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삶에 있어 세월 이길 장사는 없다고 했는가. 한 달 이상 폐렴 증세로 입원치료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18일 한낮에 끝내 노환을 이기지 못하고 서거했다. 80을 훨씬 넘긴 고령을 의식 않고 끝까지 현실정치의 큰 끈을 놓지 않은 그분의 포효가 귓가에 쟁쟁하다. 아직까지 어디선가 그이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애석한 마음이 큰 만큼 애도하는 마음 한량없이 깊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한 ‘일요서울’ 임직원들의 회한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본지는 지난해 4월 미국 망명중인 전 국정원 간부 김기삼씨와 전화 인터뷰를 가졌었다. 이때 그는 국가 안보에 중대한 위기가 초래되고 있는데도 한국 언론이 진실을 바로 보도하지 않는다는 불만을 말했다. 또 자신의 미국 망명 허용은 DJ비리 폭로로 인해 정치적으로 탄압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미 망명심사국의 판단이 작용해서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DJ비자금이 1조원정도 될 것이라는 추산을 밝혔다. 이는 추정일 뿐 정확히 어디에 얼마나 숨겨져 있는지는 알 수 없다며 이를 국가차원에서 조사해도 밝혀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설령 밝혀낸다 하더라도 너무 많은 사람과 기관들이 얽혀있어 공개되긴 힘들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자신은 국내에서 본격적인 조사가 이뤄지면 귀국해서 의혹들을 규명할 것이라는 답을 피하지 않았다.

김기삼씨는 자신이 제기한 의혹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DJ의 노벨상 수상 공작인데, 이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대북 불법송금 등 모든 반역행위가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이 때문에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은 명백한 간첩행위를 한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 보도 후 DJ와 임 전장관측이 각각 1억 원을 요구하는 ‘일요서울’에 대한 명예훼손 위자료 청구 소송이 제기됐다.

이런 사실이 전해지자 DJ측의 조치에 대한 논란이 거셌다, “언론의 입을 막기 위한 전형적인 표적 소송”이라며 “이 기회에 DJ정부의 모든 의혹들을 밝혀야 한다”는 목청이 높았고, 또 다른 쪽은 “정확히 확인 안 된 내용들을 보도하는 무책임한 언론에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고 맞섰다. 표적소송 의혹이 제기된 데는 ‘일요서울’이 김기삼씨 인터뷰 기사를 보도한 직후 다른 보수언론들이 거의 같은 내용의 기사를 보도 했는데도 유독 ‘일요서울’만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이에 분개한 김기삼씨는 무려 30회에 걸쳐 본지에 육필원고를 보내 ‘김대중 국민의 정부’ 비리를 폭로하기에 이르렀다. 주1회씩 30회면 일곱 달을 계속 연재한 셈이 된다. 이는 재판 진행 사안과는 별개로 취급됐다. 재판과정에서의 우리 쪽 주장은 아주 명료했다. 김기삼씨 폭로는 개인 아닌 대통령 직속기구의 대통령 임명 간부가 부당한 업무수행을 해온 사실을 양심 선언했다는 관점에서 기사를 다뤘다는 일관된 주장을 폈다.

긴 소송공방은 법원의 중재안을 양쪽이 받아들이는 선에서 끝이 났다. ‘일요서울’ 정치면에 유감 표명과 함께 반론 보도문을 싣는 조건이었다. 꼭 다섯 달 전인 2009년 3월 23일의 일이었다.

영면하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언론과의 마지막 화해였다. DJ로 불린 김 전 대통령의 서거가 ‘일요서울’ 가족들을 더욱 애석케 하는 대목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