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N 여행 이야기] 슬로베니아, 그 낯선 휴식 [두 번째 여정]
[GO-ON 여행 이야기] 슬로베니아, 그 낯선 휴식 [두 번째 여정]
  • 프리랜서 함희선 기자
  • 입력 2019-03-04 13:44
  • 승인 2019.03.04 14:45
  • 호수 1296
  • 6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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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김정아 기자]
[편집=김정아 기자]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 유럽 동남부의 작은 나라 슬로베니아. 다소 낯설고 이름 내세울 곳 없는 듯하지만, 알프스산맥에서 아드리아해까지 때 묻지 않은 자연을 품고 있는 기대 이상의 여행지다. 이웃 국가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크로아티아에 가려진, 슬로베니아의 숨어있는 매력을 탐하며 누린 휴식. 어느새 찾아든 잔잔한 기쁨이 짙게 스며들어 지워지지 않는다.

스코찬 동굴 : 거대한 지하 세계

슬로베니아는 카르스트 지형으로 뒤덮인 땅이다. 카르스트 단어 자체가 슬로베니아에서 유래했을 정도니까 더 이상 설명은 필요 없을 테다. 석회암이 녹아서 형성된 동굴이 국토 서부 곳곳에 흩어져 있는데, 그 수가 무려 8천이다. 슬로베니아 사람들에겐 매년 새로운 동굴이 발견됐다는 뉴스는 이젠 놀랍지도 않단다. 일반인이 방문할 수 있는 동굴은 8천 개 중 20개에 불과하며, 그중에서 규모가 크면서도 방문자가 가장 많은 곳이 포스토이나 동굴이다. 이미 200년 이상 관광객이 드나든 역사가 있고, 슬로베니아를 찾는 우리나라 여행자들의 단골 코스이기도 한데, 그러나 감히 포스토이나 대신 스코찬 동굴을 추천한다. 석회암 동굴이 거기서 거기라고 치부한다 해도, 차원이 달라도 아주 다른 동굴이기 때문이다. 흔히들 ‘물과 시간이 빚은 자연의 예술작품’이라고 일컫는 석회동굴의 종유석, 석주, 석순의 섬세한 아름다움은 두말할 것 없고, 이건 그냥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또 하나의 거대한 지하 세계다. 총 길이는 5.8킬로미터. 게다가 동굴에서 가장 높은 곳이 무려 146미터에 이른다. 바닥에 딱 붙어 서서 그 공간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감탄사만 쉼 없이 뱉게 된다. 마치 등산을 하듯 언덕을 오르락내리락 걷고, 아찔한 다리와 강을 건너며 구경해야 하는 동굴. 어떤 순간에는 영화 <반지의 제왕>의 배경 속으로 빠져든 게 아닌가 착각이 든다. 우리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땅속에 존재하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마주할 수 있다.

레카강이 새겨 놓은 스코찬 동굴은 오로지 전문 가이드와 함께 둘러보는 것만 가능하다. 일단 들어가 보면 안다. 혼자서는 절대 길을 찾아 나올 수 없을 거란 걸. 지상에서 지하 250미터 깊이까지 들어가야 하고, 2킬로미터나 되는 길을 걸어야 비로소 반대편에 뚫려있는 거대한 동굴 입구의 빛을 볼 수 있다. 최소한의 조명만 설치해놓아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동굴을 경험할 수 있는 한편, 가슴 쿵쾅거리는 스릴이 넘쳐난다.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는 암흑의 공간이 연속되면 누군가에겐 공포일 지도 모르겠다. 스코찬 동굴 탐험은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산 후 가이드와 함께 영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슬로베니아어로 그룹을 나누며 출발한다. 포스토이나 동굴에 가족 단위의 여행자가 많다면, 스코찬 동굴을 찾은 사람들은 한눈에 봐도 표정이며 차림새가 강인한 모험가에 가깝다. 실제로 어둠 속에서 미끄러운 동굴 길을 걷고 헤쳐 나가려면 기초 체력은 필수다. 가이드는 선인장처럼 피어난 돌의 정글과도 같은 동굴 곳곳에 손전등을 비추며 흥미로운 사실들을 전하고, ‘언더그라운드 그랜드 캐니언’이라는 별명이 전혀 무색하지 않을 만큼 스펙터클하고 신비로운 풍광에 취해 걷다 보면 2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스코찬 동굴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언어에 따라 한 그룹당 30명으로 구성해 단체 투어를 진행하는데, 어둠 속에서 사진을 찍다 보면 다칠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2킬로미터 남짓 걷는 일정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동굴을 탐험하는 동안은 가이드의 안내에 철저히 따라야 한다. 한편, 동굴은 연중 0~12도다. 추위를 느끼지 않도록 얇은 겉옷을 준비하는 게 좋다.

Piran

피란 : 베네치아를 닮은 마을

47킬로미터의 짧은 해안선을 갖고 있는 슬로베니아에서 피란은 그야말로 보석이다. 아드리아 해를 끼고 있는 도시는 코퍼와 이졸라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여행자가 주저 없이 사랑스러운 바닷가 마을 피란을 택한다. 슬로베니아 사람들도 예외 없다. 류블랴나 시민들도 문득 바다가 보고 싶어지는 날이면 피란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난다. 워낙 땅덩어리가 작은 덕분에 국토 중심부의 류블랴나에서 서쪽 끝의 바다까지는 차로 단 1시간 30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모두가 사랑해 마지않는 피란의 매력은 고아한 중세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포토제닉한 풍광이다. 13세기부터 500년간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았던 오래된 어촌 마을은 겉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베네치아. 그 낭만적인 아우라에 유혹당하지 않을 이는 없다.

피란 여행의 출발점은 대리석이 깔려 있는 타원 모양의 말쑥한 타르티니 광장이다.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 주세페 타르티니에게 바쳐진 광장. 바이올린을 손에 든 그의 동상이 광장 왼쪽에 서 있고, 비발디와 함께 당시 최고 음악가로 이름을 올렸던 타르티니가 태어난 집이 바로 이 광장에 온전하게 남아 있다. 시청, 법원, 해양 박물관 등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이 에워싸고 있는 타르티니 광장에서도 더 주의 깊게 봐야 하는 건물은 베네치안 하우스다. 폭이 좁고 높은 15세기 고딕 베네치안 스타일의 건축물. 베네치아의 상인과 피란 여인의 러브스토리가 솔깃하지만, 더 흥미로운 주인공은 내부 상점에서 팔고 있는 피란 소금이다. 피란에서 멀지 않는 세촐리에 염전에서 700년 이상의 오래된 전통 방법만을 고수해 재배하는 청정 소금. 풍부한 바다 미네랄 함유로 적은 양만 첨가해도 무엇이든 맛있게 바꿔 마법의 소금으로 불린다. 자연 소금부터 소금 초콜릿, 소금 비누 등 화이트 패키지에 예쁘게 담긴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

광장을 둘러봤다면 그다음은 뒷골목 탐방이다. 사람 몇 명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골목길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있는 빛바랜 파스텔 톤의 건물들이 언덕을 따라 성조지 성당(St. George's Parish Church)까지 이어진다. 앙증맞은 갤러리와 빨래가 나부끼는 가정집이 미로처럼 들어서 있는 주택가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15세기 건설한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이내 성 조지 성당이 있는 언덕에 닿는다. 피란 어디에서도 시야에 들어오는 뾰족한 첨탑이 성당 옆에 우뚝 서 있다. 딱 봐도 베네치아 산 마르코 광장에 있는 종탑을 그대로 빼닮았다. 굳이 탑 꼭대기에 오르지 않더라도 타르티니 광장을 품고 있는 피란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아드리아 해의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모자이크 같은 주홍빛 지붕과 그 너머의 짙푸른 바다를 감상하기 좋은 명당이다.

tip

바닷가 마을 피란에는 지중해 스타일의 해산물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항구에서 당일 들여온 신선한 제철 해산물로 만든 요리는 무엇을 주문해도 맛있다. 여기에 슬로베니아산 화이트와인까지 곁들이면 완벽하다. 이탈리아의 영향을 많이 받은 만큼 파스타와 리소토 등 이탈리안 요리도 일품이다. 음식점이 줄줄이 들어선 해안가가 아닌 타르티니 광장에서 식사하고 싶다면 라 보테가 데이 사포리La bottega dei sapori를 추천한다.

 

프리랜서 함희선 기자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