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28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은 본전도 못 찾았다. 원래 재보궐 선거지역 세 곳이 한나라당의원이 있던 곳인데 두 곳만 이겼으니 본전을 까먹었다는 얘기다. 그런 한나라당이 선거 끝나자마자 심한 내홍에 휩싸였다.

보기에 따라서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차기 대권주자에 드는 정운찬 총리를 향해 크게 한방 날린 것도 같다. 세종시 문제를 둘러싸고 터져 나온 이 불협화음은 일촉즉발의 긴장감 속에 잠재 해있던 여권 내 친이계와 친박계의 날선 대립이 드디어 표면화 되는 신호탄이 됐다. 친이, 친박계와 야당이 서로 물고 물리는 삼각 갈등이 증폭되면서 박근혜 전 대표는 이에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었다는 태세다.

박 전 대표의 이 강경한 움직임은 2007년 8월 대선후보 경선 합동 연설회 때 “군대라도 동원해 막고 싶다는 분이 있었는데 세종시법에 대표직과 정치생명을 걸었다”고 말한 대목과 일치된다. 그는 또 12월 이명박 대선후보 지원유세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세종시가 제대로 될 수 있을까 걱정하는 분이 많은데 이번 대선을 계기로 여러분의 염원이 반드시 이뤄질 것”라고 약속한바 있다.

이런 관점에서 세종시 문제는 단순히 총리와 박근혜 전 대표간의 날 세운 설전으로 폄하하지 못한다. 친이계의 ‘여당 속 야당’ 공격도 사리에 안 맞다. 그런 터에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등 야당들이 강하게 세종시 수정안 추진을 반대하는 정국 소용돌이가 계속 되고 있다. 그래도 이명박 대통령은 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이 문제의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다만 정몽준 대표와의 2일 조찬회동에서 “세종시 문제는 충분히 숙고해서 하는 게 좋으니까 당에서 잘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을 뿐이다. 한나라당 박 전 대표와 정 총리가 정면충돌한 뒤의 대통령 언급치고는 너무 원론적이었다.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은 청와대가 뒤로 숨는 것이 아니라 정부방안이 마련되면 대통령이 적절한 시기에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가 말하는 적절한 시기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국민들 생각은 중대한 문제일수록 대통령의 빠른 결단이 필요하고 직접 나서서 소신을 밝힘이 옳다는 쪽에 틀림없다. 신임 총리는 내년 1월까지를 시한으로 세종시 수정 추진 입장을 거듭 확인하고 있고 친이계 일부에서는 국민 투표까지 주장하는 판에 국민은 대통령 입만 쳐다보고 있다. 이시기에 분명한 대통령 입장이 없을 수 없겠는데 이 대통령은 의도적인 침묵만을 한다.

대통령은 ‘관객’을 자처하며 여야가 합의해 행복도시 특별법을 만들고 헌법재판소의 합헌보증까지 받은 세종시를 수정토록 유도하고 있다. 기존계획대로면 세종시는 자족적 도시가 불가능하므로 수정과 보완이 꼭 필요하다는 대통령 생각이 어떻게 작용할지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세종시 추진 문제로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전면에서 대립케 되면 여권 내부 갈등은 정권의 위기로 발전할 수 있다. 이명박 정권이 조기레임덕에 빠질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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