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회장의 롯데, 기간산업 외면사(史)

재계에서 ‘롯데’하면 부동산 재벌을 떠올리게 된다. 국내 재벌들 중 토지자산 규모로 명실상부한 1위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각에선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이 국부 창출에 기여하는 기간산업은 외면한 채 부동산과 소비재 산업 위주로 사업에 투자한 후 경제성장에 편승해 그룹의 부를 축적시켜 왔다고 냉소하기도 한다. 실제로 롯데그룹의 사업부문을 살펴보면 식품 등의 소비재와 유통, 관광, 금융 등 서비스 사업 및 일부 중화학, 건설, 기계 등의 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재계 5위 롯데그룹을 견인해 온 성장 동력이 비생산 부문에 집중돼 있는 것이다. 특히 유통과 관광 부문 등의 주요 자산은 노른자위 땅에 자리 잡고 있는 부동산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일요서울]은 연속 기획으로 신 회장의 사업성장 배경에 대해 집중 조명해본다.

신 회장이 일본에서 껌을 팔아 크게 성공한 후 한국에 최초로 투자해 설립한 ‘주식회사 롯데’와 ‘롯데화학공업사’는 당시 껌, 캔디, 비스킷, 빵 등을 생산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 회장이 귀국해서 사업을 정비하려는 와중에 재산권을 둘러싼 형제간 골육상쟁이 벌어졌다.

신 회장은 1966년 둘째 동생 신철호, 1973년 셋째 동생 신춘호 농심 회장과 지분 분쟁을 벌였으며, 1996년에는 막내 동생 신준호 푸르밀 회장과도 땅의 소유권을 두고 법정 소송을 벌였던 ‘비운의 맏형’으로 알려진다.

결국 동생 신철호는 캔디와 비스킷 부분을 따로 떼어내 ‘메론제과’를 설립했고, 신춘호 회장은 ‘롯데공업’을 창업해 라면시장에 진출했다. 특히 신춘호 회장은 맏형에 의해 ‘롯데’라는 상호의 사용을 거부당하자 완전히 독립해 ㈜농심을 설립해 국내 라면시장 1위 업체로 키워냈다.

신 회장은 1967년에 ㈜롯데와 롯데화학공업사를 해산하고 새로 자본금 3000만 원을 투입해 ‘롯데제과’를 설립함으로써 ‘한국롯데그룹’의 역사가 시작됐다.

이후 롯데그룹은 형제간의 암투로 법정 다툼까지 갔던 ㈜롯데 시절을 그룹사(史)에서 애써 무시하고 있다.


목 좋은 땅 선점해 부동산 왕국 이뤘다

이후, 롯데그룹은 기업 투자액보다 부동산 투자액이 많다는 지적을 자주 받아왔다. 특히 1987년의 경우 롯데그룹의 부동산 투자액이 기업 투자액의 13배가 넘는 2306억 원에 이르러 국내 50개 기업 중 수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롯데제과의 성장과 더불어 서울의 중심인 금싸라기 땅에 ‘롯데백화점’과 ‘호텔롯데’를 설립해 유통과 관광사업의 터를 닦았다. 1988년에는 잠실 벌판에 ‘롯데월드’를 개점하면서 호텔, 백화점, 쇼핑몰, 스포츠센터 등이 들어선 복합 관광단지를 만들었고, 올해에는 많은 논란 끝에 그 건너편에 ‘제2롯데월드’를 허가받아 건설하고 있다.

부동산 투자 위주로 승승장구한 롯데그룹은 최근 들어서는 ‘내수기업’ 이미지를 탈피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공격적인 해외투자와 M&A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지난 2009년 신동빈 한국롯데 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하고 직접 제시한 ‘롯데그룹 비전 2018’에서 ‘2018년 매출 200조 원, 아시아 톱10 글로벌 그룹 진입’으로 요약된다.

지난해 롯데그룹은 전년대비 30% 증가한 61조 원의 매출을 달성했으며, 2008년 미국발 1차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올린 성과라 더욱 주목받은 바 있다. 일본 노무라 증권맨 출신인 신동빈 회장이 ‘무차입 경영’ 신봉자인 신 회장을 설득해 부동산 매각과 차입을 늘려 적극적인 해외투자와 M&A를 추진한 결과였다.


신동빈 회장 한국서 돈벌어 ‘해외’서 손실?

일본을 시작으로 한국의 경제성장에 힘입어 부를 축적한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 체제 이후 중국과 인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 적극적인 해외투자를 추진해 오고 있다.

그러나 최근 롯데그룹이 의욕적으로 추진해오던 베트남 사업에 잇달아 적신호가 켜졌다. 지난 7월 말 대우건설이 보유했던 ‘하노이 대우호텔’과 부속 서비스 제공 아파트 및 사무실 전용 빌딩인 ‘대하 비즈니스 센터(DBC)’를 베트남 국영기업인 하넬에게 빼앗겼기 때문이다.

이달 말 하넬로 완전히 소유권이 넘어가면 DBC 맞은편에 건설 중인 지하 5층, 지상 65층 규모의 대규모 주상복합건물 ‘롯데센터 하노이’를 포함해 인근 지역을 롯데타운으로 조성하려던 롯데의 구상은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됐다.

대형 할인점 ‘롯데마트’도 지난 2008년 말 호찌민 시의 푸미흥 신도시 지역에 1호점을 연 것을 시작으로 2호점 개점을 서둘렀으나 코옵마트 등 현지 경쟁업체들의 조직적인 반발과 베트남 당국의 허가 지연 등으로 매장 완공 1년여 만인 지난해 7월 영업허가를 겨우 받았다.

또한 롯데마트는 이후 다점포화 전략을 추진해왔으나 증자 문제 등으로 현지 동업자(소유 지분 20%)와 갈등을 빚고 있다. 이 문제는 양측의 입장 차가 너무 커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찌민 시의 투티엠 지역에서는 호텔, 백화점, 대형 할인점, 놀이시설 등을 건설하려던 계획이 토지 보상 문제 등으로 사실상 백지화됐다고 한 소식통은 전했다.

이어 “롯데가 신동빈 회장 체제 출범과 함께 현지의 특성을 무시한 채 현금 동원력을 무기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결과, 의욕적으로 추진해오던 베트남 사업에 적신호가 잇달아 켜지고 있는 것 같다”고 소식통은 분석했다.

또 다른 소식통도 “현지에 진출한 대다수의 한국 대기업들은 현지의 움직임을 체계적으로 파악해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반해 롯데의 경우는 이러한 부분을 무시해 어려움을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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