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유전개발 사건은 사건의 본질보다 사건연루자 및 관계기관의 ‘오리발식 시치미’ 혹은 ‘납득하기 어려운 거짓말’ 잔치가 이어져 의혹이 더욱 부풀려지고 있다.닉슨 대통령이 사임한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처럼 본질보다는 ‘말바꾸기’ ‘조직적 은폐’ ‘오리발’ 등으로 인해 사건이 더욱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청와대와 감사원의 태도변화이다. 지금까지 이 사건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오던 청와대는 <일요서울> 제 573호 기사 이후 “지난해 11월 초, 서범규 국정상황실 행정관에게 러시아 유전사업과 관련된 정보보고가 올라왔으며, 국정상황실장까지 보고된 후 자체 종결처리했다” 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사건과 관련, 청와대와 감사원의 해명이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청와대와 감사원이 명백한 증언과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일단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는 것.

<일요서울>은 그동안 러시아 유전개발 의혹과 관련, 청와대 및 감사원의 말 바꾸기 백태를 모아 보았다.러시아 유전개발 투자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한 지난달 1일, 청와대는 대변인 명의로 “이 건과 관련해 청와대가 직접 조사에 나선 적이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 27일 감사원의 철도공사에 대한 감사 사실이 밝혀진 지 닷새만이다. 철도공사의 유전사업 의혹이 노무현 대통령 측근인 이광재 의원 개입설 및 청와대 사전 인지설 등 권력형 비리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자 이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청와대, 작년 11월초 유전사업 정보보고 받았다.

그러나 청와대의 이같은 공식 해명에도 불구하고 철도공사의 내부 문서 등을 통해 청와대의 사전 인지설은 끊이지 않았고, 급기야 <일요서울>은 철도공 사 간부가 지난해 11월 초, 청와대와 감사원에 각각 러시아 유전 사업 비리와 관련된 투서를 접수했다는 사실을 첫 보도했다.청와대는 이에 대해 본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투서접수 경로와 내역을 확인해 본 결과 투서 접수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 민정수석실의 한 비서관은 “투서로 국한 짓지 않더라도 민원, 진정 등 어떠한 형태로든 러시아 유전 사업 관련 비리 내용이 접수된 것이 없느냐”는 질문에 “민정수석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으로 들어오는 민원 및 투서, 진정을 모두 확인했지만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청와대의 이같은 주장은 일주일도 채 안돼 ‘생뚱맞게’ 됐다. 청와대가 지난해 11월 초,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 사업과 관련한 정보보고를 받았고, 자체 경위파악에 나섰던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안택수 의원이 국회 건설교통위원회에서 “청와대가 유전 사업에 대해 철도공사, 석유공사, SK 유전개발 담당자에게 여러 차례 문의한 적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추궁한 것이 시발점이 되었다. 물론 청와대는 이때까지만 해도 정확한 경위 파악에 나서기 보다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안 의원의 공세에 대해 문재인 민정수석은 “민정수석실 차원에서 유전사업과 관련된 조사는 없었다”고 부인한 뒤 “안 의원은 뒤에 숨어서 익명으로 얘기하지 말고 누가, 언제 전화를 했다는 것인지 이름을 밝혀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청와대 국정상황실 서범규 행정관이 검찰로부터 “왕 본부장이 청와대 서모씨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하는데 어찌된 것이냐”는 문의 전화를 받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더 이상 청와대가 ‘모르쇠’로 일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물론 청와대는 김만수 대변인을 통해 “국정상황실장까지 상황이 보고됐고 자체 종결 처리했기 때문에 노대통령과 김우식 비서실장에게 이 사건이 보고된 것은 최근 언론보도 이후”라고 했다. 공직기강 업무를 맡고 있는 민정수석실에서조차 최근까지 전혀 몰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나 청와대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인다고 해도 사건이 불거진 지 한달 가까이 되는 현재까지도, 특히 청와대가 요로를 통해 정밀조사를 실시했다고 하면서도 민정수석실이 이미 내부에서 처리된 사안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감사원, 철도공직원 직원 대전사무소 통해 첫 제보

이와는 별도로 이번 사건을 처음 조사한 감사원의 말 바꾸기 행태는 그야말로 가관이다. 감사원은 당초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 의혹에 대한 중간 수사발표를 하면서 “11월 20일쯤 이 사건과 관련, 돈을 떼였다는 첩보를 입수,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감사원 조규호 공보과장은 지난 16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어떤 경로든 간에 각종 제보가 올 때 처리하는 부서가 있다”며 “그러한 과정을 통해 첩보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조 과장은 ‘그러한 첩보에 투서도 해당이 되느냐’는 질문에 “진정, 민원, 투서가 모두 해당된다”고 밝혔고 ‘투서자에 대한 조사는 이뤄졌느냐’는 질문에 “통상 당사자에게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그러나 누구인지를 밝힐 수 없다”고 말해 사실상 투서가 접수됐으며, 투서자에 대한 신원 확인 및 진상 파악을 거쳤음을 시인했다.

그러나 지난 22일 감사원의 대전 사무소에 첫 투서가 이뤄졌다는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홍성택 대전사무소 소장은 “작년 11월쯤 동향조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금기웅 특별조사국 3과장이(당시에는 대전사무소에 근무) 정보 수집을 해서 감사원 본국에 올린 것”이라며 “그러나 자체 정보수집이었지 투서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금 과장은 “내가 정보 수집을 해서 본국에 올린 사실은 없다, 홍 소장이 잘 몰라서 그런 말을 한 것”이라며 “당시 대전사무소에서 정보 보고를 한 사실은 없으며, 서울의 특별조사국내에 팀이 구성돼 첩보를 입수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최근 청와대의 사전 인지설이 논란이 되자, 감사원은 “철도공사가 소재하고 있는 감사원 대전사무소를 통해 정보가 처음 올라왔으며, 감사원 대전 사무소 직원이 유전사업에 반대하는 철도공사 직원으로부터 정보를 입수해 올린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청와대와 감사원의 ‘퉁’식 변명과 ‘따돌리기’, 그리고 의문의 ‘거짓말 행진’은 수십억원의 국부를 날렸다는 이번 사건의 본질보다 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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