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만큼 부자에 관한 속설이 많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한국의 부자가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가 그 가운데 있었지 싶다.일테면 부자가 3대를 넘지 못한다느니,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느니, 큰 부자는 하늘이 낸다느니 하는 말들이 있다. 3대 가는 부자가 없다는 말은 아들이나 손자가 물려받은 재산을 같은 정신으로 지켜내기가 어렵다는 정신적 문제일 테고, 망해도 3년 부자 노릇을 할 수 있다는 의미는 시쳇말로 해서 비자금이 숨겨져 있다는 뜻일 게다. 또한 큰 부자는 하늘이 낸다는 것은 운수와 팔자소관의 운명론을 신봉한 까닭일 것이다.이렇게 보면 우리조상들의 부자관은 부정적이라기보다 적대적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가 부자라고 아들 가족이 거들먹대는 꼴이 마땅했을 리 없고, 재산을 따로 빼돌리고 숨겨놓는 작태가 도둑질을 감추는 것처럼 보였을 법했고, 큰 부자 된 것이 술수에 능하고 팔자를 잘 타고나서라는 인식에 그칠 정도로 관념적인 회의가 짙었다. 특히 재산을 숨기고 빼돌리는 행위에 있어서는 마치 내 것을 착취당한 것처럼 그들을 경원시한 것이 사실이다. 그 때문에 우리들 머릿속엔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망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지배를 이루었다. 이런 생각이 전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이 땅의 부자들은 어떤 말을 해도 만인의 존경받기는 애시당초 틀린 노릇일 것 같다. 지금 한창 진행 중인 현대차 그룹 수사과정에도 엄청난 비자금조성 실태가 드러났다. 또한 편법상속의 실상도 속절없이 드러날 전망이다. 세상이 한없이 달라져도 한국부자의 배반적 행태는 더욱 교묘하고 치밀해지기만 했을 따름이다. 수사기법이 과학화되고 감시기능이 첨예해진 이상으로 수법이 미래지향적(?)으로 나타난다. 정부조직만으로 감시가 어렵다고 나선 시민조직의 참여연대가 빚어내는 말썽은 또 더 한층 가관이다. 기업 편법상속에 대한 자체조사 결과 발표를 예고한 시점에서 해당기업들에게 후원금 모금 초청장을 보냈다니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소금 먹으면 물켜게 되는 이치를 모를 국민이 없을 것이다. 외국의 유력 시민단체들이 기업후원금 받는 방법을 몰라서 정부기금도 받지 않고 회원 회비로 운영하지는 않을 것이다.문제의 근원은 권력 괴물일 테다. 이 나라는 권력만 가지면 못할 짓이 없었다. 제도권 권력은 두말할 필요 없고 영향력생긴 시민단체가 어느새 또 하나의 민간권력으로 자리 잡는 현실을 우리는 똑똑히 목도했다. 권력 지향적 속성이 작용시킨 가치일 것이다. 그래서 이 땅 부자는 기업능력과 상관없이 권력에 밉보이는 날이면 언제라도 망해버릴 수 있다는 강박부담을 버리지 못한다. 하등 존경받지 못하는 부자라도 덩치 큰 부자가 낫고, 지탄 받더라도 권력에 빌붙는 외로 자칫 망한 후까지를 생각 안할 수 없는 교훈적 재벌비사가 우리 현대사에 적지 않다. 좋은 예가 또 있다. 지난주 ‘일요서울’이 특종 보도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근황이 바로 그것이다. 자업자득인가. 권력의 희생양이었는가, 논란이 분분하던 김씨가 형집행정지 결정을 받은 것은 신병의 위중함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비교적 건강한 상태로 수행원 둘을 거느리고 병원 산책에 나선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하루 134만원하는 황제병실에서 요양 중인 그의 일상은 누가 봐도 망해버린 기업가의 모습이 아니었다. 마음이 참 묘해진다. 이 땅 재벌학(學) 맨 윗 구절에는 기업이 망하고도 부자로 사는 법이 뚜렷이 명시돼 있을 것이란 비약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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