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 여성 허락 없이 촬영 시청자들과 ‘외모’ 품평하는 BJ들

지난 23일 홍대 거리 [사진=황기현 기자]
지난 23일 홍대 거리 [사진=황기현 기자]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지난 23일 저녁, 홍대입구역 인근 거리. 목요일이었지만 ‘불금’ 못지않은 인파가 몰린 홍대는 젊음이 뿜어내는 열기로 가득했다. 한쪽에서는 버스킹 공연이 한창이었고, 잔디에 앉아 여유를 만끽하는 커플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저녁 메뉴를 고르기 위해 고민하는 모습에서는 홍대 거리가 가진 활기가 느껴졌다.

잇단 논란에도 끊이지 않아…엄연한 범죄
“개인 방송의 미래 위해서는 BJ들의 자정 작용 필요”

홍대에는 매일같이 수많은 인파가 몰려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낸다. 문제는 이처럼 사람이 몰리는 홍대에서 개인 방송을 하는 BJ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BJ들의 야외 방송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방송에 방송 당사자의 얼굴만 나온다면 크게 문제 될 부분도 없다. 그러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일반인을 출연시킬 경우 이야기는 달라진다. 실제로 수많은 일반인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BJ의 ‘게스트’가 되고 있다.

허락받지 않고 일반인 촬영…“대부분 얼평, 몸평으로 이어져”

일부 BJ는 아예 거리를 걷는 일반인들을 방송 소재로 삼는다. 인터넷 개인 방송은 휴대전화 한 대만 있으면 충분히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인으로서는 자신이 방송에 출연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이 점을 악용한다. 특히 여성의 경우 BJ와 시청자들의 타깃이 되기 쉽다. 여성이 방송 화면에 잡히면 채팅창은 순식간에 얼굴과 몸매 등을 평가하는 글로 도배된다. 명백한 성희롱이지만 이런 채팅을 잡아내기는 쉽지 않다. 앞서 말했듯 촬영 여부도 알기 어려울뿐더러, 당사자가 채팅 내용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직장인 김모(24. 여성)씨는 “길에서 혼자 중얼거리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방송에 출연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나쁘다”고 호소했다. 방송 서비스 업체에서 자체적인 모니터링을 하고는 있지만 100% 단속하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특히 BJ가 해외 플랫폼을 이용해 방송을 진행할 경우에는 단속이 더욱 어려워진다.

‘헌팅’ 콘셉트로 일반인에게 접근하는 BJ…“범죄 위험 노출”

방송 콘셉트를 아예 ‘헌팅’으로 정하고 의도적으로 일반인에게 접근하는 BJ도 적지 않다. 이 같은 방송은 홍대 거리를 비롯해 강남과 이태원 등 번화가에서 주로 이뤄진다. BJ들은 길을 가다 외모가 예쁘거나 짧은 옷을 입은 여성을 보면 인터뷰를 시도한다. 인터뷰에 응하기 전에는 여성을 출연시키지 않는 BJ도 있지만, 처음부터 상대방의 얼굴과 몸을 노출시키는 BJ도 있다. “어디 가시냐”, “뭐 하고 있었냐”로 시작된 질문은 차츰 노골적으로 변한다. “남자친구 있냐”, “예쁜데 같이 술 마시지 않겠느냐”는 식이다. 여성이 불쾌감을 표출해도 이를 ‘튕긴다’며 밀당 식으로 넘겨 버리는 BJ도 많다. 평소 홍대 거리를 자주 방문한다는 직장인 이모(26. 여성)씨는 “친구와 길을 걷다가 BJ에게 헌팅을 당한 적이 있다”며 “의사도 묻지 않고 휴대폰부터 들이대 불쾌했다”며 경험을 전했다. 거절 의사를 밝혔음에도 BJ가 따라온 경우도 있었다. 대학생 최모(22. 여성)씨는 “방송에 출연하고 싶지 않아 남자친구가 있다고 에둘러 거절했다”며 “그런데도 따라와 ‘정말 남자친구 있는 게 맞느냐’고 캐물어 무서웠다”고 회상했다. BJ들의 헌팅 방송은 대상이 된 여성을 범죄 피해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다. 실제로 방송에 출연한 여성의 외모가 예쁘면 채팅창에 ‘지금 찾아가겠다’는 댓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여성의 위치가 고스란히 노출된 상황이기에 범죄가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자극적, 선정성 편집 영상들...청소년에게도 여과 없이

‘헌팅 방송’을 통해 촬영된 영상들은 편집 과정을 거쳐 유튜브 등에 게재되기도 한다. 실제 유튜브에 ‘길거리 헌팅’이나 ‘홍대 헌팅’ 등의 단어를 검색하면 수백, 수천 개의 영상이 쏟아진다. 영상의 제목은 대부분 선정적, 자극적이다. 조회 수에 따라 BJ가 얻는 수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BJ들이 ‘100% 성공하는 길거리 헌팅’, ‘그쪽과 00 하고 싶은데 어쩌죠’ 등의 제목으로 시청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영상이 별다른 성인 인증 절차를 거치지 않고 청소년에게 그대로 노출된다는 점이다. 음란 동영상 수준은 아니더라도, 이러한 영상은 청소년에게 왜곡된 성 관념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헌팅 방송’은 모두 불법…징역형 선고된 사례도 있어

헌팅 방송은 명백한 ‘불법’이다. 성폭력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14조에 따르면 카메라 등을 이용해서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를 동의 없이 촬영하는 행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실제로 2016년 여성의 특정 신체 부위를 몰래 촬영해 방송했던 20대 BJ 김모씨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사례가 있다. 원치 않는 방송 출연으로 피해를 본 경우 증거 화면을 수집, 신고해 해당 BJ를 처벌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촬영 당시에는 동의했더라도 이후 영상 속 댓글 등에 불쾌감을 느꼈다면 손해배상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신고를 위해서는 방송된 화면을 피해자가 일일이 수집해야 한다는 점이 문제다. 녹화본이 아닌 생방송 화면을 개인이 찾아 캡처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극적 방송 아닌 크리에이터다운 콘텐츠 개발해야

길거리 ‘헌팅 방송’은 즉흥적으로 이뤄진다. 언제 어디서 시작될지 모르기에 경찰이 미리 단속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BJ들이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 당장 자극적인 헌팅 방송으로 이익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이로 인한 피해자가 늘어갈수록 헌팅 방송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장기적인 비전은 사라진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자신을 정말 ‘크리에이터’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크리에이터다운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해 시청자와 소통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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