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저물고 추워지면 오리는 물속을 찾고 닭은 햇대로 오르는 것은 만유의 생명체는 뜻과 기호와 욕망, 희망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智冠)스님 말씀이 참으로 와 닿는다.

지관스님은 지난주 신년기자회견의 즉석연설을 통해 올해는 “자기위주로만 생각하지 말자” 며 대통령 선거해를 맞은 정치권과 국민의 화합을 ‘오리와 닭’의 비유를 들어 강조했다. 이런 스님 말씀에서 오늘의 우리 정치지도자들을 향한 금과옥조(金科玉條)와도 같은 강한 메시지가 느껴진다.

모든 문제를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뻔뻔함에 자기만이 해낼 수 있다는 과한 망상으로 차 넘치는 정치현실이 속세를 멀리 떠나있는 큰스님까지를 너무 안타깝게 만든 모양이다. 이 나라 과거정치역사를 다 뒤져도 지금처럼 ‘말의성찬’으로 온 세상을 휘저어 놓고, 그 말꼬리에 매달려 상호 증오를 키우는 이런 정치를 일찍이 국민이 접해 본적 없다.

잘못된 결과에 대해 적어도 겉으로만은 ‘모두 나의 부덕함 때문이다.’ ‘전부 내 탓이다’라고 말할 줄 아는 것이 한국 정치의 전통 가치이자 옳은 지도자 상이었다. 또 정적(政敵)에 의해 공격받는 위정자의 때로 침묵하는 자세를 오히려 미덥게 볼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런 것이 이 정부 들어서 정치인들 자세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 위로는 대통령에서부터 아래로는 정치 초년생에 이르기까지 ‘내 탓’하는 모습은 이제 눈 씻고 봐도 안 보인다. 그저 일마다 핑계 대는 말, 책임 떠넘기는 말, 남 탓 하는 말, 말, 말 성찬만 난무할 뿐이다. 이 정권 사람들에게는 현실에 가난한 것은 가난한 살림살이를 물려받은 탓, 인기가 없는 것은 국민수준이 못 따라오는 탓, 정책이 잘못되는 것은 신문과 야당 탓 하는 게 모범답안이 된 것 같다. 오죽해서 지난 23일 노대통령 신년연설에 대한 야당반응이 일제히 “한 시간 동안 국민 괴롭힌 盧비어천가”였을까.

이 정권 사람들 2002년 대선승리의 여세를 몰아 백년가는 정당을 호언했던 열린우리당 창당동지(민주당배신파)들이었었다.

그랬던 사람들이 대통령임기 말년에 접어들자 앞 다투어 “열린우리당은 죽어야한다”고 살모(殺母)경쟁에 나서는 여당의 패륜적 참극은 커가는 아이들 보기가 부끄러울 지경이다.

옛 어른들이 이르기를 말이 많으면 반드시 실언이 따른다고 했다. 행동이 가벼울 때는 실수 또한 잦기 마련이다. 실언은 언쟁(言爭)을 일으키게 되고 언쟁은 더 큰 언쟁으로 번져 저주를 키울 수밖에 없다. 튀는 행동이 불안스러운 것 역시 말하나 마나다. 때문에 진중치 못한 언행은 어디에서도 신뢰를 얻지 못한다. 대통령 선거 있는 올 한해 여야정치권이 말만 좀 덜하고 가려서해도 한국정치가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지도자를 자임하는 사람 말 몇 마디는 엄청나게 파장을 부를 수 있다. 잘못 놓인 일은 원칙을 고수해서 할 일을 해나가면 반드시 옳은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이치가 분명하다. 말 표현 하나로 자기 품격을 나타낼 수 있는 우리사회다. 반면 가벼이 뱉어낸 말 한마디가 비수처럼 사람가슴을 후벼 파기도 한다.

묵직한 칼(刀)의 권위는 칼날을 뽑는데 있는 게 아니라 꽃혀 있는 상태에서 빛을 발하는 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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