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주현 교수
문주현 교수

2017년 대통령의 높은 인기에 기대어 밀어붙인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가 실패한 후, 정부가 에너지전환 정책이란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했지만 원자력 죽이기라는 본질은 변치 않은 탈원전 정책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탈원전 정책으로 원자력계가 빈사 상태에 처해있으나, 세상사 다 그렇듯이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탈원전 정책의 긍정적 효과가 7가지나 된다.

첫째, 원자력에 대한 국민의 긍정적 인식이 확산됐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를 기점으로 탈원전 정책 관련 기사가 거의 매일 언론을 타고 있다.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아는 법. 미세먼지가 심해진 날,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 냉난방 전기 수요가 급증해 전력 공급부족이 우려되는 날이면, 탈원전 부작용이 새삼 피부에 와 닿는다. 그러다 보니, 지난 수십 년간 정부가 수백억 원을 쏟아 부어도 하지 못한 원자력 홍보를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해냈다.

둘째,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현대 사회에서 전기는 우리 일상과 국가 경제활동을 지탱하는 필수재화다. 잠시라도 전력공급이 수요보다 부족한 상태가 발생하면, 우리 삶과 국가 경제에 치명적 영향이 발생한다.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변화를 억제하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도 줄여야 한다.

이런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온실가스 배출 없이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현실적 대안인 원자력을 없애려 하니, 국가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기 시작했다. 20195월 현재 50여만 명의 시민이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 범국민 운동에 이미 동참했고, 그 수는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셋째, 국민에게 글로벌 마인드를 심어주었다. 정부를 비롯한 탈원전 찬성측은 독일, 대만 등 여러 나라 예를 들며, 탈원전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고 주장했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지지고 볶느라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치 못하던 우리가 바깥세상을 살펴볼 수 있는 안목과 여유를 갖게 됐다.

넷째, 원자력기업의 자립심을 키워주고 있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사업이 완료되면 더 이상 국내에는 신규 물량이 없다. 대다수 원자력기업과 직원이 벼랑 끝으로 몰려있다. 최근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로부터 설계인증을 획득해 세계 최고의 안전성을 입증 받은 APR 1400을 설치하는 신한울 34호기 건설사업 재개를 원하는 국민 청원을 청와대와 산업부는 서로에게 답변을 미루고 있다.

원자력기업이 임시방편에 기대어 자립심을 키울 절호의 기회를 그르칠까 걱정돼 눈물을 머금고 교훈의 시간을 주기 위함일 것이다. 대통령께서도 기회 있을 때마다 원전 해외 수출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씀하신다. 원자력기업에 국내 시장에만 목매지 말고 해외 시장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진취적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이다. 기업뿐만 아니라 원자력계 종사자에게도 해당한다. 봉황의 깊은 뜻처럼, 언젠가는 참새들이 해외 하늘에서 활짝 날아올랐으면 좋겠다.

다섯째, 국내 기업의 비상대응능력을 키워줬다. 안전 점검을 이유로 원전 10기가 한꺼번에 멈춰서 있던 2017년과 2018, 전력공급이 부족해지자 기업에 대한 급전지시가 빈발하였다. 스스로 계약한 기업에만 해당된다지만, 기업에게 불시 정전으로 시설과 공장이 중단될 수 있으니 이를 대비한 시설과 역량을 스스로 갖춰야 할 필요성을 몸소 느끼게 해주었다. 기업을 생각하는 정부의 마음이 상냥하기 그지없다.

여섯째, 행정의 유연성과 창의성을 진작시켰다. 에너지기본계획은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에 따라 수립된다. 이 법은 에너지기본계획 수립 시 고려해야 할 기본원칙과 절차, 에너지기본계획에 포함될 내용 등을 정해놓고 있다. 정부는 에너지기본계획 수립의 시급성을 감안하여 과학적 분석과 예측 대신 상상과 희망을 바탕으로 에너지수급 목표를 정하고, 의견수렴 과정 중 발생할 수 있는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예방하고자 의견수렴 절차를 과감하게 축소하였다.

원자력산업 생태계가 무너진다고 아우성 치니, 원전 해체를 신규원전 건설 대체 산업으로 내세웠다. 꼬리로 머리를 대신하는 창의적 문제 해결이었다. 정부의 전문가 사랑이 하해와 같다. <문주현 단국대학교 원자력융합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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