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호가 마침 일요서울 지령 700호를 기념한다는 데서 의미가 자못 다르다. 이 추석호가 독자께 배포되는 시점이면 우리국민 모두는 유난히 긴 올 추석연휴를 시작하는 무렵일 것이다.

추석절 당일엔 조상님께 제사를 올린 전국 각 가정들이 모처럼 모인 가족과 ‘음복’을 즐기며 민심 속내를 더욱 환하게 드러낼 것이다. 음복은 제사를 지내고난 뒤 제사에 쓴 음식을 나누어 먹는 행위로, 특히 퇴주한 뒤의 술 한 잔씩 나누는 의미가 크다. 이런 우리의 공음(共飮)문화는 벌써 신라시대 때로 거슬러지는 것이다. 신라시대에는 군신일체(君臣一體)를 다지는 의식으로 ‘포석정’에 나가 한잔 술을 띄워 돌려가며 공음하는 한마음 다지기를 가졌다.

고려를 거치고 조선시대를 겪은 근세까지도 각 관아에서는 한 말들이 큰 술잔에 술을 담아 상하 구별 않고 돌려 마시는 동심례가 베풀어 졌었다. 또 마을의 약속인 향약집회 때도 향음례라 일컫는 공음절차가 있었다. 이밖의 법도 있는 집안에서는 손님이 왔을 때 한솥밥을 내느냐 딴 솥밥을 내느냐의 한계가 정해져 있었다. 이때 친계로 8촌, 외계로 4촌, 처계로 2촌(처의 부모형제)까지 한솥밥을 먹는게 상식이었다.

일체감을 다지는 공음문화는 살아있는 사람의 사이뿐 아니라 신명이나 죽고 없는 조상과의 사이에도 이루어진 것이 바로 제사 뒤의 음복절차다. 동제(洞神祭)나 기제(忌祭)나 차례를 지내고 나서 제상에 올랐던 제수와 제주를 나누어 먹는 이 음복절차를 신인(神人) 조손(祖孫)을 잇는 결속 수단으로 한 것이다.

오늘 우리나라 최대 명절인 추석연휴를 시작한다. 예외 없는 민족대이동이 일어나고, 가족단위의 차례를 지낸 뒤는 어김없는 음복절차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처럼 조상과 후세를 잇는 음복술을 나누면서 우리는 올해도 큰 탈 없이 지낸 것을 조상님께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음덕 있기를 마음속깊이 빌어마지않을 것 같다.

올해 추석은 더욱이 우리민족의 운명을 가를 대통령 선거가 채 3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에 들었다. 정치권 전체가 추석민심 흐름에 온통 사활을 걸고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쫓는 쪽이나 쫓기는 쪽 할 것 없이 올 추석 밥상에 자신들 운명이 달렸다는 긴장감이 더할 것이다.

그러나 민심이란 항시 백성들 마음속에 자리한 것이다. 때문에 누가 만들고 조작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째 기를 쓰고 왜곡 해봐도 민심은 곧 백성들 가슴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마음은 진실할 때 통(通)하는 것이다. 거짓과 위선으로 얻은 마음, 남을 핍박하고 궁지로 몰아서 얻은 반사적 이익이 결코 오래갈 수 없음은 민심과 천심이 맞닿는다는 이치와 같다. 한나라당 예비 대선주자 3등 한계를 벗지 못해 말을 바꿔 타고 넘어가 범여권 1등 예비후보의 대세를 이루는 듯 했던 사람이 어느새 그곳에서 마저 자칫 3등 할 위기에 놓여버렸다. 이 또한 누구를 탓 하겠는가?

마음에 통(通)하는 이치를 깨닫지 못하면 정치권의 이런 비극은 언제나 또 일어나게 될 것이다. 무릇 조상을 향해 음복하는 마음처럼 국민을 섬기면 민심은
그를 향할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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