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어느 신문에 ‘대한민국은 개발 공화국’으로 땅값만 신났다는 기사가 났다. 대부분의 개발 발표지가 실행 없이 맴도는 동안 외지인들이 드나들면서 땅값만 천정부지로 올려놨다는 얘기다. 선심성 개발공약 남발 상황을 분석하니 ‘개발 발표’된 총 면적이 국토의 1.2배였다고 했다.

정부는 낙후지역을 발전시킨다는 명목으로 그동안 ‘개발촉진지구’로 전국 많은 땅을 지정해 놓았다. 지정해놓은 지역·지구는 종류만 53가지에 이르고, 지정된 지역·지구 수는 기초단체 기준으로 1553곳에 달한다. 이중 183곳은 2개 이상 중복 지정돼 전체 지역·지구 면적은 남한 전체 국토 면적(10만 210㎢)의 1.2배로 나타난 것이다. 이런 사정에 정부는 정확한 전체 사업비조차 추산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확한 수요 예측이나 타당성 검토 없이 선거 때마다 선심성으로 남발된 개발 공약에 전 국토가 누더기로 변해갔다. 정부와 자치단체가 지정해준 ‘개발촉진지구’가 개발 촉진은커녕 지역에 볼썽사나운 골칫덩이 흉물만 더 안겨 놓은 데가 한 두 곳이 아니다. 전국 여러 곳에 파헤쳐진 사업부지와 짓다가만 건물이 수년째 폐허처럼 방치 돼있는 실정이다.

필요도 없는 도로 확장공사에 세금만 쏟아 부어 놓고도 날린 예산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한때 자치단체에서 앞 다투어 유행했던 드라마 세트장도 이제 주민세금만 축내는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현재의 ‘과학비즈니스 벨트, 동남권 신공항’ 등 지역 현안이 지역정치와 연계돼 터질 듯한 갈등을 일으키는 문제가 모두 실정법이 정한 절차상의 중요한 원칙이 무시됐기 때문이다.

과학벨트 논란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때 “충청권에 광역 경제권이 만들어져야 한다. 세계적인 과학과 기업이 만나야 한다”고 했던 선거공약이 뿌리다. 공약해 놓은 것을 얼마 전 대통령이 방송 좌담회에서 법에 따라 입지선정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충청권의 격렬한 반발을 샀다. 경기·호남·대구·경북까지 과학벨트 유치전쟁에 가세했다.

“동남권에 새 공항을 만들어 인구 및 물류이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겠다”던 공약 역시 입지 선정을 앞두고 영남 정치권이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을 미는 세력으로 갈려 치열한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달아오른 민심이 곧 폭발하는 화약고를 보는 것 같다. 하찮은 풀 한포기도 봄볕 따스한 줄을 안다. 하물며 사람집단이 따스한 봄볕 같은 지역 경제 이익을 봄날 낮 꿈처럼 날려 보낼 리 없다.

절차의 원칙을 무시한 개발공약은 국토를 절단 내고 인심을 찢고 있다. 이 대통령은 과학벨트 공약에 대해 “선거 유세 때는 충청권에서 표를 얻으려고 제가 관심이 많았겠죠”라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충청권 행정수도 공약에 대해 “대선에서 재미 좀 봤다”고 했었다. 노무현 정부 임기 시작 후 2003년 12월 행정수도법 국회의결,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 위헌결정, 2005년 11월 헌법소원 위헌 신청 각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정치권과 국민이 두패, 세패로 갈리는 지역 전쟁을 벌였다.

노무현 표 공약 하나 때문에 충돌해 낭비한 국가 에너지가 얼마인가, 그때와 똑같은 상황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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