나물을 팔아 자식 대학 보낸 어머니의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셈이다.

책에는 조금 애석한 이야기도 등장했는데 바로 한국 남성들이 통과의례처럼 겪는 포경수술에 대한 것이다. 책에 따르면 포경수술의 일반화는 한국전쟁 당시 성병 예방과 미 군의관의 수련 필요성이 겹친 결과였다. 단 1~2주 동안이라도 장병들의 성 접촉을 차단하면서도 의료진에게 풍부한 수술 기회를 줄 수 있는 절묘한 방법으로 포경수술이 지목된 것. 그 덕에 당시 조수 노릇밖에 못하던 비뇨기과 의사들이 수술실의 주역이 됐다는 후문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저자는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이라는 말을 가장 꺼려 한다. 신성 권력이 지배하던 시대에는 신과 신의 아들은 곧 영웅의 이야기였다. 세속 권력이 지배하던 시대에는 왕과 그 신하들의 이야기가 역사서에 담는 내용 그 자체였지만 지금의 역사는 그 때와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19세기 말~20세기 초 한인 회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상명대학교 강사와 서울시립대학교 부설 서울학연구소 상임연구위원을 지내고 2008년 현재 서울대학교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종로와 본정: 식민도시 경성의 두 얼굴', ‘식민지 도시 이미지와 문화현상'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 '서울상업사'(공저), ‘청계천: 시간, 장소, 사람'(공저), ‘서울 20세기: 100년의 사진기록'(공저) 등이 있다.

김정아 기자 jakk3645@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