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6일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추모 열기가 미국을 달궜다. 그가 속했던 공화당이나 정적이었던 민주당 구분없이 그를 “위대한 대통령”이라고 칭송하였다. 민주당 소속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레이건을 “미국의 궤적을 바꿔놓은 대통령”이라고 찬미하였다. 레이건은 미국이 역사상 유례없는 베트남 패전과 ‘워터게이트 사건’ 후유증으로 절망에 빠졌을 때 미국의 ‘궤적’을 바꿔놓은 ‘보수주의 영웅’이다.

1974년 리처드 M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 은폐 조작 및 거짓말 증언 죄로 탄핵 압박속에 사임하였다. 미국의 불명예 였고 수치였다.

그 다음 해엔 미국이 천문학적 전비를 투입하고 5만여 명의 전사자를 내면서 지키려했던 월남이 끝내 적화되고 말았다. 미국 역사상 처음 겪는 패전의 수모였다. 그로부터 다시 3년 후 아프가니스탄이 친소 좌익세력의 쿠테타로 넘어갔다. 공산주의 도미노 현상이 나타났다.

1970년대 후반 미국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의 진보주의자 지미 카터 였다. 미국의 경제는 최악 상태로 빠져들었다. 12.5%의 인플레와 7.5%의 실업률로 침몰하고 있었다.

미국이 날개 잃은 새 처럼 추락하던 1981년 1월 레이건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먼저 소련 지도자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소련 지도자는 세계 적화혁명 야욕을 버리지 못한 ‘범죄자’이고 ‘거짓말장이’이며 ‘사깃꾼’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이어 레이건 대통령은 서방국가들의 군사비 증액을 촉구하며 ‘별들의 전쟁’ 군비증강에 들어갔다. 인공위성을 이용해 소련의 미사일을 격추시키는 무기체계이다. 소련도 레이건의 대소 강경책에 맞서 군비증강에 뛰어들었다. 그렇지만 소련은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못해 경제를 파탄시켰고 자멸하고 말았다. 레이건의 대소 강경책이 소련을 붕괴시킨 것이다.

레이건은 1981년 8월 미국 공항 관제사 4600여 명이 근무단축과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하자 모두 해고해 버렸다.

파업 관제사들은 레이건의 강경책에 맞섰지만 끝내 굽히지 않은 대통령에게 무릎꿇고 말았다. 그후 미국에서 관제사 파업은 사라졌다. 뿐만아니라 레이건은 보수적인

‘레이거노믹스’ 경제논리를 과감히 채택, 감세정책과 고용창출로 12.5%의 인플레와 7.5%의 실업률을 잡아 1980년대 미국의 번영을 가져왔다.

레이건은 악명 높던 중동지역의 반미 선동자 무아마르 카다피에게 몽둥이를 휘둘렀다. 레이건은 1986년 4월 미국 전폭기들을 띄워 리비아의 카다피가 체류중인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들에 4차례에 걸쳐 공습을 감행하였다. 그후 카다피는 미국 국기만 봐도 벌벌 떨었다.

레이건의 강경 보수주의 노선은 노조를 굴복시켰고 소련 공산체제를 내파(內破)시켰으며 파경을 헤매던 미국 경제를 되살려냈다. 카다피의 버릇도 고쳤다.

미국을 경멸의 대상에서 두려움의 괴력으로 끌어올렸다. 오늘날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와 경기침체에 시달리는 미국인들이 레이건을 그리워하게 된 것은 그의 꿋꿋하고 단호했던 리더십에 연유한다.

똑같은 맥락에서 근년 북한의 테러와 국내 경기침체 그리고 친북좌익 세력의 공세에 시달리는 대한민국 국민들도 레이건과 같은 단호한 ‘보수주의 영웅’ 출현을 동경한다. 기회주의적으로 ‘보수’에서 ‘실용’으로 다시 거기서 ‘실용 중도’로 거듭 색깔을 바꿔가지 않는 당찬 ‘보수주의 영웅’을 바란다. 김정일에게 ‘범죄자’ ‘사기꾼’이라고 호통치며 카디피 혼쭐내듯 몽둥이를 휘두르고 일자리 창출을 위해 보수주의적 경제논리를 소신껏 펼칠 수 있는 리더십이 요구된다.

당당하고 소신에 찬 레이건 같은 대통령 만이 조폭 두목에 불과한 김정일을 길들이고 침체국면의 국내 경제를 살려내며 사회적 안정을 확보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