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투자 철회 요구’ 국민연금 “검토하겠다”...치킨게임

국민연금공단
대한민국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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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양호연 기자]국민들의 반일감정이 점차 고조되면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 등으로 나라 안팎이 여전히 소란하다. 이런 분위기는 국회와 국민연금공단에도 영향을 미쳤다. 국민연금공단이 전범기업에 투자한 것이 알려지자 국회에선 투자 철회를 요구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국민연금공단은 즉각적 투자 배제는 다소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양측의 의견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제도적 장치를 통해 전범 기업에 대한 투자를 제한해야 할 것인지, 혹은 이 같은 조치가 도리어 ‘민족 감정’을 앞세운 판단인 지를 두고 각계 전문가와 국민들의 혜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회, 대법원 배상 판결 거부 日기업 투자...“사회책임투자원칙 맞지 않다” 목소리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 “국제적 전범기업 정의 달라...민족감정 앞세우면 위험해”

광수 민주평화당 의원(전주갑)이 지난 7일 ‘국민연금 전범기업 투자제한법(국민연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국회에 대표 발의했다. 강제동원을 통해 피해자들의 생명·신체·재산상 피해를 입힌 후 공식사과와 피해배상을 하지 않은 일본기업이나 가습기살균제 피해 등 국민에게 막대한 피해를 준 기업에 대해 투자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사회책임투자원칙에 어긋나

김 의원은 “강제징용 피해자분들의 판결에 대해 일본 정부의 정당성 없는 경제보복 조치가 장기화하며 사실상 양국의 ‘무역전쟁’이 발발(勃發) 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들의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공단이 대법원의 배상 판결을 거부하고 있는 미쓰비시중공업 등 미쓰비시 계열사에 총 875억 원을 투자하는 것은 사회책임투자원칙에 전혀 맞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행 국민연금법 102조에 따르면 기금을 관리 및 운용에 있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 증대를 위해 투자 대상과 관련한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등을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법과 원칙, 대상기업에 대해서는 명시하고 있지 않다. 이 과정에서 국민연금공단이 지난해에만 일본 전범기업 75곳에 총 1조2300억 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 같은 논란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국민연금이 국회에 제출한 투자 현황에 따르면 2014년 7600억 원, 2015년 9300억 원, 2016년 1조 1900억 원, 2017년 1조 5500억 원, 2018년 1조 2300억 원 등으로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였다. 이를 두고 김 의원은 “지난 2016년 국정감사에서부터 국민이 납부하는 국민연금기금으로 일본의 전범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사회책임투자원칙에 부합하지 않음을 수차례 지적했음에도 투자 방향이 전혀 바뀌지 않고 있다”며 “이번 기회에 전범기업 및 사회적 지탄을 받는 기업에 대한 투자원칙을 제대로 세울 수 있도록 ‘국민연금 日 전범기업 투자제한법(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신중한 접근 필요...전범기업 의미 ‘불명’

국민연금의 일본 전범 기업 투자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자 국민연금도 일본 전범기업을 투자 리스트에서 배제할지에 대한 검토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새 투자 가이드라인 채택 절차 과정에 다소 조심스러운 움직임을 보이는 모습이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달라진 한일관계와 국민 정서에 따라 전범 기업 투자에 대해 다시 들여다봐야 할 필요성은 있지만, 곧바로 투자 배제로 이어질 순 없다”고 피력했다. 이어 “전범기업 투자 문제가 책임투자 원칙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요소에 어긋나는 것이 있는지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책임투자 원칙을 새롭게 도입하는 과정이지만 그 과정에서 투자 배제대상에 일본 전범기업이 포함되는 것인지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지난 12일(현지시각) 영국 파이내셜타임스(FT) 인터뷰를 통해 전범기업에 대한 정의를 두고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현재 전범기업으로 칭하는 부분에 모호함이 있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해당 인터뷰에서 “전범기업의 정의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대한 가담’을 의미하는 것인지, ‘과거 1·2차 세계대전 전력’을 의미하는 것인지 우선 정의 내릴 필요가 있다”며 “국제법상 통용되는 전범기업에 대한 정의도 살펴보려 한다”고 답변했다.

이 같은 입장에 일부 국민들은 배제 검토가 아닌 ‘당연히 회수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해당 내용을 접한 오모씨는 “일본 전범기업에 투자된 우리나라 국민연금자금 즉시 회수조치하고 향후 영원히 국민연금자금이 투자할 수 없도록 규정 신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또 다른 의견도 있었다. 김모씨는 “전범기업 투자 문제를 떠나 정부가 국민연금이라는 명분으로 투자했다면 그에 따른 제대로 된 성과가 있어야 하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무엇보다 국민이 낸 세금이 허투루 쓰이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오는 9월 위원회를 열고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 및 가이드라인(그 외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 등)을 논의한 후 의결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도입된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 수탁자 책임 원칙) 후속조치로 책임투자 대상 자산군, 책임투자 전략, 위탁 규모 등을 논의하고 구체적인 책임투자 원칙 및 담당 조직 역량 강화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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