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 충격을 벗어던지고 ‘햇볕 지키기’에 올인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행보에 대해 새삼 놀라움과 경탄이 모아지는 지경이다.
그는 정치적 고향 목포방문을 통해 “정치를 하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정치에 개입하지 않고, 민족화해협력에 헌신할 것”이라고 말했다. 누가 들어도 아리송한 말이다. ‘정치를 하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이란 표현으로 배수진(背水陣)을 친 채, 정치에는 개입 않겠지만 햇볕 지키기에는 온몸을 바치겠다는 이 말뜻이 현실정치 개입과 전혀 무관할 것이라고 말할 강심장이 또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의 목포방문 자체가 벌써 고도의 정치적 산술에 의한 것임을 모를 사람도 없다. 목포행에 동행했던 열린우리당 중량급 의원들이나 민주당 중진들이 김대중씨를 공통분모로 한 통합문제까지 거론한 것이 김대중씨 정치재개 위력과 상관없는 것이라면 소가 웃을 노릇이다. 때문에 우리는 이 정권 끝나기 전에 또 한 차례 진귀한 장면을 접하게 될 것 같다. 총력을 다 해서 재집권에 성공한 여당을 축배의 잔을 놓자마자 아예 깨뜨려버리는 구경도 난생 처음이었지만, 그렇게 기염을 토하고 새로 만든 집권당이 임기도 끝나기 전에 다시 깨지는 초유의 구경거리도 이제 시간문제일 듯하다.
물론 김대중 전대통령의 목표는 현실정치에 개입함이 아니라 햇볕정책을 지키려 함일 테다. 그런데 김대중씨가 간과하는 대목이 있다. 햇볕정책의 결과를 놓고 일어난 많은 국민들의 회의와 분노가 지금 정략으로 해결될 시점을 벗어난 대목 말이다. 굳이 보수 꼴통이 아니더라도 ‘김대중 햇볕’이 우리 남쪽을 빨간 알몸으로 벗겨 놓았을 뿐, 북에는 ‘핵 외투’를 장만토록 하고 더 겹겹이 몸을 싸도록 도왔다는 국민 자조가 팽배해있는 마당이다.
그럼에도 오로지 햇볕정책을 지켜야한다는 일념으로 생의 마지막 힘을 다해 움직이는 김대중씨 행보에서 정치 10단의 경지(境地)가 읽혀지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호남외풍을 일으켜 여권을 흔들어놓은 전략이 민심 잡는 방안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민심 잡은 자가 반드시 미래의 승자가 되는 교훈을 그가 모를 리 없다는 점에서 김대중 전대통령의 한계가 노정된 듯도 싶다.
최근 어느 외신보도는 사설에서 한국을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현금 자동인출기라고 표현했다. 이 신문은 유엔 안보리가 모든 회원국들의 북한제재를 요구했지만 유독 한국은 자신을 위협하는 북한에 계속 현금보내기를 결정한 것 같다며 이같이 지적한 것이다. 또 한국 정부의 햇볕정책으로 그동안 20억 달러가 넘는 현금과 물품이 북한에 지원됐지만 정작 세계는 북한의 핵무기 위협이라는 어두운 구름을 갖게 됐다며 한국 정부의 대북 당근책은 실패했으며 이제 미국과의 오랜 동맹관계마저 위태로운 지경이라는 주장도 했다. 또 다른 외신에서도 1,200만 명의 시민이 살고 있는 서울을 수분 내에 파괴할 수 있는 수백기의 미사일을 북한이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유명가수와 북한의 무용수가 만나는 휴대전화 광고가 나오는 한국은 이상한 나라가 되고 있다고 비판적인 보도를 했다.
이런 우방언론들의 비난을 무릅쓴 우리 정부의 북한 감싸기에 대해 북측의 답변은 철저한 한국배제로 나타났다. 지난 31일 북한이 북경에서 미국, 중국과 6자회담 재개를 합의하면서도 이 정부에는 한마디 언질도 주지 않았다. 정치 10단의 경지(?)에도 북은 아랑곳 않겠다는 태도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