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 가구입찰 특혜 논란

중소가구업체가 대기업에 특혜를 줬다고 주장하는 입장공고문의 일부

기업은행(은행장 조준희)이 중소기업과 때 아닌 마찰을 빚고 있다. 기업은행이 충주종합연수원에 새로이 입주하면서 가구들을 구입하기로 했는데, 까다로운 자격요건을 공지해 문제가 되고 있다. 가구업체의 경우 규모는 작아도 오랜 전통을 가진 기업이 많다. 그러나 기업은행은 이들 가구업체가 맞추기 어려운 자격요건을 공지해 세간의 빈축을 사고 있다. 이에 중소 가구업체들이 불만을 성토하고 있다. 중소 기업을 위해 설립된 기업은행에 대한 불신이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조 행장이 취임하자마자 이런 일이 발생해 조 행장의 리더십 관문대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그 내막을 알아본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인을 위하여 설립된 특수은행이다.

효율적인 신용제도의 확립과 원활한 중소기업자의 자주적인 경제활동, 중소기업인의 경제적인 지위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주요업무로는 ①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대출·어음할인, ② 예금·적금업무, 중소기업자의 주식·사채에 대한 응모·인수, ③ 자금차입, ④ 정부기관의 위탁업무, ⑤ 중소기업에 대한 조사·기업지도, ⑥ 중소기업금융채권 발행, ⑦ 차관 도입·대출, ⑧ 증권업무, ⑨ 신탁업무 등이 있다. 그야말로 중소기업인 들과 함께 성장하는 은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용욱 대우증권 연구원은 “적어도 기업은행이 중소기업 금융만큼은 일반 기업금융의 최강자로 불리는 우리은행보다도 강한 영업력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최근 기업은행이 중소기업인들을 무시하는 듯한 분위기의 공지사항을 발표해 논란이 되고 있다.

더군다나 윤용로 은행장에서 조 행장으로 바뀐 지 2달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한 일이라 조 행장에 대한 불신론이 고개를 드는 상황이다. 조 행장은 지난 2월말 취임했다.

기업은행은 지난달 25일부터 28일까지 가구업체를 대상으로 공지를 냈다. 새로 입주하는 충주종합연수원에 설치될 가구류에 대한 입찰 공지문이었다.

공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충주종합연수원에 설치될 가구류의 입찰을 전자입찰 방식으로 실시할 예정이다”며 “입찰 품목은 책상, 작업용의자, 소파, 침대, 탁자, 캐비닛, 책상, 식탁, 패널시스템용 칸막이 등 9개 제품으로 총 29억9000만 원 규모”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업은행은 입찰조건으로 ▲상기 9개 품목을 직접 생산해 조달이 가능한 업체 ▲단일계약으로 15억 원 이상의 가구 납품실적을 보유한 업체로 제한했다.

이와 관련 중소가구업계는 기업은행의 입찰조건이 사실상 일부 대형가구업체만을 위한 특혜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중소가구업체의 현실을 외면한 처사라는 지적이다.

특히 업계는 기업은행이 조건으로 내건 ‘9개 품목의 직접생산’에 해당하는 업체는 종합제조사인 소수의 대형가구업체만 해당될 뿐 의자, 책상, 소파 등만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중소가구제조사들은 참여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성토 끊임없어]

한편에선 이는 중소기업의 판로를 확대해주는 중소기업제품구매촉진법의 취지와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이 법은 정부 등 공공기관이 수요로 하는 물품을 구매함에 있어 중소기업자가 생산하는 물품의 구매를 촉진함으로써 중소기업의 안정 가동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1981년 12월 31일자로 제정되었으며 시행령과 시행규칙도 제정됐다.

이 법의 주요 내용은 ① 공공기관이 물품을 구매하고자 할 때에는 중소기업자가 생산하는 물품 구매를 증대토록 의무화하고 있으며 ② 중소기업협동조합과의 단체 수의계약제도 등을 명문화 했으며 ③ 공공기관과의 계약을 체결할 때에 계약보증금을 면제할 수 있으며 ④ 공공기관은 매년도 중소기업제품 구매계획서를 작성 공고토록 했다.

때문에 이번 기업은행의 공지문에 대해 중소기업인들의 반발이 크다.

취재진이 만난 납품업체 대표 A씨는 “(기업은행의)이번 조건은 책상, 의자 등 단일품목을 수년간 생산해온 전문 중소기업의 입찰을 막고, 특정 업체를 밀어주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며 대형업체와의 밀월관계를 의심했다.

또 다른 가구업체 대표 B씨도 “입찰방식을 논하기 전에 기업은행은 중소기업인들과 성장한 금융사 아니냐”며 “중소기업을 위한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이번 입찰방식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최소한 단일품목을 생산하는 중소업체들의 컨소시엄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세간에선 이번 사건이 조 행장에 대한 경영시험대가 될 것이라며 조심스럽게 관측했다. 윤 전 행장이 타 은행으로 이직하고, 조 행장이 취임한 지 불과 2달이 되지 않은 시점에서 중소기업인들과의 마찰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입찰공지와 관련해 기업은행 관계자는 “직접생산 증명의 경우 단품으로 입찰을 하게 되면 관리비용이 늘어나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매출 실적 제한의 경우에도 ‘공공기관 입찰 국가계약법’에 규정된 수준보다도 절반 정도로 낮게 잡아 중소가구업체들의 참여 조건을 완화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때문에 양측의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범희 기자] skycro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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