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초등학교시절 또래 친구였던 반 아이로부터 ‘훈장(勳章)’얘기를 처음 듣고 무척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부모 몰래 들고 나온 화랑무공 훈장을 한껏 뽐내며 어른들께 들은 6·25전쟁 때의 제 아버지 무용담을 열심히 늘어놓던 그 아이의 우쭐한 모습이 여간 자랑스러워 보이지 않았었다.
이렇게 ‘훈장’에 대한 상식을 익히고 난 뒤부터 당시 상이군경들을 포함해 전쟁 참전용사들 가슴에 달고 다닌 각급 무공훈장들이 어린 마음에도 아주 엄숙해보이고 빛나 보였던 게 사실이다. 훈장포상은 절대로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신비함까지 느꼈었다. 다 클 때까지는 훈·포장이 혁혁한 무공을 기리거나 독립유공자, 건국유공자, 산업유공자 같은 뚜렷한 국가수호운동 내지는 지대한 국익창출 공로자에게 그 공적을 기념하고 위무키 위해 등급별로 주어지는 것인 줄만 알았다.
때문에 더한 ‘가문의 영광’이 없을 것이란 생각을 마땅히 가졌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처럼 빛나 보인 유공훈장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깨닫게 됐다. 그건 1972년 박정희 유신쿠데타 후 유신헌법 논공행상을 보고나서이다. 이때의 포상훈장이 유신정권 몰락 후에도 반납 취소됐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필경에는 그토록 충성스럽고 금빛 찬란해 보였던 영예의 상징물이 ‘가문의 영광’으로 고이 간직되질 못하고 먼지를 푹 뒤집어쓴 채 뉘집 골방구석에 깊숙이 처박혀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전두환 신군부의 광주학살 프로그램에 이바지한 공적으로 수여된 숱한 훈장들은 아마 스스로에 의해 모두 시궁창 같은 곳에 버려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밖에도 국가포상의 품격을 짓밟고 더럽혀놓은 훈·포장 오욕의 역사가 없지 않은 터다.
옳은 민주화시대에는 최소한 코­드끼리 전리품을 나눠먹는 식의 이런 훈·포장 잔치 같은 유치한 작태는 안 봐도 될 줄 알았다. 누구라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정통성 없는 쿠데타정권이 정통성을 강변하고 충성경쟁을 유발키 위해 남발한 국가포상 놀음을 참여정부에서 다시 보게 될 줄은 아무도 상상 못했던 일일 것이다.
이 정부가 부동산 실정(失政)으로 나라를 뒤흔든 소위 8·31부동산 종합대책 입안자들에 대해 애써 직급에 따라 고루고루 무더기 서훈했던 속내가 아직도 궁금하다.
참여정부는 지난해 8·31부동산대책 발표 후 불과 3개월 지난 올해 1월 정책이 성공했다며 정책입안에 기여한 공무원 30명에게 훈·포장과 표창장을 줬다. 당시 재정경제부 세제실장, 건설교통부 정책홍보관리실장, 국세청차장 등 세 사람에게는 공무원이 받을 수 있는 훈장 가운데 두 번째 영예인 황조근정훈장이 수여됐었다.
이후 국세청차장은 청장으로 승진 기용됐고 재경부 세제실장은 차관급의 조달청장에 발탁됐다. 잘못된 부동산정책이 나라를 뒤흔들어 놓는 사이에도 이들 훈·포장자들은 승승장구(乘勝長驅)한 것이다. 국민 분노로 들끓는 부동산정책 실패와 실정에 대한 책임질 사람 하나 없는 정권 모습이다. 급기야 야당의원들이 8·31대책과 관련, 훈·포장 받은 공무원들의 서훈을 취소하라고 나섰다. “국민의 재산에 막대한 손실을 끼친 이들의 책임을 묻기는커녕 훈·포장잔치를 벌인 것은 있을 수 없으며 당장 훈장 등을 취소하고 회수해야한다”는 주장이다.
이쯤 되면 저마다의 가슴에 번쩍였던 부동산대책 훈장들은 등급이 높을수록 「가문의 영광」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오욕에 빠진 가문의 영광이라고나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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