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윤봉길 의사의 사당인 ‘충의사’ 현판이 시민 대표를 자임하는 한 시민의 손에 떼어져 박살이 났다.잘, 잘못 이전에 국민들 마음이 매우 착잡할 것 같다. 더욱이 이 같은 일이 정부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역사 바로잡기 실행 과정에 빚어졌다는 점에서 우려하는 마음이 클 것이다. 윤의사 사당에 박정희 전대통령의 친필 현판이 적절하냐에 대한 의견이 분분해지면서 이번 일이 국민 편 가르기의 새 분수령이 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한편에서는 박 전대통령을 친일파로 규정해서 현판 철거가 당연하다는 주장을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충의사가 국가적 사적(史蹟)인 만큼 거기에 있는 박 전대통령의 친필 현판 역시 하나의 역사라고 볼 것이다.따라서 그것이 잘못된 역사인지, 그래서 떼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거친 토론이 일어날 것이 불 보듯해졌다. 이 와중에 정작 엄중히 다스려져야 할 사적에 무단 침입해서 몰래 역사를 떼어내고 더구나 돌이킬 수 없게 파손까지 한 범법행위가 찬사 받는 정황이 나올 수도 있다.이런 식이면 ‘우리 아니면 제대로 역사를 평가할 수 없다’는 독선과 오만이 더욱 힘을 얻어서, 마치 역사를 자기들 마음대로 떼내고 파손할 권한이라도 있는 것 같은 병리적 착각을 일으킬지도 모를 일이다. 이래서 역사 바로잡기 같은 국가적, 국민적 대명제는 충분한 국민공감대를 형성한 다음 투명한 합의절차를 밟지 않으면 훗날 또 한번의 역사 뒤집기 빌미를 잉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언제나 현실적 잣대로 역사를 들여다보면 수긍 안가는 부분이 나타나게 돼 있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현실적 시각으로 옛 시대적 배경을 다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 솔직히 말하면 현실주도 세력이 정치적 이해에 내몰려 애써 과거를 부인하려는 측면이 분명히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대부분의 국민들은 일제에 빌붙어 동포를 박해했던 이때까지 감춰진 친일 매국노들의 악행을 계속 덮어두자는 생각은 애초부터 아닐 것이다. 또 8·15광복 후 혼란을 틈타 생쥐처럼 광복군에 끼여들어 그동안 국가가 주는 온갖 혜택을 누려온 뻔뻔한 민족 기만행위까지를 그냥 두자는 생각 역시 추호도 없을 것이다. 다만 아직은 가치중심이 확고해 보이지 않거나 첨예한 논쟁과 대립이 불가피해질 것이라고 판단되는 대목에서는 필요 없이 국민을 가르게 된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것이다. 이대로 국민이 서로 갈라져서는 화합, 상생, 통합의 말 꺼내기조차 어렵다. 지금 봐서는 여야 정치권이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꺼내놓은 ‘선진한국’이란 화두를 실현시켜야 할 책무를 그들 스스로가 인식이나 옳게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여기서 꺼낼 얘기가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벌써 천년 전의 신라 김유신 장군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도 후세 사람들의 이의가 아주 없지가 않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싶다. 누구는 김유신 장군이 당나라를 끌어들여 삼국을 통일하는 바람에 국토가 절단당하고 외세 압박을 자초하는 계기가 됐다고도 말한다. 또 누구는 당시 고구려, 백제 사정으로 봐서 김유신 장군이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삼국 전체가 당나라에 의해 차례로 멸망당해서 나라가 없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주장도 편다. 천년 동안이나 삼국통일의 영웅으로 추앙받던 김유신 장군이 무덤 속에서 후손들의 이런 논란을 안다면 어떤 대답을 할까? 아마 그때를 살아보지 않은 녀석들이 철모르고 까불지 말라고나 않을지….오로지 반공만이 나라를 지켜내는 수단이었던 시대에는 멸공투사가 영웅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했다. 또한 배고플 때는 배부르게 먹도록 해준 지도자가 위대해 보일 수밖에 없는 이치다.지금 국민들이 자고 뜨면 경제, 경제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모르긴 해도 오늘의 참여정부가 만사를 제쳐두고라도 경제문제를 성공시켜 놓으면 성공한 정부로 평가받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첩첩 산중처럼 느껴지는 경제문제를 해결치 못한 채 벌여 놓은 역사 바로잡기는 자칫 역사 흩트리기로 국민만 갈라놓았다는 자조적 평가를 동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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