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승인 없는 심사수수료 인상으로 부당이득 취해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서울시태권도협회 홈페이지]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서울시태권도협회 홈페이지]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태권도는 대한민국의 국기(國技)다. 우리나라에서 창시된 태권도는 한때 국민들의 자부심이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태권도장에 다닌 기억이 있을 정도. 신체는 물론 정신까지 수양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며 10여 년 전에는 광풍이 불기도 했다. 국기원은 승단 심사를 보려는 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동네마다 하나씩은 꼭 있던 태권도장은 시간대를 쪼개서 수업해야 할 정도로 인기였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 국제 대회가 열리면 국민들의 태권도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태권도가 메달을 꼭 안겨 주는 ‘효자 종목’이자 한국이 창시한 종목이라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시 태권도 협회 운영 정상화 해야”
협회 측은 ‘묵묵부답’

그런데 이처럼 국민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던 태권도의 서울 지역을 담당하는 서울시 태권도 협회가 비상식적 운영을 일삼아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서울특별시의회 체육단체 비위근절을 위한 행정사무조사 특별위원회는 지난 5일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 태권도 협회의 운영 정상화를 촉구했다. 이날 위원회는 “2013년 5월 전국체전 태권도 고등부 서울시 대표 선발대회에서 승부조작으로 억울하게 패배한 학생의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그 아버지는 30년 동안 태권도장을 운영해온 태권도인이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이미 자신의 제자들이 여러 차례 승부조작과 부정심사의 피해를 입었던 터에 아들마저 같은 피해를 당하자 억울함을 참을 수 없어 목숨을 던져 항의한 것”이라면서 “그때라도 서울시 태권도 협회는 바뀌어야 했으나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비판했다.


위원회에 따르면 협회는 국기원으로부터 승품단심사권이라는 권력을 위임받고 있다. 일정기간 수련을 마친 수련생의 경우 승품단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국기원이 전국 모든 수련생의 승품단 심사를 할 수 없어 각 시도협회 등에 재위임해 심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 응심자가 내는 심사비는 협회의 주 수입원이 된다. 그런데 협회는 현재 각 관장들이 내는 복지회비 성격의 돈을 심사비에 포함해 내도록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복지회비는 같은 돈을 내고 같은 혜택을 받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협회는 관장들에게 심사를 받는 응심자 수 만큼 회비를 내도록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관장들 복지비인 회비가 응심자 주머니에서 나오는 기형적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위원회 측은 “이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금지하고 여러 차례 시정명령을 내린 일인데, 태권도협회는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공정위 시정명령에도

협회는 이렇게 거둬들인 심사비와 복지비를 비상근 임원들에게 급여성 경비로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급되는 액수는 매달 수백만 원에 달한다. 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년 반 동안 비상근 임원 1인에게 지급된 경비는 9천 만 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협회는 “회의수당 등 일비”라고 답변했다.


이러한 비리로 인해 협회는 지난 2016년 관리단체로 지정된 바 있다. 그런데 당시 협회는 부정, 비리에 관련된 임원들이 일명 ‘짬짜미 사퇴’를 하며 관리단체 지정 사유를 ‘부정과 비리’가 아닌 ‘임원 결원’으로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협회는 “지금 문제되는 부분들은 이미 사법기관에서 무혐의 처분된 것일 뿐 아니라, 정부기관이나 상위 체육단체의 감사와 조사를 통해 종결됐다”고 주장하지만 위원회는 “검찰의 결정문이나 법원의 판결문에도 완전히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고 ‘증거가 불충분’하다거나 협회 내 이사회 의결로 이루어진 일이므로 ‘절차상 하자가 없다’는 입장”이라고 반박했다.


위원회는 “서울시와 서울시체육회는 민간단체인 태권도협회를 감독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면서 “그러나 태권도협회의 그 큰 예산은 시민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니 방만하게 운영하지 않고 시민의 눈높이에 맞게 운영하도록 감시하고 지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서울시 관광체육국과 서울시체육회에 ▲국기원의 사전승인 없는 심사수수료 인상으로 인한 부당이득 반환 ▲심사수수료와 연동된 ‘회원의 회비’를 응심자에게 부과하는 구조적 모순 개선 ▲비상근임원의 상식 밖의 급여성 경비 환수 ▲임원 자격 없는 자에게 지급된 일비 환수 ▲특정인 중심으로 사유화되어 있는 조직개편 등 다섯 가지를 요구했다. 또 서울시 태권도 협회의 관리단체 지정과 승품단 심사권 회수 권고, 서울시 태권도 협회 정상화를 위한 TF 구성을 통한 계속된 조사·감사, 서울시의 회원단체 운영 가이드라인 마련도 요청했다.

내부 폭로 나오기 힘든 구조

서울시 태권도 협회의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일선 관장들이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것은 ‘심사추천권’ 때문으로 알려졌다. tbs에 따르면 협회는 이 권한을 남용해 관장들을 관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사추천권은 태권도 수련생들이 승품 심사를 볼 수 있도록 추천해주는 권한을 뜻한다. 국기원에서 심사권을 위임받은 각 시도협회가 사범이나 관장 등에게 심사추천에 필요한 ID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협회가 이점을 남용해 관장들의 ID를 회수하거나 정지한다는 것이다. 한 관장은 tbs에 “자기네들한테 밉보이면 ‘야 얘네 나 짜증나게 하니까 ID로 혼내줘야겠어’… 그러면 그게 징계가 되는 거죠”라고 호소했다. 심사추천권을 박탈당하면 사실상 태권도장 운영이 불가능해진다. 일선 관장들이 불합리한 일을 겪고도 내부 폭로를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이유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사업자 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행위’라며 시정명령을 내린 바 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시의회 소환에도 불응

지난달 서울시의회 행정사무조사 특별위원회는 서울시 태권도협회의 여러 의혹 등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관련자들을 소환했다. 하지만 당시 협회 측 핵심 증인들이 출석하지 않은 것은 물론, 요구 자료 상당수도 제출되지 않으며 파행이 빚어진 바 있다. 일요서울 역시 이에 대한 협회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질문지를 발송했으나, 협회는 메일을 확인하고도 아무런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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