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퇴직금은 회사 비자금”

버젓이 인터넷에 소개되는 CEO 퇴직플랜 상품.

“잘 배운 절세방법 열 효자 부럽지 않다”

사장님들의 퇴직금이 두터워지고 있다. 각 금융사에서 편법을 동원해 중소기업 사장들을 유혹하고 있다. 방법은 법망을 교묘히 피한 절세다.

법인 이름으로 계약을 하고 10년 정도 후에 계약자를 경영자로 바꾸면 된다. 현행 소득세법으로 법인세법의 구멍을 적절히 활용해 세금을 줄이고 퇴직금이나 비자금을 넉넉히 챙길 수 있다. 오래전부터 국내 생보사들이 법인 자산을 활용해 노후 설계를 하라며 보험을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합법이라는 포장위에 비윤리적 상품으로 평가받고 ‘CEO 퇴직플랜’, 비자금을 챙기려는 CEO와 보험판매를 늘리려는 보험사의 양심이 실종된 금융시장을 관통해본다.

‘악법도 법이다’ 이 보험을 설명하는 사람들은 이런 논리를 펼치고 있다. 그만큼 ‘착한 보험’이 아니라는 것이다.

CEO퇴직플랜은 문제가 많다. 새로운 금융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인 자산을 활용해 최고 경영자가 은퇴할 때 퇴직금이나 상속자산, 비자금의 용도로 쓰기 위해 세법과 보험 상품, 변경이 쉬운 정관의 특성을 결합시켜 만들어낸 변종 상품이다.

최고 90%까지 절세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이 보험은 법인이름으로 10년 정도 계약만 유지한 다음 사장 개인으로 계약자와 수익자를 변경해 계약을 넘겨주면 된다.


가입은 회삿돈으로, 받을 땐 정관변경

보험계약법상 계약자와 수익자, 피보험자 등 3인이 합의할 경우 명의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후 사장은 해약이나 보험기간 만기 등으로 보험금을 수령하면서 퇴직금 명목으로 받을 수 있도록 회사의 정관을 고친다.

사장의 퇴직금은 보통 정관에 미리 정해 놓은 것이 일반적이지만 사장이 오너인 만큼 주주총회를 거쳐 정관을 바꾸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보험금을 퇴직금 명목으로 챙기는 사장은 고율의 근로소득세보다 세율이 낮은 퇴직 소득세 17%만 내면 된다.

회사는 보험료가 모두 비용으로 처리돼 법인세를 물지 않아도 된다. 퇴직금을 받는 사장의 입장에서 그 돈을 급여로 받았다면 최대 35%의 근로소득세를 내야한다.

퇴직 소득세는 퇴직소득의 50%를 공제받고 세율도 낮다. 실제로 회사로부터 자금을 증여받은 기업주는 높은 증여세를 납부해야 하나 이 상품을 사용할 경우 세금까지 줄일 수 있다.

이 같은 방법은 이미 은행권에서 2~3년 전 크게 유행했고 최근 보험 상품으로 넘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안심은 금물이다. 위법은 아니지만 법망을 피한 것이어서 세법이 개정되면 전혀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회사 돈으로 사장 개인의 절세전략과 자산 불리기 용도로 보험 자산으로 묶인다는 것이다.

보험의 계약자와 수익자를 법인 명의로 할 수 있도록 만든 취지는 직원들의 복리 후생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법인 명의로 직원들을 단체로 보험에 가입시키면 복리후생비는 비용처리해주겠다는 제도를 사장 개인의 재산 증식을 위해 악용한 것이다.

한 재무설계사 대표는 “법인세법 상 회사에 공헌한 사람에게 퇴직위로금을 줄 수 있는 규정이 있어 은퇴를 앞둔 CEO들을 대상으로 한 상품설계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며 “법인의 자산으로 모아진 돈을 합법적인 방법으로 CEO의 비자금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A생명 등 각 보험사들은 CEO퇴직플랜 제도과 비슷한 상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인터넷상에서 버젓이 CEO퇴직플랜 제도를 홍보하는 곳이 많다.


상품 파는 보험사 ‘오리발’

비난여론에도 불구하고 각 보험사들은 이러한 편법을 동원한 상품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공식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은 “그런 상품이 없다”라는 것이다.

A생명보험측도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회사 내부에 이를 알아보고 사실여부를 명확히 판단해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세금이 문제라면 다른 기관에서 조사가 들어갔을 것이다”며 “보험 상품은 계약법상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처벌이 불가능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현행법상 불법은 아니어서 형사처벌을 할 수 없지만 도덕적인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제도. 회사 돈을 자신의 비자금으로, 퇴직금으로 이용하려는 사장들. 이런 마음을 교묘히 파악하고 편법을 동원한 절세로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워주는 은행과 보험사.

이들의 관계는 과욕으로 인한 부적절한 관계다. 보험설계사의 ‘입안의 혀’ 같은 감언이설에 넘어가 비자금을 모은 CEO.

그러나 10년은 가슴 졸여야하고 그 이전에 세법만 바뀌면 물거품이 될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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