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사드보복 - 美,화웨이 폭탄- 日,반도체 규제…시름 깊어지는 국내 기업들

일본정부가 반도체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소재의 한국 수출규제를 발표한 가운데 7월 1일 오후 수출상황 점검회의가 열린 서울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 대회의실에서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일본정부가 반도체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소재의 한국 수출규제를 발표한 가운데 7월 1일 오후 수출상황 점검회의가 열린 서울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 대회의실에서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국내 기업들의 곡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꼬인 실타래가 풀릴만 하면 새로운 꼬임현상이 벌어지면서 기업경영 악화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 국내 경제는 미중 무역전쟁 후폭풍으로 홍역을 치르다 휴전상태에 들어선 모습이다. 하지만 또다시 일본의 경제제재 방침이 알려지면서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졌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계속된 해외 악재와 관련해 국내 정치권과 정부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이를 해결할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속수무책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사태에 대한 돌파구는 있는지, 있다면 그 효력은 언제쯤 발생하는지에 대한 의문만 커지고 있다.
 

 국내 경제 위협...관세·송금 규제 등 압박 예고
 재계 속수무책…정부 대책 얘기 없어 ‘속병’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두산 인프라코어 회장)이 최근 일본의 경제 압박과 관련해 국내 정치권과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박 회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 북을 통해 “일본은 치밀하게 정부 부처 간 공동작업까지 해가면서 선택한 작전으로 보복을 해오는데 우리는 서로 비난하기 바쁘다”며 G20 정상 회의 후 일본이 통상 보복에 나선 상황에 대한 대응이 적절치 못한 상황을 지적했다.

앞서 G20 정상 회의 후 문재인 대통령과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외교 불협화음이 부각된 가운데 일본은 반도체 소재 관련 수출 규제를 공식화했다. 이 때문에 야당인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정부가 대일 외교에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는 비난이 이어졌다.

일본의 이번 조치는 지난 5월 결정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그간 다양한 대항조치를 검토해 5월 최종안이 거의 굳어졌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한국 측에 타격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았다고 한다.
그 결과 일본은 지난 3일부터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을 겨냥한 경제제재를 발동했다. 이에 따라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앞으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고순도 불화수소(에칭 가스), 레지스트 등 3개 품목을 수입할 때마다 경제산업성의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규제 확대될까 ‘긴장’

이번 규제 조치로 한국 수출액의 20% 가까이를 차지하는 반도체 제조업 등은 심각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정부는 보복 조치의 이유로 ‘신뢰 관계 훼손’을 거듭 거론한다. 한국 정부로부터 만족할 만한 ‘신뢰 회복’ 조치가 있기 전까지는 보복 조치를 계속할 수 있다고 을러대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의 ‘다음 수’는 한 달 뒤에 가시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미 일본이 한국 측 주력산업인 통신기기나 첨단소재 등으로 수출 규제 조치를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기업 주재원이나 유학생 등의 출입국 심사를 엄격하게 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이밖에도 실리콘 웨이퍼와 이미지 센서, 스마트폰 카메라 부품 원료 등이 다음 수출 규제 품목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반도체 기초 재료인 실리콘 웨이퍼 시장은 일본 업체가 전 세계의 53%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철강과 화학업계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산 열연강판은 국산 자급이 가능하지만 자동차나 기계류 등 부품용으로 쓰이는 일부 특수강 제품은 충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화학업계는 IT 소재 분야의 재료 일부분이 영향권에 놓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 중이다.

한국 경제 빨간불 계속

문제는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외국 사례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국내 경제는 중국의 고고도미사일(사드) 보복으로 인해 위협을 느껴야했으며 최근까지는 중화기업 ‘화웨이’ 공습에 몸을 움츠려야 했다.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의 노골적인 규제 및 방해로 국내 대기업들은 물론 중소기업까지 피해가 심각 수준에 이르기까지 했다. 특히 여행업계는 중국 악재로 인해 문 닫는 업체들이 늘어났으며 면세업계 역시 불황 등으로 허가 취소의 쓴 맛을 본 업체들도 있다. 여전히 줄도산 위기에 놓인 기업들도 있다.

마찬가지로 화웨이발 공습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화웨이와 협력하는 업체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를 예고한 미국의 행보에 국내 기업들이 바짝 긴장했었다. 특히 화웨이와 5G통신망 사업을 진행했던 LG유플러스의 간담을 쫄아들게 했다는 후문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 정부는 "우리 경제는 성공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하반기엔 나아질 것"이라는 말만 되뇌고 있다.

홍 장관은 4일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품 규제 조치에 대해 “명백한 경제 보복”이라고 비판하고, 일본이 이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상응한 조치를 반드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홍 부총리는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본은) 신뢰가 깨졌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강제징용에 대한 (한국의) 사법 판단에 대해 경제 분야에서 한 보복한 조치라고 명백히 판단한다”라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관련해선 “해결이 안 되면 당연히 WTO 판단을 구해야 하기 때문에 내부 검토 절차가 진행 중이며, 실무 검토가 끝나는 대로 (제소) 시기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보복 조치는 국제법에 위반되는 조치이기에 철회돼야 한다”며 “만약 (수출 규제가) 시행된다면 한국 경제뿐 아니라 일본에도 공히 피해가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박 회장은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페이스 북을 통해 “중국, 미국 모두 보호무역주의로 기울어지며 제조업 제품의 수출이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우리는 여유도 없으면서 하나씩 터질 때마다 대책을 세운다”며 국제 제조업 시장에 대한 대응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내 산업 관련 규제와 입법부 “개점휴업” 상태도 문제 삼았다. 그는 “의료, 교육, 모든 큰 서비스 산업기회는 닫혀있고 열자는 말만 꺼내도 전원이 달려들어 역적 취급을 한다”며, “가끔 도움이 되는 법도 만들어지더니 그나마 올해는 상반기 내내 개점휴업으로 지나갔다”고 지적했다. 패스트트랙 처리 과정에서 자유한국당의 보이콧으로 국회가 50일 넘게 파행을 빚은 것을 언급한 발언이다.

박 회장은 “이제 제발 정치가 경제를 좀 붙들어줄 것은 붙들고 놓아줄 것은 놓아주어야 할 때 아니냐”고 물으며 글을 맺었다.

일각에서는 이번 일본의 경제 제재는 자국에도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지난 4일 마이니치신문이 사설을 통해 "외교 문제와 전혀 관련이 없는 무역 조치를 정치 도구화 했다"고 비판했다.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조치 발표 이후 사흘 연속 일본 언론들은 비판 사설을 게재하고 있다.

마이니치는 이날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는 국가의 이익을 해친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일본이 중시해온 자유무역의 원칙을 왜곡하는 것"이라면서 이같이 지적했다. 지난 1일 일본 정부의 발표 이후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사설을 통해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마이니치는 "한국은 일본이 (한일 청구권 협정을 근거로) 제안한 중재위원의 임명 (요구)에 응하지 않았고 한일 기업이 위자료를 출연하는 방안을 제시했다"면서 "일본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리한 수법에 호소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가장 큰 문제는 일본이 주장해온 '규칙에 근거한 자유무역의 추진'이라는 이념에 반하는 것"이라면서 세계무역기구(WTO)가 안보를 근거로 한 무역 제한을 인정했지만 지극히 예외적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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