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사정(司正)칼날 어디까지

검찰의 사정(司正)칼날이 또 다시 예의주시 되고 있다. 지난해 산업계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던 칼날이 이번에는 금융권과 증권가에 집중되고 있다. 실제 지난 3월 23일 우리투자증권, 삼성증권 등 5개 증권사에 대한 전방위 압수수색이 실시됐다. 이에 앞선 같은 달 중순께에는 부산저축은행을 시작으로 도민저축은행, 보해저축은행, 삼화저축은행 등도 압수수색이 진행됐다. 사정기관의 정신없는 칼날에 증권가는 물론 금융권도 혼비백산이다. 일각에선 “집권 후반기로 접어든 현 정권이 레임덕(권력누수현상) 방지를 위해 칼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 내막을 알아본다.

지난해에는 태광그룹, C&그룹, 한화그룹 등 산업계를 중심으로 사정기관이 칼날을 겨눴다. 완벽한 결론보다는 흐지부지한 결론으로 산업계 전반에 악영향을 끼쳤다.

그런 사정기관이 올해는 금융권과 증권가 등에 전 방위적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어 향후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이성윤 부장검사)는 같은 달 23일 삼성증권, 우리투자증권, 이트레이드증권, HMC투자증권, KTB투자증권 등 5개 증권사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해 ELW(주식워런트증권)거래와 ELS(주가연계증권) 관련한 전산자료와 거래내역 등을 확보했다. 증권사들이 ELW, ELS 등 특정상품의 불공정 거래에 개입했는지 여부에 대한 수사를 대대적으로 진행 중인 것이다.

검찰은 “ELW시장의 초단타매매자들이 시장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있다는 정황을 포착했다”며 수사 착수 이유를 설명했다.

국내 ELW시장에서 활동하는 초단타매매자는 수 십여 명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거래비중이 전체 ELW 거래금액의 70%를 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앞선 같은 달 중순께에는 부산저축은행을 시작으로 도민저축은행, 보해저축은행, 삼화저축은행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검찰은 부산저축은행 대주주 및 핵심 임원에 대한 소환 여부와 일정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조율할 방침이다. 앞서 검찰은 부산저축은행의 회계감사를 담당했던 D회계법인 관계자들을 소환해 부실감사 여부 등을 캐물었다.

검찰은 또 부산저축은행이 전남 신안·고흥 조선타운 일반산업단지 조성사업에 참여하게 된 경위를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저축은행과 부산2저축은행은 신안 조선타운 일반산업단지 조성사업에 각각 23억5000만 원과 47억 원을 출자했다. 고흥 조선타운 일반산업단지 조성사업에는 부산저축은행이 19.4%의 지분을 갖고 이 사업을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에 참여하고 있다.

검찰은 부산저축은행이 이 사업에 출자한 금액이 크지는 않지만 사업에 참여한 유일한 저축은행으로서 사업자금 조달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삼화저축은행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도 압수물 분석에 주력하는 한편 조만간 임직원들을 차례로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 은행 명예회장인 대주주 신모씨가 예금을 불법 대출해주고 건마다 10% 정도 이자를 붙여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조사하고 있으며 비자금을 만들어 금융권이나 정·관계 로비 자금으로 들어갔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저축은행업계에 대한 수사는 전반적인 부실을 촉발한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와 불법대출 혐의에 두고 있다.

하지만 저축은행에 대한 수사를 담당하는 곳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라는 점을 감안할 때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여부까지 수사가 확대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부실을 촉발한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와 같은 대규모 이권사업에 부패 커넥션이 작용했을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각에선 이번 사정기관의 수사에 대한 의문점을 품기도 한다. 비리를 척결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정기관의 칼날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는 의구심이다. 특히 현 정부와의 마찰이 이번 수사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된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집권 후반기로 접어든 정권이 레임덕(권력누수현상) 방지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사정당국의 적극적인 활용이라는 것은 하나의 공식과 같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MB집권 말기 목 죄기 수사다” 논란

또 최근 사법제도개혁안에서 대검 중수부의 폐지가 거론되면서 검찰이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전형적인 ‘전시행정’의 일환이라는 비판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대검 중수부는 하나의 부서 의미를 넘어 최고 수사기관인 검찰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정치권에서 검찰의 상징을 없애려는 움직임이 오히려 대검 중수부가 정치권마저 겨냥할 수 있는 수사를 직접 담당하게 한 원인이라는 분석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검찰수사가 강도 높게 진행됐던 전례에 비춰보면 최근 이어지는 수사도 그 강도를 짐작케 하고 있다.

검찰관계자도 “특정 개인이 수사 대상이 아니라 증권사와 시장 전체가 수사 대상”이라고 말해 이 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흐트러진 시장 질서를 바로 잡아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이뤄지도록 사정당국의 역할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도 “혐의만을 두고 지나치게 수사의 강도를 높이면 사실상의 경제행위가 마비될 수밖에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사정기관의 이번 조사에 대한 촉각이 곤두서고 있다.

[이범희 기자] skycro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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