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한나라당의 대선후보 경선이 끝나고 박 전대표가 칩거에 들어 가고나자 국민은 다시 신경을 곤두세워 확정된 이명박 차기 한나라당 대통령후보와 그 캠프사람들을 주목하기에 이르렀다. 경선과정이 한나라당의 앞날을 예측 못할 정도로 치열하
다 못해 다 깨지고 다 터지는 듯했던 만큼 새로 힘을 거머쥔 쪽의 독주를 걱정하는 국민관심이 대단했다.
걱정했던 일은 바로 현실로 다가섰다. 이른바 ‘박 캠프 사람들’이 현저하게 소외당하는 현상이 객관적으로 드러남에 따라 당내화합은 누가 봐도 쉽지 않은 상황이 돼버렸다. 박근혜 정치가 계보정치를 하지 않은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이다. 그런 것이 지난 경선을 통해서 ‘박근혜 사람들’이 생겨난 바다. 경선 후 곧바로 캠프는 해체됐지만 그 사람들은 여전히 그대로 뭉쳐있다.
박 전대표가 ‘계보’같은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게 한다는 말은 틀린 얘기가 아닐 것이다. 만약 그 사람들을 엮어둘 생각이면 어떤 ‘틀’을 짜거나 관리할 ‘대리인’을 둬야 하는 것이다. 또 이명박 후보에게 당내 지분을 당당히 요구해야 함이 원칙이다. 그런데 전혀 그런 따위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사람들은 흩어 질 마음이 아예 없는 눈치다. 이런 정도면 박근혜 전대표가 끝까지 무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일 것이다.
크게 표 안 나게 이들과의 관심권을 유지하면서 정을 나누는 것이 도리이고 또한 순리일 것이다. 계보정치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뜻이 같은 사람들끼리 옳은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마저 꺾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걸 계보정치라고 할 테면 그런 계보정치는 국민이 쌍수를 들어 환영 할만한 일이다.
박 전대표가 최근 당의 운영 상황을 우려하며 “당헌 당규대로 당이 가지 않는다”는 표현을 했다고 한다. 또 “당내 민주주의를 무시하면 안 된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침묵하고 있던 그가 화합차원이 무시당하며 이명박 후보 측 의사에 의해 거의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당내 인사문제를 더 두고 볼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박 전대표는 공개적으로는 불만을 표시하기가 매우 어려운 처지다. 자칫 이명박 후보의 발목을 잡고 시비 거는 형국일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거꾸로 박 전대표의 발목을 붙들고 늘어지는, ‘박근혜의 딜레마’인 것이다. 할 말, 또 하고 싶은 말들을 가슴에 묻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이 같은 박근혜의 궁지가 흩어지지 않는 ‘박근혜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후벼 파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깨끗한 승복’의 부담감이 이룬 결과다.
이쯤에서 정치 대의(大義)에 관한 강한 의문이 제기된다. ‘깨끗한 승복’이 허용하는 활동공간이 좁다고 해서 정치인의 열정이 사그라지면 국민은 그 만큼 희망을 잃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