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에 (박근혜 정부 당시) 있던 ‘청년위원회’도 없어져 누구와 소통을 해야 되며 누구와 이야기를 해야 되는지 이런 것들을 전혀 알 길이 없다.” 며칠 전 청와대에서 열린 시민사회단체 초청 간담회에서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대표가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훔치며 한 말이다.

그는 “정권이 바뀌고 청년들이 많은 기대를 했지만 아직까지 정부가 청년 문제를 인식하는 방식은 단편적”이라면서 “정부가 청년의 삶 전반을 진중하게 해석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아마도 그는 청년 문제를 우리 사회 전반에 관한 문제로 보지 않고 청년실업 문제로만 접근하는 정부의 단편적 접근을 눈물로써 비판하고자 했으리라.

이젠 역사 속으로 사라진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가 한 청년의 절절한 눈물 속에서 갑자기 ‘소환’을 당했다. 청년의 취업, 창업 일자리 관련 업무 및 인재양성, 청년복지 등 청년관련 정책을 전반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자문해 온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는 지난 2017년 6월 말에 별다른 이유 없이 해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권 여당의 청년대표들이나 청년단체들조차 왜 청년을 대변할 청년위원회나 청년부 등 청년정책 전담기구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는가.

기존의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는 청년 일자리 문제뿐만 아니라, 청년 복지 전반에 걸친 캠페인과 정책 건의 및 인재양성과 교육 등 청년 문제 전반에 걸친 문제를 다뤄온 기구였다는 것에 답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년들이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고, 기대고 싶을 때 기댈 수 있는 언덕’이었다는 점일 것이다.

절망감에 터져 나오는 눈물에도 진보, 보수, 좌우의 진영 논리가 진을 치는 모양이다. “청년의 삶을 정부가 책임져 달라는 자세 자체가 틀렸다. 지금 대통령이 황제인가? 그 앞에서 울 것이 아니라 질타를 해서 그가 국민의 종임을 알리는 패기가 있어야 청년”이라는 지적에는 “어리석은 친구가 젊은이를 대표한다고 나댄다” “나약한 젊은이들을 어이할꼬” 등의 댓글이 이어진다.

그렇다. 넓게 보면 다 올바른 지적이고 맞는 질타일 것이다. 아니 한 술 더 떠 차라리 “현장에서 먹히지도 않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강행하면서 청년일자리를 없애고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킨 것을 되돌려 놓으라”고 대통령에게 강하게 일갈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청년을 더욱 정신 차리도록 하는 지적일 것이다. 필자도 14년간 현장에서 청년들과 뒹굴면서 취업과 창업 멘토, 멘티의 연을 맺고 입버릇처럼 청년들에게 “절대로 불쌍한 척도 하지 말고 도와달라고 하지도 말자”고 외쳐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한 가지, 질타나 조언에 앞서 그들의 공허함에 우리는 얼마나 귀 기울이며 공감해 보았는가. 정부의 전담 기구 하나 없어 답답한 마음과 고생한 동료들이 떠올라 폭풍처럼 터져 나오는 그 눈물이 단순히 어리석고 나대는 젊은이의 나약한 눈물로만 보였는가. 그 눈물 속에 진보, 보수, 좌우의 진영 논리를 과연 얼마나 담았겠는가.

백번을 양보하여 반 발짝, 한 발짝 앞서서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 기득권 위정자들은, 영혼마저 포기하는 ‘영포세대’라는 신음 속에서도 기댈 언덕 하나 없는 그들에게 눈물 이상의 그 어떤 현실적 해법과 기댈 언덕을 마련해 주었는가.

차라리 청와대에서 실컷 울게라도 해주자. 청년 현장에서 숱하게 실망을 안겨주었던 ‘청년팔이’ 꾼들의 가식적인 눈물만 아니라면. 어쩌면 ‘소득주도성장’ 정책이라는 거대담론의 허점을 되돌릴 바다 같은 힘도 진실한 폭풍눈물 한 방울에서 비롯될 수 있지 않겠는가.

<서원대학교 교수 / 前 대통령직속 청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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