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는 속리산 화양동은 예부터의 명승지였다. 그 유명한 ‘만동묘’가 있던 그곳은 조선시대 사대주의의 성지가 됐었다.

화양천을 따라 전개되는 화양구곡은 우암 송시열이 은거했던 곳으로 그의 필적이 아직 곳곳에 남아 있다. 또 이곳에는 환창사(換彰寺)라는 옛 절이 있어 전해지는 일화가 있다. 이 절에 있던 한 스님이 화양동을 찾는 선비들의 행동거지만 보고서도 그 선비가 노론인지 소론인지, 또 남인인지 북인인지 당색을 귀신같이 알아 맞혔다는 이야기가 영조왕때의 문헌 ‘이순록(二旬錄)’에 의해 사실로 전해진다.

그에 의하면 선비들이 화양계곡 어귀에 들면서 좋은 경치에 도취돼 감탄하는 사람은 남인이고, 아름다운 경치에 짐짓 무심한체하고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은 북인이라는 것이다. 또한 만동묘의 처마만 쳐다보아도 감회에 젖고 공경하여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하는 사람은 노론이며, 만동묘 앞을 지날 때 전혀 공경하는 마음 없이 편한 걸음으로 산천구경만 하는 사람은 ‘우암’과 당파가 다른 소론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부인들에게 있어서는 옷매무새나 겉치장만으로 집안당색을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머리 위에 꽂은 첩지나 머리핀 치장이 각 당파마다 달랐고, 심지어 치마 주름에 옷고름매무새까지 서로 티나게 했었다. 조선시대 4색 당파는 이렇게 사람의 행동과 치장까지를 지배해서 완연한 작용을 한 것이다.

당색은 같은 사안에서도 온건과 강경으로 대별될 수밖에 없었다. 근자 범여권쪽이 통합신당 문제를 놓고 대립하는 양상이 꼭 조선조때 당색귀신이 살아 돌아온 것만 같다. 어제 아침녘까지 백년 가는 정당을 하겠다고 기염을 토하고 만들었던 당을 뛰쳐나와 또 새 당을 만들겠다는 사람들, 자신들의 이해를 위해 겉치장, 행동거지 위장하는 사람들을 조선의 당색에 비유하는 일이 어쩌면 조선 시대 선비들에 대한 심한 모독일지 모르겠다.

거기다 어제까지 제1야당내 개혁 기수임을 자처하며 여당의 봇물 터진 듯한 실정을 맹비난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범여권세력을 자임해서 자신의 행동과 치장을 그에 맞추는 고약한 실상마저 빚어졌다. 한술 더 떠 범여권 당색을 위한 구차한 추파까지 서슴지 않는다. 겨우 어제저녁녘에 열린우리당 탈당세력과 민주당이 통합해서 급조됐던 중도통합민주당은 또 미처 밤이 깊기 전에 다시 풍비박산 나버렸다. 범여권 당색이 또 하나 크게 급조된 까닭이다. 이름 해서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 창당준비위원회’라나 뭐라나, 하여간 열린우리당을 탈당해 6개월새 네 번이나 당적을 바꾼 19명 의원을 포함해서 국회의원 64명의 제2
당 골격이 마련됐다.

이런 범여권의 4색 당파가 늦게나마 국민과 나라장래를 위해 생겨난 것이라면 우리 국민이 다 일어나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만할 것이다. 그런 춤은 고사하고 많은 국민들이 냉소하고 허탈해 마지않는 것은 여권이 이렇게 위장개업을 거듭하는 바람에 그들 실정책임을 묻기가 더 난감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불안함과 두려움이 커지는 것은 지금 범여권의 하는 양이 반드시 무서운 전략적 비수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아서다.

여권이 4색으로 찢어발겨진 자신들의 약점을 모를 리 없다. 그래서 더욱 겁이 난다. 약점 앞에 강해질 수단은 폭력뿐이라지 않는가.

이 사람들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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