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중순부터 대한민국은 4년 전 한·일 월드컵 때와 같이 독일 월드컵 경기에 열광하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토고를 이긴데 이어 유럽 최강의 프랑스와 비기면서 우리 국민들의 기대와 환호는 하늘을 찌를듯 치솟았다. 그러나 필자는 멀리 독일 축구 경기장에서 자랑스럽게 뛰고 있는 우리 선수들과 열기에 가득찬 국민들의 응원 모습 뒤로 착잡한 마음이 교차했다. 4년 전 이맘 때 피로 얼룩진 서해 교전의 처참한 광경이 떠올랐다는데서 그렇다. 2002년 6월29일 오후 대구 월드컵 경기장에서 펼쳐질 한국-터키의 3·4위 전을 응원하기 위해 250여만명의 인파가 오전부터 전국 거리와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바로 그 시각이었다. 오전 10시25분, 북한 해군 함정이 서해 연평도 앞 북방한계선(NLL)을 깊숙이 넘어 들어와 우리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에 기습적으로 포격을 가했다. 대구로부터 월드컵 승전보를 기다리고 있었던 ‘참수리호’ 장병들은 북한의 난데없는 함포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함정이 침몰되었고 6명이 전사했으며 1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북한은 6·29 기습 공격전 남한의 경계태세를 흩뜨려 놓기 위해 “민족공조” 분위기를 연출했다. 북한은 한·일 월드컵에서의 한국팀 경기를 북한 주민들에게 방영하며 남한의 승리를 축하하는 등 동족의 우애를 과시했다. 모스크바 주재 북한 대사관측은 한국의 8강 진출을 축하한다고 밝혔는가 하면, 금강산의 북한 안내원은 “축하합네다. 결승까지 가시라요”라고 동족애를 발휘하는 척 했다. 민족공조와 단합을 내세워 남한의 대북 경계심을 흩뜨리기 위한 위장이었다. 북한은 6·29 기습 공격 3년전인 1999년 6월15일 발생했던 남북 해군간의 충돌 보복을 위해 오래 전부터 서해 도발을 치밀하게 꾸며왔다. 그같은 사실은 기습공격 전 북한의 통신감청자료를 통해 화인되었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훈시에서도 드러났다. 김은 서해 기습 공격 3일 전 해군에게 영웅적인 공격을 독려했다. 그는 “이번에 해군사령부에서 영웅이 몇 명 나와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김대중 정부는 북한의 계획적인 6·29 도발을 “우발적 행위”라고 감싸주고 나섰다. 김대통령은 북한 도발 다음 날 일본에서 열리는 월드컵 결승전 관람을 위해 태연하게 출국해 버렸다. 북한 도발의 심각성을 축소키 위한 도피 행각이었다.그로부터 꼭 4년이 지났다. 북한은 요즘 전 세계 축구팬들과 우리 국민들이 독일 월드컵 경기에 흠뻑 빠져있는 틈을 타 대포동 2호 미사일 시험 발사를 기도하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4년 전 김대중 대통령이 그랬듯이 북한을 감싸고 있다. 김대중 정권이 6·29 도발을 “우발적 행위”라고 편들어 주었듯이, 노정권도 미사일 발사 위협을 “인공위성 실험”이라고 북한을 대변해 주고 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해도 장거리 공격용이므로 “우리와는 관계가 없다.” 남북간의 “민간 경협은 계속한다”고 반응한다. 북한이 미사일을 쏴도 개의치 않을 터이니 마음대로 하라는 권유와 다르지 않다.북한은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남녘 동포들이 곤히 잠들어있는 틈을 타 남침을 자행했다. 2002년 6월29일 오전 10시25분엔 모든 국민들이 월드컵 3·4위전 경기에 매몰되어 있던 시간을 놓치지 않고 서해에서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독일 월드컵에 열광만 할게 아니라 김정일이 또 무슨 짓을 저지르고 나설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을 환기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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