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이후 사업체 169개 사라져

지난해 9월 서울 광진구 성수동에서 제화공들이 코오롱FnC 슈콤마보니 구두에 대한 공임비 인상 등을 요구하며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뉴시스]
지난해 9월 서울 광진구 성수동에서 제화공들이 코오롱FnC 슈콤마보니 구두에 대한 공임비 인상 등을 요구하며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뉴시스]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성수동 수제화 거리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이를 두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개입해 제화공들의 공임비를 올린 것이 주요 요인이라는 지적이 대두되면서 민노총의 세력 불리기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민주노총 發 공임비 상승에 경기 침체 더해져 하도급 ‘샌드위치’ 신세
민주노총 “성수동 임금 20여 년 답보 상태…이제 ‘1500원’ 오른 것”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는 ‘수제화 거리’가 있다. 이곳은 1970년경부터 조성돼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오면서 명실공히 우리나라 제화산업의 핵심 지역으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성수동 수제화 거리에는 수제화 완제품 생산업체와 중간 가공·원부자재 유통업체 등 한국 수제화 제조업체의 70% 이상이 밀집돼 있다. 

하지만 최근 성수동 수제화 거리의 가게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고 있다는 소식에 ‘수제화 특성화지구’로 손꼽히는 이 거리마저 존폐가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형국이다.

 

지난해 4월 서울 관악구 탠디(TANDY) 본사에서 근로자 100여 명이 부당 노동을 항의하며 연좌농성을 벌였다. [뉴시스]
지난해 4월 서울 관악구 탠디(TANDY) 본사에서 근로자 100여 명이 부당 노동을 항의하며 연좌농성을 벌였다. [뉴시스]

민노총 “최저시급도 안 돼”
하도급 “경기 어려운데…”


성동구청은 성수동거리에 있는 수제화 사업체 현황을 알아보고자 사단법인 소상공인연구원의 주관으로 2017년 4월 7일부터 6월 5일까지 성수동 일대의 수제화 사업체(종사자 수 1인 이상)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시행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수제화 사업체 수는 382개로 확인됐다. 

구청 관계자는 “(2017년 용역을 통해) 493개의 사업체가 있다고 파악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가운데 해당 설문조사에 임한 업체가 382개”라며 “그 이후로는 이곳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현재로는 정확한 자료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성수동 수제화 거리 일대에는 임대료 상승, 노사 간 갈등, 경기 침체 등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에 서울시 수제화진흥원이 올해 전화 또는 방문 형식으로 살펴본 결과, 현재 성수동 수제화 거리 소재의 수제화 사업체 수는 대략 324개 정도로 파악됐다. 이는 2017년에 비해 169개가 감소된 수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이 개입해 제화공들의 공임(工賃·신발 한 켤레를 만들 때 제화공에게 주어지는 비용)비를 올린 것을 문제 삼았다. 제화공의 공임비 상승과 경기 침체가 맞물려 소상공인의 피해를 불러왔고, 이것이 수제화 거리 침체로 이어졌다는 의견이다.

이에 맞서 정기만 민주노총 제화노조 지부장은 “시민단체 등에서 조사한 결과 (수제화 거리 침체가) 공임비 때문은 아니라고 한다. 성수동 일대에 건물이 많이 들어서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라며 “임대료 지출을 줄이기 위해 (소상공인들이) 성남, 면목동 등으로 옮겨 간다. (이것을) 마치 임금이 올라 (사업체가) 폐업하는 것처럼 보도한다”고 전면 반박했다.

정 지부장에 따르면 현재 성수동 수제화 거리 제화공들은 제작 개수에 따른 ‘개수 임금 제도’를 기준으로 공임비를 지급받는다. 구두 한 켤레가 제작되면 제화공에게는 7000원이 주어지는 구조다.

그는 “공임비는 20여 년 정도 답보(踏步·제자리걸음) 상태였다가 큰 (원청) 브랜드만 약 1500원을 올렸다”면서 “기능공이나 장인의 하루 구두 제작량을 20개라고 가정할 경우, (만드는 데는) 1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14만 원을 12시간으로 나누면 최저임금도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제화공들이 열악한 노동 환경에 노출돼 있다고 역설했다.


산업↓ 임금↑
일감 해외로 샐까 우려


성수동 수제화 거리의 공임비 인상에 앞서 ‘탠디 집회’가 있었다. 지난해 4월 구두전문업체 탠디(TANDY)에 납품하는 하도급(하청) 업체 제화공 100여 명은 8년간의 공임비 동결을 지적하며 파업을 선언하고, 이후 본사에 항의 방문했다. 

이에 탠디 측이 켤레당 공임을 1300원 인상하겠다고 밝히자 제화공들은 16일간의 본사 점거 농성을 풀었다. 당시 집회 등은 민주노총 제화지부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민주노총의 입김이 성수동까지 번졌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쉽게 말해 ‘민주노총에 가입하면 탠디처럼 될 수 있다’며 성수동 제화공들을 끌어 모아 세력을 불린다는 주장이다.

노조 가입 독려와 민주노총 세력 불리기 의혹에 관해 정 지부장은 “그렇지 않다. 민주노총이 공장 문 닫게 하는 조직이냐. 불쾌하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가입한 조합원들은 탠디 집회 과정을 지켜보며 ‘모이니 (문제의) 실마리가 풀린다’는 것을 보고 모인 것이지, (민노총이 가입을) 독려해서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문제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이하 OEM)으로 운영되던 공장들의 사정이다. 노조의 규모가 커지면서 원청과 제화공 사이에 놓인 이들의 고충이 배가됐을 뿐더러, 제화공의 임금 상승으로 인해 해외로 일감이 새어나간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익명을 요구한 수제화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제화공의 공임비가 워낙 안 오른 것은 맞다”면서도 “하지만 수제화 산업이 활성화되던 시기에 노조 활동을 했다면 좋은데, 어려운 시점에 임금을 올리려다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나 싶다”고 밝혔다. 

즉, 노사 양측의 어려운 상황은 이해하지만 수제화 산업 침체기에 노조가 공임비 인상을 요구한 것이 수제화 거리 전반에 끼친 영향도 있다는 의미다.
지난 2017년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성수동 수제화 거리에 있는 382개 사업체 중 OEM방식으로 운영되는 곳은 총 350곳으로, 전체의 약 68%의 비율을 차지한다(중복응답 가능). 

하지만 제화공의 공임비가 상승하면서 원청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 OEM 수를 늘리고, 이에 따라 하청업체는 기존보다 적은 수입을 벌어들일 수밖에 없다. 반면 제화공의 공임비가 오른 탓에 지출해야 할 임금의 액수는 높아져 ‘이중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 지부장은 ‘유통 수수료 인하’라는 대안책을 내놨다. 그에 따르면 백화점 수수료는 연 0.5%씩 오름세를 타 현재 38~40%정도 수준을 육박했다. 
정 지부장은 “유통 수수료를 인하하면 해외 OEM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고 원청, 협력업체 사장, 노동자(제화공)들이 (이 문제에 대해) 완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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