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민주계 수장격인 김덕룡 의원과 서울 시당위원장이었던 박성범 의원이 수억대의 공천헌금 비리에 연루된 사실이 한나라당의 자체고발로 드러났을 때 경악하는 민심은 할 말을 잊을 정도였다. 공천권과 관련, 서울출신 두 중진 의원의 비리정황이 그 정도면 여타지역에서는 더 볼 것도 없을 것이라는 여론반응이 지배적이었다. 그 후 실제로 터져 나온 한나라당의 공천소음은 당 근간을 흔들만했다. 차떼기 당 버릇을 결국 개 못준다는 비난이 조금도 가혹해 보이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다른 당내사정은 또 어떠했는가.박근혜, 이명박계로 대별해 갈라지는 모습이 정말 정권탈환의 의지나 있다는 것인지 의심될 지경이다. 서로 뒤에서 박근혜 할퀴고 이명박 할퀴어서 상처 폭을 넓혀가는 한나라당, 당내 의석수 과반이 넘는 초선 의원들은 몸 사리고 고참들은 점잖게(?) 뒷짐만 지고 있는 한나라당, 도대체 곱게 보일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지지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상승하는 추세다.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다. 얼마 전 최연희 의원 성추행파문이 일어나고 이명박 서울시장의 ‘황제테니스’ 공방이 빚어졌을 때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과의 지지도 격차를 다소 좁히는 듯 했으나 그 같은 분위기는 잠깐이었다. 양당 지지도가 다시 두 배 가까운 격차로 벌어졌다.박계동 의원의 몰카 파동 등 그 기간 동안의 온갖 악재를 무릅쓰고 한나라당 지지층은 요지부동의 자세를 나타낸 셈이다. 그만큼 애정이 깊었던 탓일까. 만약 지지도가 떨어지지 않는 이유가 한나라당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 때문이라면 모르긴 해도 농촌지역 소가 웃을 노릇이지 싶다. 굳이 여론조사 결과를 들먹이지 않아도 삼척동자도 알 수 있을 그 자명한 이유는 ‘열린우리당이 더 싫어서’일 게다.말하자면 ‘무능력한 진보’,‘독선적 개혁’이 부패보다도 무섭고 싫다는 속내다. 이는 열린우리당이 양극화 해결을 내세워 서민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주장한 각종 개혁적 법안이나 제도 추진이 거꾸로 서민사회에 독선의 체감만을 느끼게 했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근자 나타난 여론조사결과는 많은 국민들이 열린우리당에 대해 잘잘못을 떠나서 반발심리가 높다는 증좌로 해석된다. 잘못은 속죄해서 용서 받을 수 있는 일이다. 또 같은 잘못이 더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해볼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반발을 샀을 때의 상황은 판이하게 다를 수 있다. 운전대의 깜빡이는 왼쪽으로 켜 놓은 채 선거를 의식해서 가는 방향을 우측으로 잡겠다는 유혹은 대형 사고를 예비케 할 것이다.다른 건 다 그렇다 쳐도 세상 어느 천지에 국군이 민간 죽봉에 얻어맞고 입을 벙긋 못하는 나라가 있더란 말인가. 지금 처해있는 대한민국 현주소가 이렇다. 이런 상황에서 몽골갔던 노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조건 없는 양보를 천명하고 김정일과의 무조건적인 회담을 갈망했다. 비록 만 가지 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한나라당이나마 결코 무너뜨려서는 안 되겠다는 위기적 본능이 안 일어날 수 없을 터이다. 그런 것을 놓고 한나라당 지지도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여권이 조바심을 낸다면 국민입장은 더욱 불안하고 초조할 수밖에 없다.그 정도로 민심을 모르는 여권 정치집단에는 더 뭘 바라고 기대할 수가 없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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