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말, 신유년의 천주교 박해 당시 대구감영에서 있었던 ‘박 바오로 논쟁’은 유명한 일화다. 형틀에 묶인 천주학도 박 바오로는 곤장을 맞고, 주리를 틀리고, 삼릉장(三稜杖) 매질 고문까지 당해 팔꿈치 뼈가 드러나는 지경에서도 천주교 교리를 배반치 않았다.

이에 심문하던 수령이 다소 엉뚱한 생각을 갖게 됐다. 다름 아닌 당시 사람들 누구나 법명(法名)만 대면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숭앙받는 고행스님과 한번 교리 논쟁을 시켜보자는 생각이었다. 이때의 그 고행승은 신앙의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손가락 하나씩을 절단해서 결국 손가락을 네 개나 잘라버린 사람이었다.

드디어 고행스님이 바오로에게 “천주학에는 극락이 있는가”라고 묻자 바오로는 “극락은 없어도 천당은 있다”고 말했다. 고행승이 또 “극락은 업보에 따라 왕생을 하는데 천당은 어떻게 가는가”라고 물었다. 바오로는 “천당에는 영혼만이 가서 영생을 한다, 육체는 영혼이 일시적으로 머무는 여관에 불과하며 그 육체는 이렇게 찢어발기고 가루를 낼 수 있지만 영혼은 형체가 없어 어떤 혹독한 방법을 써도 다치게 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 말을 들은 고행스님은 네 손가락 없는 손을 들어 보이며 “그렇다면 천당과 극락은 마음속에 있는 똑같은 곳이다”고 말해 논쟁은 끝이 났다. 바야흐로 천주학과 불법간의 마찰을 기대했던 관아 수령이 그만 머쓱해져서 재미없이 돼버렸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지난 19일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청문회를 끝낸 각 예비후보들도 마음속 천당과 극락을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지지율 고공비행을 해왔던 이
명박 후보는 그 동안 천당과 극락에서 기거해온 셈이고, 박근혜 후보도 이명박 후보를 맹추격하면서 천당이나 극락을 느낄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천당과 극락은 언제라도 마음속에서 떠날 수 있는 것이다. 후보 누구나 자신이 불리한 상황에 몰릴 때는 이 천당과 극락은 지체 없이 마음을 떠날 준비를 한다. 더욱이 한나라당 경선을 통과해서 공식 대선후보가 정해지면 이런 상황은 더 극심해질 수밖에 없다. 범여권 쪽 공격은 당내 검증에 비할 바가 못 될 것이다. 모르긴 해도 혹독하리만치 거세고 파괴력이 강할 것이다.

따라서 마음속 천당과 극락을 지키기 위해선 뭣보다 자신의 깨끗함이 ‘귀감’을 이뤄야할 것이다. ‘귀감’은 본받을만한 모범됨을 말한다. 근자 이명박 후보와 관련한 검찰수사 상황을 지켜보면서 참 우습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겠다. 많은 국민이 정작 궁금해하는 본질의 몸통문제는 슬그머니 꼬리를 감춰버리고 깃털에 곁가지만 춤을 추는 형국이니 말이다.

이대로면 한나라당 경선 전에 당의 유력 대선예비후보에 대한 의혹을 말끔히 풀기는 애시 당초 그른 것 같다. 만약 사실을 숨겨 끝까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겠다고 들면 진실은 당분간 하늘만 아는 일이 될 것 같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속만은 어떤 것으로도 덮어질 수 없을 뿐더러 비밀이 영원할 수가 없는 법이다. 설령 오랜 기간 동안 진실이 묻혀져도 제 마음속 지옥만큼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마음속 지옥을 겪고 있는 지도자가 가슴 뜨겁게 국가와 국민을 사랑할 수는 없다. 오직 ‘천당과 극락’이 마음속에 있는 자만이 모두를 사랑해서 사심 없는 애국, 애족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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