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 정치권은 여야 공히 지방선거를 앞두고 터져 나온 악재 때문에 골치 깨나 아픈 모양이다. 한쪽은 어제까지 당 살림을 총괄했던 전사무총장의 성추행 사건에 휘말려 있고, 다른 한 쪽은 자당출신 국무총리가 그동안 잦았던 골프 구설에 또다시 휩싸여 온갖 의혹의 중심에서 강한 총리직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여야 정치권의 당황한 모습이 역력한 것은 사태의 정치적 책임을 통감해서가 아니라 지방선거에 미칠 영향이 간단치 않을 것이란 판단에 골몰해서 일게다.진심으로 국민 앞에 면목 없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양당이 부끄러운 자당입장에는 한발을 뺀 채 상대약점 쑤시기에만 그토록 혈안일 수가 없을 노릇이다.봇물처럼 쏟아내는 그들 말을 듣고 있자면 때로 어째 저런 사람이 지역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고 선량으로 뽑혀올 수 있었는지 의아할 지경이다. 아마 해당지역 유권자들이 지금쯤 후회막급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만약 그렇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지역민들의 뜻을 대변하는 국민 대표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허수아비 국회의원 꼴일 수밖에 없는 이치다.사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량은 형사소추에 의하지 않는 한 헌법상 임기를 주저 없이 누린다. 오늘의 정치 불신이 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더욱이 지금은 국민이 마음 둘 곳조차 없다. 과거 군사독재 하 암흑기에는 전통야당에 희망을 걸고 YS·DJ를 따를 만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민심을 모으고 의지해서 맡길 데가 없다.절망하는 민심은 민망하리만치 정치에 냉소적이다. 이런 현실에서 두어 달 남짓 후면 지방선거가 일제히 시작된다. 과연 투표율이 얼마나 될지도 궁금한 일이지만, 그사이에 일어날 정치권의 이전투구는 또 어떤 가관의 모습을 나타낼지 미리부터 두려워지는 마음이다.역시 이번 선거에도 선거 승리를 위한 여야정당의 지역발전 공약이 화려한 춤을 출 것임이 자명하다. 국민이 믿지 않을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정책정당의 모양새를 만들자면 이것저것 공염불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이런 사정에서도 국민은 투표권 말고는 정치인을 혼쭐낼 아무런 힘이 없다. 자신들이 창출해놓은 권력이 썩었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비분강개해 봐야 벙어리 냉가슴 앓는 격일 테다. 행여 정치인들 스스로가 개과천선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차라리 산에 가서 물고기를 찾는 편이 옳을 법하다.나라 사정이 이 정도에 이르렀으면 우리는 냉소하고 포기해 앉아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반드시 해결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이 땅 대한민국은 한국인들이 대대손손 살아야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잘못된 풍토나 관행을 뿌리 뽑고 살기 좋은 나라로 해놓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움직이지 못할 역사적 책무임에 분명하다. 산산조각으로 나뉘어진 국민의 힘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 정치인들이 겉으로 국민을 떠받드는 시늉만 낼 뿐 국민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근래 빚어진 정치권의 후안무치한 작태가 입증하고도 남는다. 이런 때 국민들이 직접 나서서 정치인을 응징할 수단이 있어야 했었다. 진작에 국민소환제(Recall)가 도입됐다면 정치가 오늘같이 너저분해졌을 리 만무하다. ‘아무개를 소환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정치인들은 오금이 저려올 것이다.법안 날치기통과 따위는 꿈도 못 꿀 것이고 그들 일거수일투족에 팽팽한 긴장감이 돌 것이다. 다만 유의해야 할 점은 국민소환제를 악의적 여론몰이로 특정인을 죽이는 방법에 악용치 못하도록만 하면 된다. 오는 선거에 여당이건 야당이건 진지한 국민소환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놓으면 모르긴 해도 필승의 카드가 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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