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자랑하는 장구한 이 땅 한반도 역사는 끊임없이 계속됐던 외침(外侵)과 민족끼리의 내전 내분에 의해 국가적, 민족적 위기를 맞은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우리민족은 자랑스럽지 못한 이런 부끄러운 역사를 단일민족의 전통문화 가치로 덮어버리기가 일쑤였었다.

그러나 매가 잦으면 강한 맷집이 생기듯 빈번했던 ‘국가위기’는 이 민족에게 ‘난국’을 극복하는 지혜와 슬기를 교훈으로 일깨운 것이 사실이다. 또 위기 때마다 국가 민족을 구한 걸출한 영웅이 탄생했었다. 특히 임진왜란 영웅 이순신 장군은 치열한 전투 와중에서도 ‘난중일기’를 써서 후세에 큰 교훈을 남기고 왜곡 되지 않은 7년 왜란의 위기 역사를 쓸 수 있도록 했다.

나라가 위기에 내몰리게 되는 것은 적대국의 침략행위 등 외환(外患)에 의한 것이 물론 중요하겠지만 국내적 갈등과 반목에 따른 내우(內優)가 그 못지않음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작금의 나라 안팎 사정 또한 위기를 입에 담을 만큼 어려운 정국임에 틀림없다. 나라정치판은 정권의 잘잘못을 심판받고 책임질 여당 모습마저 사라진 지 벌써다. 다음 정권을 맡겠다고 나선 한나라당 실체에까지 오히려 국민이 그들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이다.

국가경제상황은 원화절상으로 세계 속 ‘수출한국’ 이미지가 날개도 없이 추락하는 몰골이다. 일본은 제2의 경제부흥을 꾀해 자동차 생산 대수에서 세계1위로 올라섰다. 중국도 ‘타도한국’을 내세워 한국과의 기술격차를 빠른 속도로 좁히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 수출 양대 산맥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세계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얼마 전 삼성 이건희 회장의 “이대로 5년이면 한국은 심각한 경제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는 경고가 빗나가지 않을 전망이다.

갖가지로 찢어지고 갈라진 사회 갈등양상은 대선을 앞두고 더욱 팽창일로로 치달을 공산이다. 이렇게 나라 전반이 다 위기를 맞고 있다. 국가 위기는 총체적 난국을 의미하는 것이다. 꼭 전쟁조짐이 나타나야 비상시국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을 위시한 정치권은 오직 12월 대통령 선거에만 몰입해있는 현실이다.

경제 흐름이나 사회불안요소, 국민 갈등현상에 대해서는 구두선적 표현 말고는 걱정하는 빛조차 사라졌다. 도무지 국가위기 극복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걸출한 정치지도자의 출현도 더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선 예비후보로 나타나 있거나 거론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경쟁자를 의식한 말장난에만 여념 없는 한국 정치의 현주소다.

이들이 만약 오늘 같은 국가 현상을 진정한 난국으로 인식하고 이순신 장군처럼 난국타개를 고민하는 「신(新) 난중일기」를 쓰고 있었다고 치면 나라안 사정은 아주 달라졌을 것이란 생각이 갑자기 든다. 일기를 쓰는 의미는 그날 종일 동안의 반성과 내일의 계획, 훗날의 교훈을 갖기 위함이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우리국민을 위한다는 정치권 인사들, 더욱이 연말 대선정국에 관심 높은 이들에게 ‘신 난중일기’ 쓰기를 충심으로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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