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정치팀] ‘박심’ 논란과 ‘태극기 세력’의 위세에도 ‘황교안 대세론’은 굳건한 모습이다. 친박계나 영남권 지지자들의 반발이 크지 않아 황교안 호(號)의 출범이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진짜 게임은 전당대회 이후부터다. 이번 전당대회는 21대 총선을 위한 예선전에 지나지 않는다. 차기 지도부는 총선 공천권 일체를 쥐고 자유한국당을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황교안 전 총리는 전대 레이스에서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 우(愚)를 범하고 말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탄핵 부정’ 발언으로 제 발로 여당의 ‘탄핵 프레임’ 덫에 걸렸다. 여당에게 총선을 ‘촛불 시즌2’ 프레임으로 몰고 갈 수 있는 빌미를 줬다는 해석이다. 설상가상으로 전대가 계파 대결 구도로 치러짐에 따라 전대 이후 비박계의 지도부 ‘흔들기’는 불 보듯 뻔한 일이 됐다. 최악의 경우 비박계의 총선 전 탈당까지도 예견된다. 바른미래당 내 유승민계의 복당도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이에 당내 일각에선 황교안 호(號)로는 총선을 치를 수 없다며 총선 전 ‘비대위 체제론’까지 대두되는 분위기다.

 

- ‘탄핵 프레임’·‘비박계 탈당’·‘보수 분열’= 총선 必敗
- 21대 총선, ‘촛불 시즌2’ 가능성... 비대위 구성해도 ‘글쎄’

 

아시아투데이 의뢰로 알앤써치가 2월 20일 공개한 한국당 당대표 적합도 조사(15~17일 실시)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한국당 지지자의 50.6%가 황교안 전 총리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진태 의원은 18.7%,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17.5%로 나왔다. 앞서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황 전 총리의 ‘1강’ 판세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만 19세 이상 전국 성인 남녀 1160명을 대상 지난 15~17일 실시, 응답률 8.2%,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2.9%.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황 전 총리 측은 사실상 이미 승부가 났다고 보고 있다. 황 전 총리 주변에서는 당선 가능성보다 득표율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과반을 넘는 압도적 득표율로 당대표로 선출돼야 확고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黃 ‘朴 탄핵 부정’ 발언에
민주당은 ‘표정관리’ 중...

그러나 황 전 총리 측의 기대와는 달리 당내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전당대회 이후 상황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황 전 총리 측의 당선을 기정사실화하면서도 황교안 호(號)로는 21대 총선을 치르기 힘들다는 것이다.

당장 황 전 총리가 전대 레이스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 후폭풍이 거세다. 황 전 총리는 지난 19일 TV조선에서 생중계된 한국당 2.27 전당대회 3차 TV토론회에서 “박근혜 탄핵은 어쩔 수 없었다”는 질문에 아니오(X) 팻말을 들며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핵심 논리는 ‘절차적 문제’였다. 그는 “헌법 재판이 이뤄지기 전에 동시에 법원에서 사법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 진행 중에 (탄핵) 결정이 있었다”며 “절차적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객관적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는데, 정치적 책임을 묻기 위해 쉽사리 탄핵됐다”고도 했다. 재판으로 잘못된 점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받은 뒤 탄핵을 했어야 한다는 이른바 ‘선(先)재판-후(後)탄핵’ 논리다.

그동안 탄핵 입장에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즉답을 피한 황 전 총리가 탄핵 반대를 내세운 것은 처음이었다. 지지층이 겹치는 김진태 의원이 ‘태극기 세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상황에서 태극기 표심에 구애하려는 정치적으로 계산된 발언으로 보이지만, 이는 되레 ‘탄핵 총리’라는 부정적 꼬리표를 재확인했다는 지적이다.

황 전 총리가 자유한국당의 간판이 될 경우, 민주당은 탄핵 프레임으로 그를 가두려 할 것이 자명하다. 당장 민주당은 20일 황 전 총리의 이 같은 발언과 관련해 “국민 모독”, “역사 퇴행 발언”이라며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이날 당 확대간부회의에서 “여야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탄핵 소추가 이뤄졌고 헌법재판관 만장일치로 탄핵이 결정된 바 있다”며 “황 전 총리도 당시 담화문을 통해 ‘탄핵 결정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내려진 것으로 헌재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이제 와서 탄핵이 잘못됐다는 건 명백한 자기부정이고 민주주의 수호한 국민 모독”이라며 “헌법과 민주주의 정신을 존중하지 않는 정당은 존속할 가치가 없다. 헌법과 민주주의 부정한 역사 퇴행에 통렬한 반성과 사과를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민주당 내부에선 황 전 총리가 제 발로 ‘탄핵 프레임’에 걸려 주자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황 전 총리의 당선을 누구보다 바라고 있는 쪽은 민주당”이라며 “여당이 유독 황 전 총리에게 공세를 퍼붓는 것도 그의 당선을 바라서다. 그를 때리면 때릴수록 그의 지지층이 결집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관측했다.

비박계, 탈당 불사
지도부 흔들기 관측...

황 전 총리의 당선을 내심 기대하는 쪽은 민주당뿐만이 아니다. 바른미래당 역시 황교안 호(號)의 출범을 누구보다 바라고 있다. 황 전 총리가 한국당의 당권을 잡게 될 경우 바른미래당 내 유승민계 인사들은 사실상 복당 명분을 상실하게 돼 지도부의 회유가 보다 탄력받을 수 있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바른미래당 내 보수 성향의 한 의원은 인터뷰에서 “우리 당으로서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당대표) 당선이 가장 나쁜 결과다”라며 “비박계인 오 전 시장이 당권을 쥐게 될 경우 보수통합을 주장하며 당내 비박계에게도 복당 명분이 주어지는 것이고, 반면 황 전 총리가 당선될 경우 친박 중심에서 당분간 (비박계가) 쉽게 움직이기는 힘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국당 내부에서 황교안 호(號)로는 총선 필패가 자명하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황 전 총리의 탄핵 부정 발언이 노선과 가치의 재정립을 통해 보수 재건에 나서겠다던 ‘김병준 비대위’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일 뿐 아니라 한국당의 과거 회귀를 보여주는 단면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설상가상으로 당내 일각에서는 보수대통합은커녕 지금의 당마저 둘로 쪼개질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차기 지도부는 21대 총선 공천권과 관련한 권한 일체를 가진다. 국회의원에게 공천권은 생명줄과 다름없다. 황 전 총리가 박 전 대통령 탄핵을 부정한 상황에서 당내 복당파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 자명하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복당파는 목숨을 내놓고 지도부에 결사 항쟁할 것이고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총선 직전 탈당해 바른미래당에 둥지를 틀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과거 친이계가 친박계를 대상으로 한 ‘공천 학살’ 사태는 이 같은 관측에 설득력을 더한다. 지난 2008년 총선 정국에서 당권을 장악한 친이계는 친박계 인사들을 모조리 날려 버리는 ‘공천 학살’을 자행했다. 친이계로부터 공천 학살을 당한 친박계는 당시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친박연대’와 ‘친박무소속연대’ 등으로 총선에 임했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황교안 체제가 들어선 직후부터 비박계의 지도부 흔들기가 시작될 것이고 한국당은 지리한 계파 갈등의 소용돌이에 다시 빠져들게 될 것”이라며 “그렇게 1년 2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은 총선 전까지 내부 총질에 혈안이 될 것이고 총선 직전엔 비박계의 탈당 러시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총선 필패가 자명하다”라고 말했다.

박근혜→김희옥→인명진
→김병준... 다음은?

상황이 이쯤 되자 한국당 내 일각에선 총선 전 ‘비대위 구성론’까지 고개를 드는 모습이다. 한국당의 전신 새누리당 출신인 정두언 전 의원은 한 매체에 출연해 “황 전 총리가 대표가 되고 총선이 가까워 왔다. 근데 당이 도저히 안 뜬다. 그러면 총선 전에 비대위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라며 “19대 총선 때도 홍준표 대표 체제였지만 도저히 이 체제로는 총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인식이 당내에 팽배해졌고 그래서 박근혜 체제가 생겨서 박근혜 비대위로 총선을 치러서 간신히 이겼다. 그런 예는 많았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참패,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 공격 사건 연루 등으로 위기에 봉착한 당시 한나라당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킨다. 박근혜 비대위는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꾼다. 현역의원 25%를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인적쇄신도 단행한다. 그 결과 새누리당은 과반의석(152석)을 획득하며 총선에서 승리한다. 박근혜 비대위가 자유한국당의 ‘비대위 역사’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비대위로 평가받는 대목이다.

이후에도 자유한국당의 비대위 역사는 계속됐지만 한 차례도 성공하지 못한다. 새누리당은 2016년 20대 총선 참패를 극복하기 위해 또 한 차례 비대위를 출범시킨다. 김희옥 전 헌법재판관이 위원장을 맡았다. 그러나 김희옥 비대위는 친박계와 비박계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 채 두 달 만에 끝난다.

쇄신 기회를 놓친 새누리당은 곧바로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다. 새누리당 1호 당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 소추된다. 비박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탈당과 신당 창당이 이어졌다.

새누리당은 인명진 목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비대위를 또 출범시킨다. 인명진 비대위는 당명을 자유한국당으로 바꾸고 전열을 정비한다. 그러나 인적쇄신은 서청원·최경환 의원을 징계(당원권정지 3년)하는 데 그친다. 쇄신에 실패한 한국당은 결국 정권을 내준다.

황교안 전 총리는 최근 발표된 대선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이낙연 총리를 제치고 1위에 등극했다. 보수 재건을 바라는 보수층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전대 레이스에서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쫓은 그의 행보는 자유한국당에 또다시 먹구름을 드리웠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황교안 체제로도 총선 필패가 자명하고, 비대위가 구성된다 해도 그동안의 내부 총질로 인한 내상은 회복하기 힘들 것”이라며 “총선에서 패하고 정권을 또다시 내주는 악순환의 반복”이라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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