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고정현 기자] “자유한국당 내 TK의 위상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전당대회 이후 TK 시·도민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당의 ‘최대 주주’로 평가되던 TK 의원들이 전대에서 받아 든 초라한 성적표 탓이다. TK는 당권주자 하나 배출하지 못한 채 최고위원 후보만 2명을 내세웠다. 하지만 그마저도 김광림 의원만이 꼴찌로 턱걸이하며 채면치레를 했고 윤재옥 의원은 낙선했다. 전대 초반부터 ‘황교안 대세론’이 휘몰아치면서 TK 의원 및 당원들이 차기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략적 선택을 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TK의 당내 영향력은 절대적으로 약화됐고 향후 산적한 지역 현안에도 목소리를 내지 못할 것으로 관측된다. TK 한국당이 ‘자승자박’의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는 지적이다.

주호영·김광림·윤재옥 의원이 지난달 4일 오후 대구지역 최대 전통시장인 서문시장을 찾아 시민들에게 새배를 하고 있다.
주호영·김광림·윤재옥 의원이 지난달 4일 오후 대구지역 최대 전통시장인 서문시장을 찾아 시민들에게 새배를 하고 있다.

 

- ‘황교안 대세론’에 ‘전략적 선택’? “자승자박(自繩自縛)”
- TK 출신, 최고위원 1명뿐... ‘TK 패싱’ 심화 관측

자유한국당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결과를 두고 대구경북(TK)이 자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빛바랜 ‘최대주주’...
고개 드는 TK 자성론

경북 ‘대표 선수’ 김광림 국회의원(안동)이 수석 최고위원 자리를 다툴 것이라는 애초 전망과 달리 4위로 ‘턱걸이’ 당선한 데다 대구를 대표해서 출전한 윤재옥 의원(대구 달서을)이 ‘낙선’하는 이변이 일어나면 서다.

당초 두 의원은 당원과 투표율이 높은 TK 표심만 응집한다면 무난하게 지도부에 입성할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당 책임당원(32만 8천 명) 중 TK(9만 6천 명)는 30%나 되고 참여율도 타 지역을 압도해서다.

전대가 치러지기 전 ‘보수의 심장’ TK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고 지역 현안 돌파구 마련을 위해선 TK에서 수석 최고위원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오랜만에 TK 한국당 의원들이 똘똘 뭉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한국당 TK 의원 및 당원들은 지역 의원들을 저버렸다. 김 의원과 윤 의원에게 표를 줘 봤자 차기 총선에서 자신들에게 ‘득’이 될 게 없다는 판단을 내렸을 공산이 높다.

차기 지도부는 총선 공천권 일체를 거머쥔다. 황교안 대표는 전대 초반부터 ‘대세론’에 안착해 있었다. 결국 TK 의원들이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략적 선택을 했다는 분석이다.

황 대표는 민심을 반영한 여론조사에선 1만 5528표(37.7%)로 오세훈 후보(2만 690표, 50.2%)에게 뒤졌지만, 당심인 선거인단 투표에서 5만 3185표로 오 후보(2만 1963표)에게 크게 앞섰다. 실제 일부 TK 친박계 의원들은 전대 과정에서 황 대표를 돕는 등 일찌감치 줄 서기에 나서기도 했다.

지역의 한 평론가는 “지역 의원 및 당원들이 이번 전당대회를 내년 총선을 위한 대회로 치부한 것 같다”며 “지역의 미래에 대한 걱정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또 다른 평론가도 “지역 의원들이 지역과 지역민들을 위한 투표를 했다면 최고위원 TK 후보들이 안정적으로 당선됐을 것”이라며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내에서 TK의 목소리는 약화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새 지도부에 TK 최고위원 한 명만을 배출한 상황에서 향후 지역 현안에 대한 당내 영향력은 절대적으로 약화되고 차기 총선에서 한국당이 TK 중심의 강력한 구심점을 형성하는데 차질이 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일각에서 이번 전당대회와 다음 총선을 거치며 한국당 내 ‘TK 패권’은 종식을 선언하게 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지역 정가 관계자는 “앞으로 당 운영의 영향력 측면에서 TK 발언권은 약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런 암울한 TK의 미래는 지역 의원들이 만든 것이다. 의원들의 뼈아픈 자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당 지지율 상승에도
TK 지지율은 하락

설상가상으로 TK 지역 내부에선 사건·사고마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큰 논란이 됐던 예천군의회 사태와 최교일 의원(영주-문경-예천)의 미국 출장 중 스트립바 출입 의혹에 이어 이번엔 현직 도의원의 도박 관련 사건까지 터진 것이다.

포항남부경찰서는 4일 주민들과 도박을 한 혐의로 A도의원과 주민 등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A도의원 등은 지난 2일 오후 7시~밤 9시 40분 포항 남구 연일읍 한 사무실에서 판돈 562만 원을 걸고 속칭 ‘훌라’ 도박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북 한국당 한 관계자는 “도의원이 현행범 체포라니 너무 창피하다. 사건·사고가 한두 번도 아니고 이번엔 또 도박이다. 지역민들이 우리 한국당에 얼마나 실망감을 느끼겠나”라며 “도대체 지난해 지방선거 공천을 어떻게 했기에 자꾸 이런 일이 터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그동안 TK 한국당이 크고 작은 논란에 원칙 없이 미온적·정무적으로 대처해왔기 때문에, 지금은 스스로 제 몸을 묶어버린 곤혹스러운 형국이 됐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도 이같은 TK의 분위기는 그대로 드러난다. 7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3월 1주 차 주중집계(무선 80·유선 20, 총 1512명)에서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한국당 지지율이 2주째 상승하며 국정농단 사태 본격화 직전인 지난 2016년 10월 2주차(30.5%) 이후 2년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정작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TK에서의 한국당 지지율은 전주 대비 7.9% 하락한 43.3%를 기록한 반면 민주당의 지지율은 전주 대비 6.3%p 상승한 28.0%로 집계됐다.

이번 주중집계는 지난 4~6일까지사흘 동안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1512명(응답을 6.9%)을 대상으로 무선 전화면접(10%), 무선(70%)·유선(20%) 자동응답 혼용 방식, 무선전화(80%)와 유선전화(20%) 병행 무작위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다.

통계보정은 2019년 1월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 기준 성, 연령, 권역별 가중치 부여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p이다. 자세한 조사 개요와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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