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ㅇㅇ 회장님, 자주 찾아뵙고 진행상황을 소상히 알려드리겠다는 약속을 못 지켜 미안합니다. 변명을 하자면, 좀 바빴습니다. 회장님의 지하철역 유치 민원에 시달리다 지쳐 다른 의원실로 옮겨보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는데 별로 소득이 없습니다. 이러다 회장님과 유치비대위분들 얼굴 보며 내년 총선을 치러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니 한숨부터 나옵니다.

회장님 사시는 곳을 지역구로 둔 국회의원 밑에서 일하는 인연으로 몇 년 동안 회장님과 그 지역주민들을 만나면서 좋은 기억이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지하철 역 신설 요구야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시와 국회의원, 주민들이 제 때에 나섰으면 아예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일이 성사되기엔 너무 늦게 나섰고, 좋은 인연이 되기엔 우린 너무 늦게 만났죠.

지하철 공사는 곧 착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지하철역은 회장님 아파트 앞에 생기지 않을 테고, 회장님이나 비대위분들의 전화연락도 뚝 끊겼습니다. 4,50명씩 모이던 지하철역 유치촉구 촛불집회도 더 이상 이뤄지지 않고, 한 때 천명 넘게 북적대던 단톡방도 한산해 진지 오래입니다. 여러 생각이 있으시겠지만, 저 또한 아쉬움과 회한이 많이 남습니다.

회장님과 비대위, 주민들을 만날 때 가장 아쉬웠던 점은 의원과 보좌진을 함께 해결책을 찾을 파트너가 아니라 압박의 대상으로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민들의 표를 무기로 국회의원을 압박해봐야 서로 감정만 상하고 의원 입장에서는 잔꾀만 부리게 됩니다. 솔직하게 문제점을 드러내고, 힘을 모을 수는 없었을까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뽑아 준 주민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뭐라도 성과를 남기고 싶어 합니다. 주민들이 원하는 일이라면 당연히 해주려 노력합니다. 적절한 긴장감 조성은 필요하지만, 협력관계로 자발적으로 일하게 하는 지혜와 아량이 아쉬웠습니다.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협박 아닌 협박을 들을 때마다 지하철역이 넌더리가 나더라구요.

표를 가진 유권자와 선출직 공직자 사이에도 존중은 필요합니다. 국회의원이나 의원 보좌진을 표를 주고 고용한 민원해결사로 보지 마세요. 저는 회장님과 함께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협력관계로 만나고 싶습니다. “선거가 내년”이라거나, “어떻게 하는지 보겠다”는 말씀은 적어도 민원 들고 와서 꺼낼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일이라도 이게 될 일인지 안 될 일인지, 꼭 필요한 일인지, 필요 없는 일인지는 어느 시점에서 판단이 가능합니다. ‘불가능은 없다’라는 식으로 불굴의 의지만 가지고 달려들어서 될 일은 별로 없습니다. 지하철역 신설 문제도 이미 1년 전에 어렵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그걸 회장님이 받아들이지 못해서 주민들이나 저나 지난 1년 헛고생을 한 것이죠.

다양한 민원인들을 만날 때마다 대부분의 분들이 때를 놓친 채로 국회로 오신다는 것이 가장 안타까웠습니다. 민원인 입장에서야 여기저기 알아보다 찾아오시는 경우겠지만,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해도 이미 해결 시기가 지난 경우가 많습니다. 억울함을 호소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는 꼭 해당기관에 민원을 제기하시고 바로 국회로 들고 와 주세요.

회장님, 저는 ‘우리 지역도 전철역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터무니없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충분히 검토해볼 가치가 있었습니다. 무산됐지만 성과도 남았습니다. 슬쩍 귀뜸하자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전철역의 대안이 될 만한 공약을 준비 중입니다. 실현가능성 없는 헛공약이 아닌, 국토부와 시와 충분히 협의를 거친 사업입니다. 조만간 찾아뵙고 설명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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