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터지는데…환자 돌보지 않는 ‘정신건강증진법’ 개선돼야

[뉴시스]
[뉴시스]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진주 방화 살인사건’ 등 최근 언론을 통해 조현병 환자가 저지른 범행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이들에 대한 사회적 공포심이 확산되는 추세다. 하지만 이 같은 범행의 뒷면에는 이들에 대한 국가의 관리망이 허술했다는 점이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대안 마련이 촉구되는 실정이다.



직계 혈족·배우자 아닌 ‘형’이라서 입원 안 된다니…현행법 강제입원 제도 ‘허술’ 
윤일규 의원 “조현병 환자라서 사람 죽이는 것 아냐…지역사회 돌봄 강화해야”


    
#1.
지난 24일 오전 9시 5분께, 경남 창원시 소재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 옆 복도.

이 곳에서 10대 청소년 A씨가 집을 나서던 70대 여성 B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같은 날 마산중부경찰서에 의하면 A(18)씨는 오전 8시경 거주지에서 흉기를 소지한 채 위층에 살고 있던 피해자 B(74)씨의 집을 방문했다. 이를 확인한 B씨는 문을 살짝 연 채 A씨에게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한 뒤 다시 문을 닫았다. A씨가 이전에도 몇 번 들러 이상 행동을 보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A씨는 이에 수긍했지만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파트 복도 귀퉁이에서 1시간가량 머물렀다. 이후 외출을 하려던 피해자 B씨가 모습을 드러내자 A씨는 그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찌르는 범행을 저지르고 흉기를 그곳에 방치한 채 현장을 벗어났다. 그 뒤 A씨는 인근 화장실에서 자신의 손을 닦은 뒤 자택으로 돌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그의 아버지 등의 경찰 신고로 자택에서 경찰에 긴급 체포됐다. 수사 당국은 A씨를 상대로 조사를 진행 중이다. 사건 이후 B씨는 가까운 삼성창원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치료를 받던 중 유명을 달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 당시 A씨는 “할머니가 내 뇌에 들어와 고통을 주고 있어서 할머니를 죽여야 내가 산다”며 조리에 맞지 않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 기관에 따르면 A씨 아버지는 A씨가 평소 유튜브 등을 통해 애니메이션을 빈번히 시청했다고 증언했다. 또 사건 이전에도 A군이 수차례 B씨의 거주지를 들러 문을 두드리는 행동을 해 그에게 A군 아버지가 사과를 한 사실이 있다고 알려졌다.

이 밖에도 2017년 당시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을 밟고 있던 A씨는 그해 2학기 자퇴를 신청했다. 하지만 자퇴 후에도 학교를 방문해 담을 넘는 등 이상 행동을 보여 학교 경비원이 여러 차례 제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씨가 수업시간에 괴성을 지르는 등 이상 행동을 보여 학교를 자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수사 당국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10월 진주 경상대학교병원에서 조현병(정신분열증) 진단을 받고 올해 1월께 입원을 권유받았으나 입원은 하지 않았다.

#2.
21명의 사상자를 낸 경남 진주 방화·살인 사건 피의자 안인득(42)씨가 지난 25일 ▲살인 ▲살인미수 ▲현주건조물방화 ▲현주건조물방화치상 등의 혐의로 창원지검 진주지청에 기소의견으로 송치됐다. 그에 대한 정신감정은 검찰 단계에서 진행될 방침이다.

이날 해당 사건의 관할서인 경남 진주경찰서는 4층 강당에서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 같이 밝혔다. 수사 당국은 안 씨의 범행 동기에 대해 그가 정신질환 치료를 그만둔 뒤 증상이 악화되고, 피해망상으로 쌓인 분노가 맞물리면서 벌어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안 씨는 경찰 진술에서 “10년간 사회로부터 불이익을 당했다” “국정농단 세력이 나를 해치려 하고 있다”는 등 횡설수설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안 씨가 휘발유와 흉기를 미리 준비한 것을 근거로 그가 범행을 치밀히 계획해 왔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과거에 사건 사상자를 20명(사망 5명, 중경상 6명, 연기흡입 14명)으로 발표했으나 최근 연기흡입 환자가 1명 추가돼 총 21명으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사건 당일인 지난 17일 안 씨는 오전 1시 50분께 범행 현장 인근 셀프주유소에서 휘발유를 구매하고, 이후 오전 4시 25분경 주거지인 아파트에 방화한 뒤 아파트 비상계단과 복도를 오가며 대피하던 주민들을 상대로 흉기를 휘둘러 이 같은 범죄를 자행했다.

아파트 주민들의 신고를 접수하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아파트 복도에서 흉기를 소지한 안 씨를 발견, 총기와 테이저건 등을 사용해 그를 제압한 뒤 4시 50분께 그를 체포했다.

아울러 소방 당국은 긴급 출동해 이날 4시 57분께 화재를 완진했다. 이 불로 안 씨의 집 내부와 복도 20㎥가 소진됐다.

안 씨의 범행으로 인해 발생한 사상자는 총 21명이다. 이에 대해 경찰 조사 당시 안 씨는 “눈에 보이는 대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으나 사망자 5명 가운데 4명이 여성이었단 사실이 밝혀지면서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아니냐는 의견이 대두되기도 했다.


환자 관리 사각지대,
‘사법입원 제도’ 대안 제시돼


최근 자신이 치료를 담당했던 조현병 환자에 의해 살해된 故임세원 박사 사건 등 조현병 환자에 의한 사건사고가 발생하면서 해당 질병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확산되고 있다. 

경남 진주경찰서에 따르면 안 씨는 과거 5년 동안 68차례에 걸쳐 편집형 정신분열증(조현병) 치료를 받은 전력이 있으나 사고 당시는 치료를 받지 않는 상태였다. 

안 씨는 과거 범죄 사실도 드러났다. 지난 2010년 안 씨는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는 이유로 지나가던 사람을 흉기로 찔러 상해를 입혀 재판에 회부됐다. 그의 정신 병력 역시 이 과정에서 밝혀진 것으로 알려졌다. 

안 씨의 형이 ‘동생을 입원 조치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수차례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히면서 현행 관리체계의 사각지대가 사회적 문제로 거론됐다.

현행 비자의입원(강제입원)제도는 보호입원, 행정입원, 응급입원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보호입원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명이 환자에 대해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고 진단하고, 보호의무자 2명이 신청했을 경우 가능하다. 하지만 현행법은 보호의무자의 범위를 ‘직계 혈족 또는 배우자’로 한정하고 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윤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근본적으로는 지역사회 돌봄 체계가 부재하다. 정신질환자 재활과 사회 복귀를 위한 프로그램이 없고 지역 정신건강증진센터는 인력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정신질환자는 지역 사회에서 홀로 또는 가족과 버티거나, 입소·입원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조기 진단과 치료가 어렵고 퇴원 후 관리도 잘 되지 않는다”면서 “입원 치료가 꼭 필요한 환자의 경우도 형이 직계혈족이 아니라는 등의 이유로 비자의입원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윤 의원은 신경외과 의사 출신으로, 이와 관련해 ‘정신건강증진 및 정실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하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보호의무자 폐지 ▲강제입원 행정절차 완화 ▲사법입원 도입 ▲외래치료명령제 강화 등이다.

그는 “현행법은 환자의 입원부터 퇴원 후 돌봄까지 가족에게 지나친 부담을 지우고 있다. 보호의무자 제도를 폐지하고, 정신질환자 관리 책임을 국가가 져야 한다”며 “강제입원 행정절차를 완화해 입원 치료가 꼭 필요한 환자는 적절한 시기에 좀더 수월하게 치료받을 수 있게 하고, 사법입원제도를 도입해 개인의 인신구금 결정을 국가가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더불어 “국가가 책임을 져야 의료인들이 소송당할 두려움 없이 환자를 소신껏 진료할 수 있다. 그런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법입원제도란 사법기관이 환자의 여러 상황을 고려해 입원 적정성을 평가하는 제도로, 현재 미국이나 독일 등 해외 선진국은 이미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에 대해 인권단체들은 환자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다.

이에 대해 윤 의원은 “환자가 적절한 시기에 꼭 필요한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도 인권을 보호하는 방법이다”라며 “사법입원은 환자의 강제입원을 늘리자는 것이 아니다. 강제입원이 필요할 경우 그 결정을 국가가 하도록 해 결과를 책임지자는 것이 골자이지 인권침해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국가 차원의 대안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지만 관련 법안들은 모두 현재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이 같은 상황을 두고 윤 의원은 “(대책이) 진작 논의됐어야 하는데 사람이 이렇게 많이 죽고 나서야 논의할 수 있다는 게 안타깝고 슬프다”며 “하루도 더 빨리 논의를 재개해야 한다. 더 늦어져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아까운 생명을 희생시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사회적 시선 지양해야


한편 언론 등을 통해 논란이 된 사건의 피의자들이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만이 부각되면서 환자들에 대한 공포심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이들을 향한 혐오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관해 윤 의원은 “조현병 환자라서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다”라며 “지역사회에 방치돼 증상이 악화된 극소수의 환자가 폭력성을 드러내는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계속해서 “일련 사건들의 책임은 정신질환자 개인보다는 사회에 있다”며 “조현병 환자가 잠재적 범죄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부추긴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의 관리 체계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윤 의원은 “지금까지 정신질환자 관리가 치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던 게 사실이다”라며 “지역사회돌봄을 강화해 환자들이 지역사회에서 나머지 구성원들과 더불어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