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년간 몇몇 재벌그룹 회장들의 비극적인 자살을 접하면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의미를 되새긴다. 가난해도 편안한 마음으로 즐겁게 도(道)를 즐긴다는 말이다.

이미 보도됐던바와 같이 두산그룹 회장을 지낸 박용오 성지건설 회장이 서울 자택에서 11월 4일 목매 자살하였다. 그 보다 6년전인 2003년 8월 4일엔 현대아산의 정몽헌 회장이 서울 현대 본사 사옥 12층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슴울 끊었다. 또 1987년 4월 19일엔 국내 최대 해운사의 박건석 회장도 서울 두산빌딩 10층에서 투신 자살하였다. 그들의 자살은 안빈낙도의 참뜻을 터득하지 못한데 연유한다.

대체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중에는 찌든 가난과 생활고를 비관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세 재벌총수들은 부자인데도 자살을 택했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과욕 이다.

박용오씨는 1996년 두산그룹 회장직을 맡아 맥주회사로 머물던 기업을 10년만에 중공업·건설·종합기계 등 한국 굴지의 재벌그룹으로 끌어올렸다. 그는 매우 활달한 성격으로 70대 나이에도 스키 실력이 뛰어났고 한겨울이면 용평 스키장을 자주 찾았다. 겸손하고 소탈해 그룹회장 시절, 해외로 친지들과 스키를 가면 손수 밥도 짓고 설거지도 도맡았다고 한다. 박 회장은 형제들이 2005년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동생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을 그룹회장으로 승격시키자 반발했다. 차남이 벤쳐사업과 신규사업에 투자했다가 실패하자 손실을 메꿔주기 위해 두산 그룹에서 건설부문을 떼내려 하였으나 그것도 거부당했다. 여기에 그는 동생 박용성 회장의 비자금 비리를 검찰에 투서하였다. ‘형제의 난’을 일으킨 것이다. 동생인 박용성은 물론 자신도 징역3년 집행유예 5년에 벌금 80억원의 판결을 받았다.

박용오 회장은 4년전 그룹회장에서 물러났을 때 젊어서부터 즐기던 스키 스포츠로 자족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형제의 난’을 일으켰고 성지건설 지분 24%를 인수해 경영에 복귀했다가 큰 손실을 봤다. 작년에는 차남이 주가조작과 횡령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결국 그는 ‘형제의 난’과 차남의 구속 그리고 사업 재기 실패를 비관, 자결을 결심한 것 같다. 재부에 대한 과욕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5년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경우도 과욕 때문이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을 위해 현금 4억5000만달러와 물품 5000만달러 어치를 불법으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건네는 하수인으로 나섰다. 그는 그 후 비자금 150억원의 정치권 유입 혐의로 조사를 받게되면서 대북 불법송금 마저 탄로날 것을 걱정했다. 그는 처벌의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것 같다. 그는 대통령의 편의를 봐주고 뭔가 더 큰 대가를 기대했던 것으로 추측키 어렵지 않다. 이 또한 과욕이 자초한 불행이었다. 1987년 목숨을 끊은 박건석 범양상선그룹 회장의 비극도 과욕과 무관치 않다. 잘 나가던 그는 1984년 경영부실로 허덕이던 7개 선사(船社)들을 합병하면서 부채를 떠안고 어려움에 빠졌다. 경영악화는 내분을 불러일으켰고 전문 경영진에 의한 퇴진 요구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는 내부의 외화도피 고발로 당국의 조사까지 받아야 했다. 부채는 1조원에 달하게 되었다. 박 회장은 부하들의 배신과 부채를 견디지 못하고 10층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도 7개의 부실 선박회사를 떠맡은 과욕에 기인하였다. 동양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논밭은 잡초가 망치고 사람은 과욕이 망친다.” 세 재벌 회장들을 망친 것은 ‘과욕’이었다. 안빈낙도란 말이 새삼 소중해 보인다. 그들도 안빈낙도의 멋을 일찍이 터득했더라면 과욕으로 생을 불행하게 마감하지 않았으리라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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