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이후 국장-국민장의 모호한 법 기준을 명확히 하기 위한 관련법 개정을 추진 한다고 한다. 비록 김 전 대통령의 국장이 계기가 됐겠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에 관한 문제는 어떤 법리적 해석이나 이념적 판단을 떠나서 우리 국민 고유의 정서와 직결시켜서 생각할 문제였다.

호남인들의 오랜 한(恨)은 ‘우리 선생님’이란 우상을 만들어 냈고 무조건 그분 ‘선생님’을 추종했다. 1997년 그의 대통령 당선은 수십 년 묵힌 호남의 한을 원 없이 푼 효과였다. 이제 그를 국장(國葬)으로 보내면서 더는 호남 푸대접 론을 말할 수 없게 됐다. 개인적으로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과 노벨상에 이르는 어느 누구도 못해 본 인생 목표를 이뤘을 뿐 아니라 한쪽 다리가 불편한 것 말고는 평생 동안 건강을 지키고 장수한 편이다.

또한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은 대통령 되기 이전이나, 대통령 되고 나서나, 대통령 퇴임 후에나,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그럴 수 있는 자명한 이유는 국민 사분지일정도가 언제나 그를 지지하고 힘이 돼줬기 때문이다. 이번 전례 없는 전직 대통령의 국장 결정 역시 정부가 민주당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김 전 대통령을 적극 지지하는 국민 기반을 존중한 정부 측 배려였다.

이는 서거한 김 전 대통령에 의해 독재자로 비난받은 이명박 대통령이 그의 지지자들을 위해 결단을 한 형국이다.

한국정치는 해방 후의 오늘에 이르도록 민주세력 대 반민주세력의 대결, 동서지역 갈등, 보수 세력과 진보세력의 갈등으로 점철돼 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 대변 해왔던 민주화 투쟁세력, 진보세력, 호남민들, 이들은 수십 년간을 핍박받는 대명사였다. 그러므로 ‘김대중’ 그 이름 석 자는 투쟁과 저항의 상정처럼 됐었다. 그의 고단했던 정치역정을 웅변하는 대목이다.

갈등의 한 축을 맡은 그를 따르는 세력이 운집하면 그를 반대하는 세력들 또한 결집을 시도했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호남의 한이 풀려서 ‘동서화합’의 물꼬가 트일 것이라던 주장은 헛말에 지나지 않았다. 대통령 재임 기간 중 가장 아쉬운 점이 지역주의의 담을 허물지 못한 점이라는 그의 한 서린 고백을 기억한다.

훗날 우리 역사가 그를 어떤 대통령으로 남길 것인지는 순전히 후세 사가들의 몫이다. 민주주의와 민족화해에 대한 그의 신념을 기릴 것인지, 그의 얼룩진 흠결을 기억할 것인지, 지금으로선 아무도 장담치 못한다. 다만 오랜만에 모든 정파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를 애도하는 가운데 특별히 김영삼 전 대통령의 화해 선언이 나왔다. 상도동과 동교동 인사들 간 ‘화합의 만찬’ 자리가 곧 있을 전망이다.

40년 애증의 굴곡을 넘나든 김영삼 전 대통령의 감회는 매우 유별난 것이다. 그런 만큼 그의 남은 인생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남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가 어떻던, 우리 역사에 드리운 그이의 무게는 실로 대단한 것이다. 두 사람 서로에 있어 이를 인정 안할 수 없다. 그러면 먼저 떠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못내 아쉬워했던 지역주의의 담을 김영삼 전 대통령이 허물어 버리는 절체절명의 노력을 해야 한다.

‘동서화합’의 물꼬를 트는 YS의 장한 정신을 역사는 가감 없이 기릴 것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