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북미정상회담의 일정이 정해졌다. 2월 27일과 28일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갖기로 한 것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속담이 있지만, 2월 27일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결의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새누리당의 분열로 인해 탄생한 제1야당 자유한국당의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가 실시되는 날이다.

박근혜의 황태자로 인식되고 있는 황교안 전 총리가 자유한국당 입당과 함께 당대표 도전을 선언하여 일찌감치 1강을 형성한 가운데, 원조보수의 아이콘으로서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원죄를 씻고 힘차게 재도약을 꿈꾸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지난 19대 대선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로 출마했던 홍준표 전 대표가 황교안의 대항마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좀처럼 혁신에 우호적이지 않은 자유한국당의 구성원들은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사고에 매몰되어, 확장성의 한계가 명확하게 보이는 황교안 전 총리를 당의 간판으로 내세우려는 여론이 강하게 형성되고 있었다. 오세훈도 홍준표도 이런 상황에서 별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울고 싶은 아이 뺨 때려 준다’는 격으로 북미정상회담의 일정이 자유한국당의 전당대회 일정과 겹치게 된 것이다. 퇴로를 모색하고 있던 반 황교안 세력들은 일제히 이를 환영하며 자유한국당의 전당대회 일정을 연기할 것을 주장했고, 이러한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전당대회를 보이콧하겠다는 엄포를 놓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질서 있는 퇴진’을 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결국 자유한국당 선거관리위원회는 전당대회를 예정대로 진행하겠다고 결정했고, 홍준표를 필두로 한 기타 후보들은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했다. 당초 불출마를 강하게 시사했던 오세훈은 반 황교안 세력들이 불출마를 선언함으로써 전당대회를 계기로 재도약을 하겠다는 기존의 전략을 밀어붙이기로 결정했다. 여기에 ‘친박’임을 노골적으로 표명하면서 가장 먼저 레이스에 뛰어든 김진태 의원까지 차기 총선을 진두지휘할 자유한국당 후보로 3명이 경쟁하게 되었다.

황교안, 오세훈, 김진태 후보의 3파전으로 선거구도가 형성되면서, 당초 ‘친박’과 ‘비박’이라는 프레임으로 흐를 것 같았던 자유한국당 당대표 선거는 의외의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수인 박근혜의 대변인격으로 알려진 유영하 변호사는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해 “황 전 총리가 박 전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뜻을 여러 번 전해왔는데, 박 전 대통령이 거절했다”고 밝히며, “황 전 총리가 ‘친박’이냐는 것은 국민들께서 판단하실 수 있다고 본다”며 황교안 후보가 ‘진박’이 아님을 감별했다.
‘친박’임을 자처하는 김진태 후보는 당대표 출마 출정식도 거창하게 했지만, 후보 접수에 앞서 ‘5.18 망언’도 거창하게 기획함으로써 전국적인 인지도를 한껏 높였다. 오로지 자신만이 ‘진박’ 후보이며, 진짜 수구보수임을 각인시킴으로써 황교안 후보의 오른쪽 빈틈을 파고들었다.
오세훈 후보는 자칫 황교안 후보의 들러리가 될 위험에서 보수혁신의 기치를 내걸고 자유한국당이 수인 박근혜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함을 역설했다. 원조보수의 아이콘으로서 보수의 새로운 진면목을 보이겠다는 당찬 각오이다.

이로서 자유한국당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는 수구(守舊)보수 김진태, 무(無)보수 황교안, 개혁(改革)보수 오세훈으로 정립됐다. 이들은 각자 자신이 자유한국당을 재건시킬 것이라고 자신하지만, 실제로 자유한국당을 재건하는 것은 이들 후보들이 아니라 자유한국당 유권자들의 판단이 될 것이다. <이경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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