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고정현 기자] 바른미래당의 ‘노선 투쟁’이 점입가경이다. 지난 8일 연찬회에서 노선 논쟁이 촉발된 데 이어 13일 창당 1주년 행사마저 반쪽짜리 행사에 그쳤다. 유승민 전 대표를 비롯한 지상욱·정병국·이혜훈 의원 등 당내 보수 성향 인사들이 대거 불참하면서다. 당 정체성과 노선을 둘러싼 당내 불협화음이 그대로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치권은 바른미래당의 ‘분열’ 시기로 이달 27일 예정된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를 주목한다. 유력 당권 주자인 황교안 전 총리,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이 보수대통합을 외치는 등 유 전 대표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유 전 대표가 한국당 전대 전 결별을 위한 ‘명분 쌓기’를 진행 중이라는 관측도 내놓는 실정이다.

 

- “결별은 시간문제, 화학적 결합 힘들다... 유일한 변수는 황교안”
- “劉, 내심 오세훈 당선 바라고 있을 것... 黃 당선 땐 복귀해도 찬밥 신세”


바른미래당은 창당 1주년 행사에서 지역과 정치적 성향을 넘어 합리적 개혁의 뜻을 함께하는 대안정당으로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손학규 대표는 13일 오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창당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보수나 진보, 영남이나 호남이 아닌 합리적으로 개혁적 뜻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동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창당 1년, ‘개혁’ 외쳐 보지만...
바른미래는 '각자도생' 중

그러나 '개혁 보수' 노선을 고수하는 바른정당계 의원들이 행사에 불참하고 호남계 의원들은 민주평화당과 통합론을 재차 주장하면서 '반쪽 기념식'이 됐다는 평가다. “함께 한 1년, 새로운 도약”을 주제로 열린 1주년 창당 행사에는 바른미래당 현역 의원 29명 중 16명이 참석했다.

국민의당계 의원들이 대부분 참석한 것과 달리 보수 성향의 유승민 전 대표를 비롯한 이언주·지상욱·이혜훈·정병국·정운천 의원 등이 모두 불참했다. 당 지도부가 최근 개혁 보수와 합리적 진보의 통합 노선을 확정한 데 대해 반발했기 때문이다.

손학규 대표는 이들의 불참에도 ‘합리적 진보’를 수차례 언급하며 논쟁 여지가 없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지난 8일 열린 당 연찬회에서 유 전 대표가 '바른미래당이 진보 정당은 아니다'고 말한 것과 전면 배치된다. 당 지도부가 나서 창당 후 1년여간 계속된 정체성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것으로 보이지만 바른정당계 의원들이 반발하고 있어 오히려 분란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민평당과의 통합 주장도 계속 나오면서 내홍이 심화되고 있다. 이는 유 전 대표의 ‘개혁보수 노선’에 대한 대응 성격이다. 박주선·김동철 의원은 12일 민평당 장병완·황주홍 의원과 ‘한국정치발전과 제3정당의 길’을 주제로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고 통합의 필요성을 밝혔다. 이들은 지난달 30일에도 만나 내년 총선에 대비, 두 당 간 통합 논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은 유 전 대표가 사실상 당내에서 개혁 보수 노선이 거부되면서 총선까지 한배를 탈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당장 지난 8일 연찬회에서 양쪽은 앞으로 당이 결합할지, 아니면 갈라설지를 놓고 “우리가 먼저 떠나지는 않는다”면서 서로 상대방을 겨눈 듯한 뒷말을 했다. 내년 총선 때까지 양측이 같이 갈지에 대해서도 양측 모두 확답하지 못했다.

손 대표가 지난 9일 연찬회 종료 후 국회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기자들과 만나 “유승민 의원은 ‘당을 떠나지 않는다. 창당 1주년을 계기로 바른미래당에서 내년 총선까지 확실히 간다’고 했다”고 했지만 유 전 대표 측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유 전 대표 측 인사는 11일 한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손 대표께서 말씀한 유 대표가 ‘당을 떠나지 않는다. 내년 총선까지 확실히 간다고 했다’는 발언은 사실무근”이라며 “유 대표가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고 한다. 입장을 확실히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 역시 “두 세력이 갈라져 국민의당, 바른정당 세력으로 나뉘게 된다면 바른정당은 한국당 세력에 합류하게 되고, 국민의당 세력은 다시 평화당과 통합하게 될 시나리오가 유력하다”고 점쳤다.

바른정당 출신 8명,
국민의당 출신 21명...
세력 경쟁 시 必敗

이에 정치권은 이번 바른미래당 연찬회와 창당 1주년 행사가 사실상 유 전 대표의 탈당 명분을 강화하는 자리가 됐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유 전 대표가 오는 27일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결과를 지켜본 후 최종 거취를 결정할 것이라는 해석이다. 실제 유력 당대표 후보로 거론 중인 황교안 전 총리를 비롯해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주요 당권 주자들도 보수대통합을 위해 유 전 대표와 함께 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바 있다.

바른미래당의 한 관계자는 “유 전 대표가 섣불리 움직이지는 않겠지만 총선까지 바른미래당에서 함께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시기의 문제만 남았지, 화학적 결합은 사실상 힘들다는 게 당내 중론이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의석수가 많은 국민의당 출신 의원들이 ‘정체성’ 싸움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는 점도 유 전 대표의 탈당설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바른정당 출신 의원은 현재 8명인 가운데, 국민의당 출신 의원들은 21명(비례 4인 비활동)으로 두 배 이상이다. 합당 이후에도 바른정당 출신인 이학재 의원이 한국당 행을 택했고, 원내 의석수 등 세력경쟁에 밀려 당 대표, 원내대표 모두 국민의당 출신들이 차지했다.

유일한 변수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찬성으로 새누리당(현 한국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을 창당한 유 전 대표가 사실상 탄핵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는 황 전 총리와 한 지붕 아래서 공생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더욱이 황 전 총리가 당 대표가 돼 공천권을 휘두른다면 유 전 대표뿐만 아니라 바른미래당 출신 의원 전체가 ‘공천 학살’을 당할 가능성도 높다.

지난 총선에서도 이한구 전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의 ‘공천 파동’으로 유 전 대표는 무소속으로 고군분투했던 만큼 황 전 총리가 당선된다면 이들의 복귀는 사실상 물 건너간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전문가들도 황 전 총리의 한국당 입당이 유 전 대표 등 바른정당 출신 바른미래당 의원들의 한국당 복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유승민 전 대표는 박근혜 탄핵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며 “황 전 총리가 대표가 된다면 보수 대통합을 얘기하겠지만, 내용으로 보면 유승민 전 대표와 이혜훈 의원 등은 복당 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누구보다 한국당에 복당 하고 싶은 사람은 유승민 전 대표일 것이다”라며 “내심 황 전 총리가 아닌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당대표가 되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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