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분당 현장 취재


#1.
“1~2년 사이에 꿈꾸는 것 같아요. 자고 일어나면 아파트 값이 계속 떨어지니 어쩌면 좋죠?” 지난 2006년 분당 아파트 값이 급등할 시점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시범단지에 있는 아파트를 구입했다는 최씨. 이미 한껏 오른 가격이었지만 더 오르리란 생각으로 무리를 해 아파트를 샀고, 그 당시 로또라 불리던 판교 분양권에도 당첨이 됐다. 하지만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도 잠깐, 지금은 상황이 반전돼 곧 시범단지에 위치해 있는 자신의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갈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2.
분당 신도시 정자동 한 단지 내 줄지어 들어서 있는 중개업소들의 분위기는 숨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고요하다. 그곳에서 10년이 넘게 중개업을 하고 있다는 이모씨는 “IMF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다” 고 말문을 뗐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쏟아지는 문의 전화에 쉴 틈이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전화도 하루 한 통 받기도 힘들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어요.”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그의 한탄 속에서 실제로 거래가 얼마나 없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


한때 강남의 대체 신도시로 각광받던 분당이 침체의 늪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2006년 버블 바람을 몰고 와 큰 파장을 일으켰던 분당이지만 2007년부터 이어진 부동산 시장 한파에 맥을 못 추는 모습이다. 1기 신도시 중 하락 기조가 가장 심한데다 최고가 대비 몇 억씩 빠진 급매물이 배출되고 있지만 굳게 닫힌 매수세가 좀처럼 열리지 않고 있다.

거래 한파…매수세 ‘꽁꽁’

분당 중개업소 곳곳에는 급매물이라고 쓰여있는 종이가 붙어 있다. 현 시세보다 저렴한 매물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가격은 많이 다운돼 있지만 문의조차 드문 상황이다.

정자동 인근 중개업자는 “완연한 매수자 우위 시장이 형성돼 매수 의사만 있다면 매도자가 내놓은 가격보다도 더 싸게 구입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연일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는 언론매체들의 보도에 수요자들은 선뜻 매수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서현동 시범한양 아파트는 며칠 전 거래 직전까지 갔다가 더 떨어질 것이라는 뉴스를 접하고 마음을 바꾼 매수자로 인해 거래가 불발됐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한 두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매에 처해지기 직전까지 몰려 급매물 보다 가격이 훨씬 저렴한 급급매물의 경우도 더 떨 어지지 않을까란 기대심리로 수요자들이 그냥 간만 보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심각할 정도로 매매가 어려운 실정이다.

손해를 보고서라도 지금 팔아야겠다는 매도자들이 많다 보니 매물이 점점 쌓이면서 거래 없이 가격만 하락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경매를 피해보고자 시세보다 1억원 가까이 가격을 다운한 매도자들은 마땅한 매수자를 찾지 못하고 깊은 한숨만 내뱉고 있다.

게다가 저조한 매수세가 대형 아파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소형까지 빠르게 번지고 있다. 그나마 거래가 이뤄졌던 99㎡이하 아파트 마저 수요가 끊기면서 하락하는 단지가 비일비재하게 나타나고 있는 상황. 또한 전세시장도 매매와 마찬가지로 소형, 중·대형 구분 없이 거래가 전무하다.


규제완화 약발도 안 먹혀

최근 정부는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내세우면서 시장분위기 반전을 꾀했다. 하지만 투기과열지구 해제와 LTV 상향조정, 재건축 규제완화등 의례적인 정책 행보에도 현 부동산 시장은 아랑곳 하지 않고 굳건히 침체 길을 걷고 있다. 특히 종부세 완화 카드가 제시 됐음에도 불구 가장 큰 수혜지역이 될 수 있는 버블 세븐은 전혀 동요하지 않는 분위기다.

분당도 2010년 개통 예정인 거대한 교통 호재 신분당선을 안고도 금융시장 악화, 경기 침체라는 매서운 한파에 무릎을 꿇었다. 서현동 일대 중개업자는 “분당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리모델링, 각종 규제완화, 신분당선 등 그 어떤 호재도 먹혀 들지 않고 있다”며 “수요자들의 반응이 너무 차갑다”고 전했다.


아파트 가격 최고 얼마나 떨어졌나

분당의 침체가 시작된 해는 2007년 이었지만 시세가 본격적으로 재조정되기 시작한 시점은 2008년5~6월부터다. 호가를 꾸준히 고집했던 매도자들이 내놨던 집이 계속 팔리지 않자 다급해진 마음으로 호가를 내리기 시작한 것. 게다가 고금리 추세가 지속되면서 이자 감당이 어려워진 매도자들로 인해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급매물이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시세 재조정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부동산 1번지 스피드뱅크(www.speedbank.co.kr)에 따르면 분당신도시 시범한양 아파트는 올 들어 시세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2년 전 가격으로 회귀한 것에 멈추지 않고 2006년 초에 기록했던 가격보다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06년 실제로 거래된 가격과 현재 가장 저렴한 급매물의 차이는 더욱 심하다. 서현동 시범한양 165.29㎡(50평형)는 2006년 12월 최고 12억4500만원에 거래된바 있다. 하지만 현재 급매물은 4억 4500만원이 떨어진 8억원 대. 서현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8억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도 매수의사만 있다면 구입 가능하다고 전했다.

한때 분당 상승을 주도했던 주상복합의 경우도 이 같은 낙폭을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2006년 9월 20억에 실거래가 이뤄졌던 정자동 파크뷰 178㎡(54평형)의 경우도 현재 8억원 가량 하락한 12억에 급매물이 나와있다. 거의 반토막 수준으로 추락한 모습. 그 외 대다수 고가 대형 아파트들이 평균적으로 최고 실거래가 대비 3~4억 원 정도 하락했다.

분당신도시는 다른 신도시에 비해 서울 진입도 용이하고, 규모도 1기 신도시중 가장 커 대표급 신도시로 자리매김 해왔다. 강남권 집값 변동이 가장 민감하게 적용되는 지역 중 한 곳으로 설립 당시 강남 사람들이 대거 이동해 부촌이미지도 강하다.

또한 현재 시세가 2006년 연초 가격대로 추락했다는 점으로 비추어 본다면 현 상황은 매수에 좋은 타이밍이 될 수 있다. 수내동 일대 한 중개업자는 “이미 저점을 찍었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며 “융자부담이 많은 매도자가 아니라면 앞으로 하락폭이 큰 급매물 배출은 극히 드물어질 것이다”고 전했다.


분당, 과거 명성 되찾을 수 있을까

하지만 미국발 금융시장 악화, 경기 침체 등 악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현시점에서 수요자들의 불안심리로 거래가 계속 성사되지 못한다면 다급한 매도자들의 추가하락이 더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분당은 호재가 많은 만큼 악재도 곳곳에 산재해 있다. 바로 올 12월 시작될 1만6000여 가구의 판교신도시 대규모 단지 입주와 가격부담이 큰 중·대형 아파트 밀집지역이라는 점이다. 이미 송파구 일대 입주 물량 여파로 강남권 전체가 휘청거렸단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판교의 입주물량에 대한 파급효과를 분당도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판교 입주가 성공리에 끝나고 그로 인해 매수세에 다시 불이 붙는다면 분당+판교 신도시의 위상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두 신도시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면 위치, 규모, 상업시설, 교육시설 등 그 어떤 면에서도 뒤쳐지지 않는 배트타운으로 거듭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당 입성을 원하는 수요자라면 현재 나와있는 급매물 중 가장 저렴한 매물에 관심을 가져 볼만 하다. 단, 무리한 투자가 아닌 실거주를 목적으로 여유를 갖고 접근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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