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국회 청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상황이 빚어졌을 때 청와대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후보자 내정 철회를 발표하면서 이동관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이 주창하는 중도실용 친 서민 행보의 핵심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며 “우리사회 고위공직자는 모든 면에서 모범을 보여야한다”고 했다.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는 제16대 국회였던 2000년 당시 도입돼 그간 숱한 곡절을 쌓았다. 청와대가 내정한 인물에 대해 야당의 공격하는 창끝과 이를 진땀 흘리며 막는 여당의 방패가 서로 불꽃을 튀길 때는 제도의 효율을 실감할만했다. 그러나 이 창과 방패의 한판승부가 여야의원들의 머릿수로 판가름 되는 데는 실효적 가치를 찾기 힘들었다.

지난 한주의 인사청문회 역시 창과 방패의 찌르고 막는 역할이 그대로 답습됐다.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여당내의 자책하는 소리가 꽤 컸다는 사실이다. 시중에는 이명박 정부 들어 고위공직자의 위장전입 사례가 줄을 잇는 까닭을 놓고 말들이 많다. 그럴만한 것이 정운찬 총리 후보자를 비롯해 임태희 노동부, 이귀남 법무장관 후보자의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나고 민일영 대법관 후보자의 위장전입이 확인됐다.

얼마 전에는 김준규 검찰총장이 위장전입 의혹을 인정했었다. 이런 사정에도 여당 원내대표는 별일 아니라고 한다. 위장전입 정도는 결격사유가 못 된다는 이 정권의 시각을 총체로 대변한 것 아닌가 싶다. 이는 김준규 검찰총장이 밝힌 일화에서 증명된다. 김 총장은 “청와대 인사검증 과정에서 이런 잘못을 밝혔다”고 고백했었다. 다른 때도 아닌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낙마한 직후였고 인사검증 책임자였던 정동기 민정수석이 문책성 사표까지 낸 시점이었다.

이같이 인사검증에 만전을 기해야 할 때에 권력 심장부는 위장전입에 대해서는 ‘보통사람이 갖는 작은 결점’정도로 치부한 것이다. 이 부분에 아주 관대한 이유가 혹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당시 자녀들의 초등학교 입학 때문에 위장전입 사실을 인정했던 것과 연관 있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현 정권의 도덕적 기준이 지나치게 추락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지난 정부 들어서 이헌재 경제부총리, 최영도 국가인권위원장, 김명곤 문화부장관 등이 가족의 위장전입 의혹 끝에 줄줄이 낙마했던 일을 기억한다. 논문 표절로 철퇴를 맞은 일은 더 말 할 나위없다. 그런 것이 현 정부 들어 이들 잣대들이 거의 눈감는 수준이 돼버린 느낌이다. 현 정부 인사들이 청문회장에서 ‘위장전입’ 의혹에는 별 죄의식 없이 단박에 시인하는 정도다.

지금 책임 있는 자리에 앉고 싶은 사람들의 법 인식이 이렇다면 누가 법치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법이 유명무실하거나 힘 가진 자들이 등한시하는데 그 법은 굳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국회 인사청문회 역사 10년 되는 동안 귀에 박힌 법률 용어가 부지기수다. 논문표절, 중복게재, 같은 논문을 영문논문으로 번역게재, 제자논문 훔쳐 쓰기, 위장전입, 증여 및 상속세 포탈, 소득세 이중 공제, 국민연금 미납, 편법 토지매입, 차명 부동산 투기, 군복무 때 학위취득, 재산 축소신고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런 것들이 국가 책임 있는 자리에 가겠다는 사람들이 저지른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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