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도(治道)는 아흔아홉 가지의 선정으로도 단 한 가지 악정을 상쇄시키지 못 한다고 했다. 이는 그만큼 정치가 신중해야 한다는 뜻일 테고, 당리당략에 치우치거나 민심을 도외시한 독선정치를 경계한 말일 것이다.사람에 있어서도 그렇다. 나름대로의 직업을 선택해서 생업에 종사하는 일반 사람들끼리는 서로 뜻이 맞지 않고 싫다는 마음이 생기면 굳이 상종치 않으면 그만일 것이다. 아니면 상대의 여러 가지 단점을 이해해주고 한 가지 장점이라도 취해서 좋은 관계를 가질 수가 있을 것이다.그러나 정치권에 속해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보통의 인과관계를 적용할 수 없는 것이 국가장래가 그들 집단의 일거수일투족에 의해 가늠될 수 있고 굴러갈 수밖에 없는 간단한 이치 때문임은 말할게 없다. 해서 정치인의 도덕성 문제가 불거지면 세상은 가혹하리만치 그에 공격적이다.그 사람이 과거에 어느 정도로 나라와 국민을 위했고, 또 얼마만큼 우리사회에 기여했는가를 따지지 않는다. 조금의 정상론(情狀論)도 용납 안한다. 다만 치도의 원칙만이 적용돼 지난날의 수십 가지 실적과 업적으로도 한 가지의 악행을 덮지 못하는 바다.이번 성추행 파문으로 정치적 파탄에 직면한 최연희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검사출신으로 3선의 관록을 쌓기까지 수신(修身)을 위한 부단한 노력을 했다. 출신지역의 가정법률상담소 산하 가정폭력, 성폭력상담소 이사장으로 대민 봉사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모나지 않는 일처리와 부드러운 성품으로 주위에서 좋지 않은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는 주변 평가도 있다. 그래서 그를 아끼는 사람들은 술이 원수였다는 말로 안타까움을 표한다.같은 한나라당 여성의원들조차 ‘우리사회에 만연된 잘못된 음주문화, 성문화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라며 그의 의원직 사퇴를 압박했었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읍참마속의 심정이었을 테다. 이전부터 벌써 소속의원의 골프장 경비원 폭행사건이 빚어졌고 국정감사에 임해서는 피감기관과의 술자리 폭언사건이 일어난 것을 비롯해 나태와 안일에 빠져있는 한나라당 모습이 여실해보여 지방선거를 앞둔 이쯤에는 한나라당 입장이 최고로 단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그동안 당 지지도에 죽을쒀온 열린 우리당으로서는 또 이번 파문이 최고로 확대되기를 내심 바랄 것이다. 그래서 더욱 불씨를 지피려 할 것이다. 한나라당의 ‘웰빙당’ 이미지를 이 기회에 키울 수만 있다면 합종연횡을 통한 정권 재창출은 받아놓은 밥상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 것이다.이렇게 남의 슬픔이 곧 나의 기쁨이 되는 정치판 생리는 한치 변함이 없다. 그 같은 움직일 수 없는 반사이익의 이치가 물론 있지만, 여권이 이번 한나라당 사태를 정략적으로 이용해서 안 될 분명한 이유는 그 일이 반드시 남의 얘기일 수가 없다는 점이다. 정치가 생물이라는데 생물은 살아 움직인다는 뜻이다. 그런 생물의 움직임은 누구도 예단할 수가 없는 것이다.‘술먹은 개’라는 말이 있다. 취중의 일은 어떨 때 도저히 사람의 행동일 수가 없다는 말일게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이 작취의 변명 한마디 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치도를 행하는 정치 집단이기 때문이다. 여야 정치권이 그 잘난 폭탄주 따위의 해괴한 음주문화를 털어내지 않고서는 같은 사건이 또 일어날 개연성은 도처에 깔려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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