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만 강요해선 안 돼”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영상 인터뷰 캡처 화면]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영상 인터뷰 캡처 화면]

[일요서울 | 이도영 기자] ‘소방관 국가직 전환’ 논의가 뜨겁다. 통과되지 않고 계류된 이 법안은 지난 4일 발생한 ‘강원 산불’로 인해 논의가 다시 촉발됐다. 소방관 국가직화를 위한 관련 법 개정안을 자신의 1호 법안으로 발의하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에서 소방복을 입는 등 소방관 국가직화를 위해 누구보다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일요서울이 그를 만나 관련 이야기를 들었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 이번 재난에 정부 비난할 자격 없다”

지난 4일 강원도 일대에 대형 산불이 일어났다. 화마는 선거법 개정, 공수처법, 장관 인사청문회 등 그동안의 정치 이슈를 한 번에 집어삼켰다. 꺼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산불은 이례적으로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소방관들의 노력에 힘입어 사흘 만에 진화됐다. 이에 국민들은 이전부터 논의되던 소방관 국가직화에 관심을 기울이며 청와대 국민청원이 나흘 만에 20만 명을 돌파했다. 일요서울이 지난 11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관련법안을 발의하고 통과를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고 있는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나 강원도 산불재난부터 소방관 국가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강원 산불 시작과 끝을 어떻게 봤나.

▲일어나지 말았어야 될 사건이다. 한 분이 사망하셨다고 해서 “다행이다”라는 표현은 하고 싶지 않다. 이재민들은 본인의 모든 존재 근거들을 다 잃어버리신 분들이다. 그런 비극 앞에서 평가를 한다는 것이 조심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이번 산불 사태의 정부 대처는 이전의 다른 재난 대처에 비해 국민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의 ‘빨갱이 글’ 공유와 김문수 전 경기지사의 ‘산불 정부’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야당이 정부·여당을 비판할 때 정곡을 찌르는 본질을 포함한 내용을 담고 있으면 아프다. 또한 야당 의원의 설득이 합리적일 때는 수긍이 가고 고개가 끄덕여지는데 (산불에 대한 두 사람의) 발언을 듣고 웃었다. 본인들도 게시한 글을 내리거나 그 이상의 적극적인 메시지를 보태지 못하는 것만 보더라도 얼마나 경솔한 행동이었는지 드러난다. 김문수 전 경기 도지사는 과거 재난에 긴급 대응해야 하는 119에 전화해 본인의 신원을 거론하면서 119대원을 몰아치던 전화로 유명했다. 과연 김 전 도지사가 이번 재난에 그런 방식의 비난을 할 자격이 있나 하는 의문이 든다.

-20대 국회가 출범한 지난 2016년 소방관 국가직화를 위한 관련 법 개정안을 자신의 1호 법안으로 발의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소방관 국가직화에 대한 법률안은 국회의원 당선 후 배운 법이다. 소방관들의 열악한 처우에 대해 입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조사 하다가 구조적인 문제점을 찾은 것에 이르기까지 나의 정치적 선배라고 할 수 있는 보좌관들의 노력이 컸다.

무엇보다 지금은 6살인 내 아들의 장래희망은 내가 국회의원이 됐을 때부터 소방관이다. 그런데 아이가 소방관이라고 이야기한 순간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말렸다. 너무 아이러니했다. 우리는 왜 소방관에게 본인의 사명감에만 의존하게 하면서 직무를 강요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질을 들여다보니 그것이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는 것을 알게 돼 개념을 변환시키고 국민을 설득하는 일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껴 1호 법안으로 만들었다.

-소방관 국가직화가 필요한 이유는.

▲소방관이 1%의 중앙직과 99%의 지방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이제 국민들 대다수가 안다. 소방의 위기는 전국적인 통계를 보면 매일 발생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대비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 상상할 수 없는 희생과 피해를 가져온다.

지방자치 단체별로 재정자립도가 다르다 보니 예산이 다르다. 예산이 빠듯한 지방자치의 경우 다른 일상적인 행정 영역에 보다 많은 비용을 쓰면서 소방 비용에는 많은 비용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원인으로 소방관들이 사용하는 소방 장비는 출동하는 재난 현장에 적합한 장비가 아닌 경우가 있다. 심지어 방수복을 입고 화재현장에 뛰어들거나 본인을 보호하기 위해 사비로 장갑을 사야 하는 상황까지 있다.

이런 어려움을 소방관에게 감내하라고 희생을 강요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소방관의 복지 처우의 부족함은 결국 국민 안전에 누수를 만드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자립도에 따라 소방 서비스의 편재화가 일어나는 사태는 소방관 국가직화를 통해 국가가 총체적으로 자원을 투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해결할 수 있다.

-한 한국당 의원이 “중앙직이 아니라서 불 못 끄냐”고 한 발언에 대한 생각은.

▲안타깝다. 일선의 소방관들은 공무원이기 때문에 본인과 관련된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한다. 소방관들은 중앙직·지방직을 떠나 본인에게 부대되는 이익이 지금만큼이 아니었더라도 (소방관) 일을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희생을 더 이상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법을 만들었다. 한국당 의원도 발언하고 본인이 이 발언은 과했다고 스스로 생각했을 것이다.

-지난 2018년 11월 28일,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에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 관련 법안이 상정됐다. 왜 통과되지 못했나.

▲각 당을 대표해 법안 심의를 위해 나온 의원들은 부분적인 문제 제기는 하지만 법안이 통과되는 것에 대해서 다른 의견을 가진 것은 아니다. 논의가 여러 과정을 통해 무르익어 표결만 하면 끝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지도부가 법안소위에 참석 중이던 홍문표 의원에게 두 통의 전화를 걸어 법안 통과가 무산됐다.

처음에 윤재옥 수석부대표가 홍 의원에게 전화를 했는데 홍 의원이 회의 현장에서 홍익표 법안 소위위원장에게 통화를 넘겨줬다. 윤 부대표는 홍 위원장에게 이유는 말하지 않은 채 우리 오늘 법안 통과 못 시킨다고 했다. 이후 김성태 원내대표가 홍 의원에게 한 번 더 전화했고 홍 의원이 회의장을 나가면서 정족수가 부족해져 법안이 통과되지 않았다.

당시 법안 합의 직전에 원내지도부의 통화 같은 방식으로 방향을 트는 것은 국회의원 개개인의 의정 활동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원내 전략이 필요했다면 미리 논의해야 하고 표시나지 않게 했어야 한다. 소위 논의가 다 마무리됐는데 그와 같은 방식으로 의정 활동을 방해 하는 것은 이례적이고 억지스러웠다.

-경찰은 지방직으로, 소방은 국가직으로 가고 있어 방향성이 맞지 않다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방자치는 나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 영역에서 본질적인 것이다. 우리의 대표를 스스로 뽑고 투표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남용되지 않도록 국민이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경찰과 소방은 달리 봐야 한다. 경찰은 수갑을 채우고 위용적 행사를 통해 범죄인을 제압하는 등 권력적 행정작용을 하지만 소방은 권력적 행정작용이 아니다.

경찰 출신 국회의원은 있지만 소방관 출신 국회의원은 없다. 이처럼 소방이 정치와 권력으로부터 떨어져 있다 보니 소방관 국가직화라든지 소방관 처우의 문제가 정치권에서 큰 화두가 되지 않았다.

고성 산불을 계기로 산불 현장에 희생적으로 뛰어들었던 소방관 스스로의 모습 덕분에 국민들이 청와대 국민청원 20만 명을 달성케 하는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야당 의원들과 치열하게 토론하고 결론을 내 국민들에게 성과 있는 20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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