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아내 있는 선수에게 타 팀 이적 일방 통보

남준재 [뉴시스]
남준재 [뉴시스]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지난 10일 제주도 서귀포시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는 제주 유나이티드와 FC서울의 2019 K리그1 20라운드 경기가 열렸다. 이날 제주는 4-3-3 포메이션으로 경기를 시작했다. 황성민이 골키퍼 장갑을 꼈고, 정우재와 알렉스, 김동우, 박진포가 수비 라인을 구성했다. 미드필드는 이창민과 권순형, 서진수가 책임졌다. 눈에 띄는 부분은 공격 라인이었다. 윤일록, 이근호와 함께 제주의 공격을 책임진 선수는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인천 유나이티드의 주장이었던 남준재였다. 남준재는 이날 경기에서 팀이 2-0으로 앞서던 전반 36분 마수걸이 득점을 터트리며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레골라스 세레모니도 인천 시절 그대로였다.

선수 철저한 ‘을’로 만드는 규정 개선 필요
“구단의 권리만큼 선수의 의사도 존중해야”

남준재는 지난 4일 김호남과의 맞트레이드로 인천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벗고 제주 소속이 됐다. 두 선수의 트레이드는 K리그 팬들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남준재는 인천에서 프로로 데뷔한 선수다. 경기장에서 모든 것을 쏟아 붓겠다는 각오로 헌신하며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매 시즌 강등권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살얼음판을 걷던 인천이 K리그1에서 버틸 수 있었던 데는 남준재의 공이 컸다. 인천 유니폼을 입은 그의 왼팔에 채워진 주장 완장은 이러한 헌신의 증거였다. 그의 트레이드 소식이 언론을 통해 먼저 전해졌을 때 인천 팬들이 분노한 것은 당연했다.


트레이드의 대상이었던 제주의 김호남도 마찬가지다. 광주FC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2016년 제주 유니폼을 입은 그는 빠른 발과 날카로운 크로스를 앞세워 제주의 공격을 이끌었다. 60경기에 출전해 8골과 4개의 도움을 기록하며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그 역시 제주 팬들의 사랑을 받는 선수로 서서히 자리 잡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특히 김호남에게는 만삭의 아내가 있었다.

갑작스런 트레이드에 당황한 선수와 팬

제주와 인천은 이번 시즌 강등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덕였다. 반등이 필요했던 두 팀이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발 빠르게 전력 보강에 나선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당사자인 선수와 이를 지켜보던 팬들은 양 팀의 트레이드 과정을 지적했다. 실제로 남준재는 지난 9일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선수협)를 통해 이번 트레이드에 자신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이날 남준재는 “트레이드 관련 이야기가 오간다는 사실만 알았을 뿐, 구단 관계자 및 코치진들과 어떤 상의와 면담도 없이 트레이드가 결정됐다”며 “내 선택과 의사는 전혀 물어보지도 않고 결정이 이뤄진 것이 사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촉박하게 결정을 내려야 할 이유가 있었는지 아쉬울 따름”이라고 전했다. 이어 “트레이드 하루 전 에이전트를 통해 제주가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을 들었다”며 “이적 시장에 구단이 선수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저는 인천의 주장으로서 설마 하루아침에 트레이드가 되겠냐는 생각에 그 말을 듣고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상황은 남준재의 생각과는 다르게 돌아갔다. 지난 3일 오전 운동을 마친 뒤 채 씻기도 전에 트레이드가 성사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어찌할 방법이 없었던 남준재는 슬픈 마음을 안고 공항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때 전화벨이 울렸다. 인천 프런트 직원이었다. 직원은 “구단 대표님과 이천수 전력강화실장에게 인사를 하고 가야 한다”고 했다. 남준재는 공항으로 향하던 차를 돌려 인천 구단을 방문, 짧은 인사를 나눴다. 그는 “저는 동고동락했던 동료들과 제대로 작별 인사도 못 하고, 가족들과 상의도 없이 사랑하는 아들, 딸이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하루아침에 인천에서 제주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끔 한 못난 남편이자 아빠”라며 “인천에서 떠나면서 내 선택과 의사는 단 1도 물어보지 않고 트레이드 결정이 이뤄졌는지 사실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또 “내가 가진 열정과 모든 것을 쏟아 부었지만, 인천에 있어 남준재는 별거 아닌 존재 였는가라는 생각에 속상하고 허탈한 마음이 들어 눈물을 흘렸다”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트레이드 대상이 된 김호남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김호남의 아내는 현재 임신 7개월 차다. 배 속에 쌍둥이가 있어 거동이 쉽지 않다. 청천벽력같은 통보를 접한 김호남이 홀로 비행기를 타고 인천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 사이 만삭의 아내는 혼자 제주도 집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호남은 인천 구단과 계약서에 사인한 뒤 호텔에 짐을 풀었다. 살 집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호남은 한 매체에 “선수가 마음에 안 들면 구단이 선수를 맞바꿀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나도 가정이 있고 임신한 아내가 있는 사람이다”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이어 “집도 알아봐야 한다. 혼자 비행기를 타고 오며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며 “축구선수가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이렇게 가족까지 힘든 일을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논란이 커지자 인천 구단은 지난 4일 팬 간담회를 열고 “남준재도 원했던 이적”이었다며 일방적으로 추진한 이적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최윤겸 제주 감독은 “김호남이 인천으로 갔는데 마음고생이 정말 심했을 것”이라며 “이 자리를 빌어 김호남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논란의 중심에 선 ‘K리그 로컬룰’

프로의 세계에서 선수가 팀을 옮기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트레이드 건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K리그 로컬룰’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이 문제다. 프로축구 규정 ‘제2장 선수’의 ‘제23조 선수 계약의 양도’ 2항에는 ‘선수는 원소속 클럽에서 계약조건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이적될 경우, 이를 거부할 수 없다’는 규정이 명시돼 있다. 이는 선수의 기본급이나 연봉이 단 1원이라도 상승할 경우 클럽 마음대로 선수를 이적시키거나 영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선수가 이를 거부할 수는 있지만 규정에는 ‘선수가 이적을 거부할 경우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된다’고 적혀 있다.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되면 K리그 어느 팀에서도 뛸 수 없다. 사실상 거부 권한이 없는 셈이다. 클럽을 ‘갑’으로, 선수는 철저한 ‘을’로 만드는 독소 조항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일각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이 조항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피해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음에도 프로축구연맹은 입을 굳게 닫고 있다. 한국 축구가 아시아 무대를 넘어 세계 수준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구단의 권리만큼 선수의 의사가 존중받아야 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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