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참마속(泣斬馬謖). 삼국지 촉서(蜀書) 마량전(馬良傳)에 나오는 이야기로 우리에게도 익히 잘 알려진 이야기다. 사자성어 그대로의 뜻은 울면서 마속(馬謖)을 베다라는 뜻으로, 공정한 법 집행을 하거나, 대의를 위해 사사로운 정을 버리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이 이야기 속에서 마속을 베라고 명한 것은 제갈량(諸葛亮)으로 삼국지 전체, 아니 중국역사 전체를 통해서도 가장 훌륭한 전략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이러한 읍참마속전략은 현대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고 있는 전략이기도 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읍참마속의 효과를 보기 위하여 일부러 마속을 베는 일도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민주연구원이 이렇게 정치권의 주목을 받은 때는 없었다. 정권실세가 원장을 맡아서인지, 원장이 정권실세인양 허세를 부려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의 일거수일투족에 언론이 촉수를 뻗고, 민주연구원의 허접한 보고서(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의 표현을 빌리면, “의원들한테 보낼 정도로 대단한 보고서도 아닌 수준 이하의 보고서”)에 야당들이 발끈 하는 것을 보면, 민주연구원과 양정철 원장은 여의도의 이슈메이커임에 틀림없다.

이 문제의 보고서 제목은 ·일 갈등에 관한 여론 동향이었는데, ·일 갈등이 내년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여당에 유리할 것이라는 취지가 주된 내용이었다고 한다. 이 정도의 내용이라면 누구나가 다 예측 가능한 수준의 내용이기에 홍익표 수석대변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수준이하의 보고서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집권여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에서 내는 보고서가 그렇게 평가절하 되어도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의 절대 신임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해찬 대표가 친히 요청하여 원장으로 취임했고, 전현직 국회의원 4인과 여론조사전문가인 이근형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마저 부원장으로 거느린 양정철 원장이 그렇게까지 수준 이하로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양정철 원장은 지난 5월 취임한 이래 현직 국정원장과 사적인 모임을 갖기도 했고, 대권주자인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지사, 김경수 경남지사 등을 독대하면서 대권주자들을 면접 보는 듯한 행보를 보여줬다. 국회의원도 아니면서 문희상 국회의장의 공식일정에 등장하기도 했으니 여의도 정치권에 그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렇게 똑똑한 양정철 원장도 내년 총선을 생각하니 답을 찾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자유한국당만을 상대로 하는 선거라면 크게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더불어민주당 내의 공천과정과 세대교체 및 주력교체 과정에서 나타날 저항, 중간평가의 의미가 강해진 총선, 보수합당의 개연성, 패스트트랙에 올려 진 공직선거법 개정안의 불안정성, 북한이슈의 유동성 등등. 그럼에도 한 방이 없는 총선 전략.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자신을 희생하는 것.

그러나 희생을 하더라도 그 대가가 미미하다면 희생하지 않으니 만 못할 것.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자신의 희생의 값어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은? 그가 생각해 낸 방법은 자신의 몸값을 최대한 올리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여권의 실세들과 독대하거나, 야당이 거세게 반발하는 이슈를 던졌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일 갈등에 관한 여론 동향보고서 파문도 그 일환이라면 이해가 가능하다. 다음은 베어지는 타이밍이다. 양정철 원장은 그 타이밍마저 자신이 결정할 것이다. 양정철 원장에게서 눈을 뗄 수 없는 이유이다. 촉나라 제갈량은 마속을 베었지만, 대한민국 제갈량은 주군을 위해 스스로 베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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