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의 대한민국 대선 정국의 판세는 큰 이변 없는 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압승을 거의 의심치 않는 상황이었다. 드러난 도덕성 문제로 노무현에게 질려버린 민심을 되돌려 놓기에는 국민경제가 너무 바닥이었다.

한나라당 후보에게 비록 어떤 흠결이 발견 되더라도 그걸 문제 삼을 여지가 없을 정도로 좌파정권 10년은 ‘잃어버린 10년’으로 국민정서에 각인됐었다. 그 바람에 선거 후 이명박 정권의 거침없는 독주를 미리 우려하는 여론이 있었다. 이회창 총재가 출마한 자유선진당의 선전을 기대하는 여론이 상당하게 나타났던 게 그런 연유에서였다.

우선 대구에 주소지를 둔 필자부터가 선거날인 19일 아침 바쁘게 대구에 내려가 ‘이회창 후보에게 한 표를’ 주변에 독려 했던 바다. 한나라당 독선을 견제키 위한 힘깨나 쓸 보수 신 야권 정당의 존립을 바라서였다. 선거 결과는 득표율을 가까스로 15%대에 맞춘 이회창 총재가 최소한 법적 선거비용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는 선이었다. 선거 빚쟁이로 전락하는 망신스러움을 면했으니 두 번씩이나 제1당 후보로 대통령에 나섰던 체면 유지가 겨우 된 셈이었다.

그 후 작년 4.29총선에서는 심대평 대표와 힘을 합친 자유선진당의 분전이 있었지만 충청권 밖에서는 단 한 개 의석도 얻지 못한 채 전국구 배분을 합해 18석에 그치고 말았다. 원내교섭 단체 구성에 실패한 이회창 총재가 문국현 대표의 창조한국당과 머릿수를 합해 교섭단체 등록을 하는 데는 그저 놀랍기만 했다. 너무 이회창답지가 않았다.

어쩌면 이때부터 국민은 이회창에게 더 기대할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지 모른다. 이번 청와대의 국무총리직 제의 건으로 갈등을 폭발시키고 탈당한 ‘심대평 사태’도 누가 옳고 그르고의 일이 아니다. 비교적 과묵하고 잘 참는 사람으로 알려진 심대평 대표가 작심하고 이회창 총재를 비난한 대목 가운데는 청와대와 자신의 총리기용 조건을 흥정하다가 잘 안 되니까 ‘공작정치’로 몰았다는 주장이 있다.

함께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있는 문국현 대표는 이 총재가 심대평 총리 외에 선진당 의원 일부의 입각을 청와대 측에 바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충청권에서 내년 지방선거를 성공 시킬 수 있는 ‘이회창 구상’이었을 수 있다. 다만 심각한 점은 충청권 맹주의 두 축이었던 심 대표가 “설득이 통하지 않는 아집과 독선적 당 운영을 하는 이회창 총재와 당을 같이 할 수 없다”며 탈당을 선언 했다는 사실이다.

심 대표는 지역기반인 충청권에서 조차 4.6%의 지지율에 불과한 것은 자유선진당이 국가 발전과 지역 이익을 대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이 총재를 비판했다. 심 대표는 벌써 자신이 이끌던 국민중심당계가 소외되면서부터 이 총재와의 불편한 심기를 가졌을 만하다. 그동안 이회창 1인 주도 형식의 정당 운영 방식에 대해 비판하는 말들이 많았다.

귀족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서민에게 다가가는 인상을 주기위해 점퍼 차림으로 전국 재래시장을 누비던 대선 때의 이회창 후보 모습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지워져 버렸다. 그런 편협한 리더십 가지고는 그가 내세운 지역주의에서 벗어난 국민과 국가를 위한 화합정치가 될 리 없다. 국민 실망이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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