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들어 최근 몇 년 사이 우리사회에는 아주 돌연한 사건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뜻하지 않게 돈 많은 부자나 명망 있는 인사들의 자살사건이 줄을 잇는다.

2003년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사옥 12층 집무실에서 투신자살 했고, 이듬해 2004년엔 남상국 당시 대우건설 사장이 한남대교 위에서 투신했으며, 또 그 이듬해에는 이윤형 삼성그룹 회장 딸이 맨하튼의 자신 아파트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작년 이맘때는 최성국 세빛에세 회장이 서울 청담동 한 호텔에서 목을 맸다. 불과 한 보름여 전에는 두산그룹 박용오 회장이 자택에서 역시 목을 매고 자살했다. 그 외 유명 탤런트의 충격적인 자살사건이 일어나서 모방 자살이 유행병 일어나듯 했었다.

이처럼 대한민국에서 더 부러울 게 없어 보인 유명한 부자들이나 인기 있는 탤런트가 쓸쓸히 죽음을 향하는 이유가 뭘까? 보통의 서민들이 이해하기가 도무지 어렵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유만을 가지고 그들이 자살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아 고 정몽헌 회장 죽음에 대해서는 근래까지도 타살의혹이 제기된바 있다.

그러나 이들 자살 이유에 대해 한 가지 공히 유추되는 문제는 정점에 올라있는 그들이 행복보다는 외로움을 더 느낀 것 같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영상의 문제나 재산 분쟁 및 명예에 큰 타격을 입었을 때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우울증에 시달렸을 것이다. 자신이 서있는 위치가 높을수록 추락하는 아픔 또한 클 테니 말이다.

권력은 부자(父子)지간에도 나눌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권력의 의미는 극단적이다. 부(富)의 의미는 ‘큰 집에는 큰 걱정이 있기 마련이고 작은 집에는 작은 걱정거리가 있다’는 말로 대변된다. 이는 권력과 부는 정점에 이를수록 그를 유지함은 물론 더 높은 성취를 향한 압박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사회 지도층은 일반인에 비해서 우울증 발생이 다섯 배나 높고 지난날의 경력이 화려할수록 이런 위험이 크다는 분석이 있다. 얼마 전 모 일간신문 보도대로 성공한 사람이 우울증?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지만 리더들은 무기력증을 견디지 못한다는데 그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반인들은 위기일 때 이것저것 해보고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으면 거의 체념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성공한 지도층은 자신의 역량을 의심받기 싫어 체념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지도층 인사들은 대부분 좋은 학교를 나오고 많은 것을 가져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닥치면 그냥 좌절해버리기 쉽다. 그러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불교 등 종교에서는 이러한 자살의 행위는 타인으로 둔갑한 자신이 자신을 죽이는 ‘살인’이라고 말한다. 과연 죽을 사(死)자와 죽일 살(殺)자는 분명하게 다른 것이다. 사(死)는 죽을 ‘사’ 즉 자연사를 말하는 것이고 살(殺)은 타인에 의한 죽임을 뜻한다. 그러면 우리사회 부자 및 지도층 인사들의 충동적 자살행위는 중한 살인의 범죄에 해당되는 것이다.

정서가 메마르고 모든 인간관계가 물질 위주로 형성되는 우리사회에서 어려움에 부닥친 가진 자들의 자살 범죄는 언제나 발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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