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에서 잔뼈 굵은 CEO, 공기업개혁 드라이브 걸다

◀ 지난 8월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3차 국가에너지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이윤호(오른쪽) 지식경제부장관이 이날 취임한 김쌍수 한국전력공사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국내 최대 기업인 한국전력공사 사장에 김쌍수 전 LG전자부회장이 취임했다. ‘혁신리더십’을 통해 기업의 체질을 바꿔 성공시킨 ‘혁신전도사‘이다. 지난 99년 IMF경제위기 상황에서 반도체 빅딜을 통해 LG전자 반도체 부분이 현대하이닉스로 넘어갔다. 패배주의에 빠진 직원들에게 그는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혁신운동을 시작했다. 그 결과 LG전자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LG는 100% 탈바꿈했다. 가전뿐만 아니라 휴대전화, 디스플레이 등 첨단 디지털 기기에서도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그런 그가 이젠 공기업 개혁의 혁신전도사로 나섰다. 한전에서 불게 될 ‘김쌍수식’의 혁신바람에 대해 알아본다.

지난 27일. 한국전력공사 삼성동 본사에서 임시 주총을 열고 거대 공룡 한전을 이끌 수장으로 김쌍수 전 LG전자 부회장을 신임 사장으로 공식 선출했다.

민간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출신이 한전 사장으로 선출된 것은 김 사장이 최초다.

김 사장의 취임 배경에 대해 관가와 업계는 그의 ‘혁신전도사’이미지를 기용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새 정부 출범 때에 강하게 밀어붙였던 발전자회사 민영화 등이 불발로 끝난 현 시점에서 한전 내부 혁신을 추진하기 위한 적임자로 꼽힌 것이다.

정부로선 사장 임기 3년 동안 전권에 가까울 정도로 김 사장의 경영권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대대적인 조직 혁신과 사업 개혁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김 사장은 MB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프로젝트의 상징으로, 한전을 전력산업의 구조 개편과 시장 개혁, 업무 혁신이라는 높은 파고를 뚫고 나가야할 책무를 지게 됐다.


현장경영과 속도경영 주창

김 사장은 27일. 취임사를 통해 강한 개혁의지를 표명했다.

그는 “한전이 공기업 이미지를 벗고, 세계 선두 기업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현장경영과 속도경영을 펼치겠다.”고 했다.

이어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 등 공공기관의 효율화와 차원 높은 투명성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높아졌다”며 “어려운 경영여건 속에서 한전이 지속적으로 국가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국민이 신뢰하고 존경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한전은 변화에 시점에 서있다. 그 중심에 김쌍수 사장이 서 있다. ‘그냥 이대로’를 용납하지 않는 그는 나른한 낮잠에 빠진 거대공룡인 한전을 수술대에 올려놓고 수술을 집도할 것이다. 어쩌면 비대한 공룡의 두 다리가 잘려나갈지도 모른다.

김 사장은 이미 취임사릍 통해 “변화에는 어려움이 따르고, 때로는 고통도 따른다”며 “하지만 변화가 없으면 살 수 없다”며 대대적인 혁신바람을 예고했다.

앞으로 있을 한전의 혁신은 지난 89년 LG전자 창원공장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그는 세탁사업부를 담당하는 이사로 부임했다. 자신의 관할 아래 놓인 세탁기 사업본부의 혁신에 착수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공장의 생산라인을 줄이는 것이었다.

240m에 달했던 생산라인은 40m로 줄었다. 240m를 40m로 줄이면 현장 근로자들은 반발하게 마련이다. 공간이 작아지고 라인이 줄어들면서 불필요한 인력 30%가 감원했다. 이로 인해 생산량은 늘고 생산단가는 절감됐다.

그의 경영혁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보고용 혁신보다 새로운 혁신철학을 도입한다. 그는 공허한 구호보다는 눈에 보이는 ‘3by3(3년 안에 3배 성장한다)’ ‘5%는 불가능해도 30%는 가능하다’등의 혁신을 선보였다.

그는 계획보다 실행을 좋아한다. 그는 공장에서 잔뼈가 굵은 CEO이다. 창원공장에서 35년 근무한 끝에 LG전자의 사령탑이 됐다.

그의 경영 스타일은 현장경영이다. 서류작업 위주인 본사와 달리 공장에는 현장이 있고, 그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성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한전내부 직원 반발 거셀 듯

‘혁신 전도사’로 유명한 김 사장이지만 한전의 개혁은 생각보다 어려운 점이 많다. 오너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을 경우 절대적인 권한을 가질 수 있는 민간 기업과 달리 한전에서 그가 쓸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기 때문.

CEO에 의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민간기업과 달리 공사는 사규에 의해 어느 정도 신분이 보장돼 있다. 공무원 사회보다 더한 보수성과 폐쇄성을 지닌 한전에서 김 사장이 개혁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상당한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실제 한전은 수천억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담당 과장이 전결로 처리하는 업무 형태를 고수하고 있는 걸로 알려지고 있다. 그만큼, 민간 출신 사장에 대한 ‘저항’이 있을 수 있다.

한전 내부에는 이미 고위직을 중심으로 신임 사장의 혁신 방향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이다.


위기 극복, 경영성과 높여라

한전의 한 관계자는 “젊은 직원들은 김 사장에 대한 혁신과 개혁에 희망적인 기대를 하는 편이다. 하지만 위직은 향후 한전 변화와 관련해 불안해하고 있다.”면서 “신임 김 사장의 혁신운동에 상당한 진통이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김 사장이 개혁과정에 풀어야 할 숙제는 또 있다. 노동조합과의 합의이다. 노동조합은“한전에는 2명의 사장이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김 사장이 혁신을 하기 위해서 노조의 협조가 가장 절실하다. 하지만 노조에서 김 사장의 혁신을 반길지는 의문이다.

노사 갈등은 불 보듯 뻔하다. 성격상 뒤로 물러서지 않는 김 사장은 일단 외부 여론의 지지와 한전 고위층의 솔선수범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개혁의 명분을 쌓고 여론의 힘을 이용해 노조의 저항을 뚫어나갈 가능성이 높다.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기반이 없다면 본격적인 혁신활동을 전개할 수 없다. 김 사장은 노사가 협조를 통해 갈등을 자연스럽게 해소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CEO의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는 경영성과이다. 현재 한전은 고유가 등으로 인한 영업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상반기 영업 손실이 1조1273억원이다. 특단의 조치가 없을 경우 1982년 공사로 전환한 이후 첫 적자를 기록할 수밖에 없다.

이는 전기요금 인상과 맞물려 있으나 시기가 예상보다 늦어지고 인상폭도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전이 당분간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


美 GE도 감탄한 품질 관리

김 사장은 공기업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끈 CEO가 되기 위해선 혁신보다 경영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이를 위해 조직통폐합 등의 구조조정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예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일이 열 개라고 이걸 다할 필요는 없다. 사실 몇 개는 안 해도 상관없는 일들이 많다. 과감히 몇 개를 포기하고 나머지에 집중하는 게 효과가 더 크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경북 김천 출신으로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1969년 금성사(현 LG전자)에 입사해 2003년 LG전자 CEO로 발탁될 때까지 35년간 냉장고·세탁기 등 백색 가전제품을 만드는 경남 창원공장에서 일했다.

사양 산업으로 치부되던 백색 가전산업을 만드는 LG전자를 그룹의 주력 기업으로 키웠다.

또한 LG전자의 휴대전화가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 잡은 데는 그가 기여한 측면이 크다. 그의 지휘 아래 초콜릿폰·샤인폰과 같은 ‘텐 밀리언셀러(1000만 대 이상 판매한 히트 상품)’가 나왔다.

김 사장은 2007년 1월 LG전자 CEO에서 물러나 LG그룹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데 이어 올 3월 현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LG전자 고문으로 지내 왔다.

LG전자 근무 시절 ‘쌍칼’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추진력이 강하고 명확한 일처리를 좋아했기 때문. LG전자 관계자는 “직원을 혼낼 때는 눈물을 쏙 빼낼 정도로 강한 성격이지만 뒤끝은 없다”고 평했다.

LG전자에서 보여준 김 사장의 경영리더십이 한전개혁에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킬지 세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쌍수 프로필

▶1969. 한양대학교 기계공학
▶1969. LG전자 입사
▶1996. LG전자 리빙시스템 사업본부장
▶1998. LG전자 부사장
▶2001. LG전자 사장
▶2003. LG전자 부회장
수상내역
▶1999 가전업계 신지식1호 선정
▶2000 Six Sigma 혁신상 대통령상
▶2000 동탑산업훈장
▶2003 비즈니스 위크지 선정 The star of Asia,
25 people
▶2004 타임지 선정 The Next Big Player
▶2004 포춘지 선정 Asia’s 25 Most
Powerful People in Business
▶2006 금탑산업훈장



## 김쌍수의 ‘혁신 10계명’

1. 5%는 불가능해도 30%는 가능하다
‘혁신 10계명’의 기본정신. 이 말은 새로운 방법을 찾자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혁신목표(Stretch Goal)에 도전하자는 뜻도 포함돼 있다. 혁신을 하려면 목표를 높이 잡아야 한다.

2. 한 방에 끝내자
하나의 제품에 50가지 부품이 들어간다. 이것을 30% 정도 한꺼번에 줄이자는 식. 그렇게 하면 3번에 걸쳐서 해야 할 연구 프로젝트가 한 방에 끝난다. 앞서가는 제품 만들 수 있고, 원가도 크게 절감된다.

3. 조직을 파괴하라
기존의 연공서열식 조직, 폐쇄적인 조직 개념에서 탈피하라.

4. 실천하는 것이 힘이다
‘아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다르다. 아무리 많이 알아도 실행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혁신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아는 것(Knowing)과 실행하는 것(Doing)의 차이(Gap)를 줄여야 한다.

5. ‘No’ 아닌 ‘대안’
머릿속에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 찬 조직원이 있다면 혁신에 성공하지 못한다. 긍정적인 생각이 아주 중요하다. 시작이 반이라면 긍정적인 생각이 나머지 반이다. ‘No’하기 전에 ‘대안’을 찾는 문화가 필요하다.

6. ‘나’ 아닌 ‘우리’
똑똑한 한 사람보다는 서로 협동하는 여러 명이 더 효과적으로 해결한다. ‘우리’라는 의식이 전제되면, 혁신에 가속도가 붙는다. 팀워크보다 개인 중심 사고에 빠져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버스에서 내리게 해야 한다.

7. 자원유한(資源有限) 지무한(智無限)
21세기는 머리로 경쟁하는 시대다. 지식을 공유해야 한다. 특히 리더들이 솔선수범해야 한다.

8. Early Innovation
남보다 한 발 앞서가지 않으면 요즘 같은 변화무쌍한 시대에 뒤처지기 쉽다. 차별화된 경쟁력을 먼저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면 안 된다.

9. 과수원 Paradigm
50개들이 과일 한 상자를 2만원에 파는 것보다 20개들이 과일 한 상자를 5만원에 팔 수 있다면 어떤 게 더 좋은가?

10. ‘큰 덩치’를 잡아라
조직에 해결해야 할 과제가 여럿 있다면 가장 핵심적인 것, 가장 규모가 큰 것에 도전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과제에는 우수한 인재를 과감하게 투입하고 자원도 충분히 지원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그게 해결되지 않으면 자질구레한 것들을 아무리 해결해도 금방 한계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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